
* 포켓몬스터ORAS 패러디 소설
* 나성호 드림
* 원작 이전 시점(1세대의 로켓단이 등장)
로켓단과는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지만, 이렇게 큰일은 전에 없었다. 세계정복이라니!
바다의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마음의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눈을 빛내는 성호를 진정시킬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관람에 대한 기대만 있었을 뿐이었다. 설마하니 로켓단에게 도둑맞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범죄 현장의 목격자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영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며 나를 바닷가로 끌고 나온 성호가 승부를 걸어왔다. 나 역시 나름대로 배지도 딴 수준급 트레이너지만 챔피언 꿈나무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퍽 치열했던 승부가 끝난 후, 머리가 식었는지 한결 차분해진 성호를 뒤로하고 지친 포켓몬들을 살폈다. 작은 상처 하나 놓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치료해주고 몬스터볼에 갈무리하는데 성호가 갑자기 나를 붙잡아 외진 곳으로 끌어당겼다.
"쉿! 누가 오고 있어."
그답지 않게 무례한 행동에 대해 누가 오면 좀 어떻냐며 성을 내려는데 확실히 수상쩍은 기척이 느껴졌다.
"물건은 제대로 챙긴 거 맞지?"
"네, 확실합니다. '마음의 물방울'입니다."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대답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목소리였다. 깜깜한 밤, 가로등도 없는 바닷가라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더 자세히 볼 수 없을까 눈살을 찌푸리는데, 구름이 바람에 밀리며 달빛이 내리쬐었다. 두 사람의 가슴 정 가운데에 위치한 'R'이라는 글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남자로부터 물건을 건네받은 여자가 몸을 돌렸다. 남자도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어느 정도 두 사람이 멀어지고 나서야 우리도 바닷가로 나올 수 있었다.
"저 녀석들 로켓단 맞지? 일단 경찰에 신고하자. 너는 두 사람 얼굴 봤어?"
"따라가자."
"뭐? 가기는 어딜 가?"
생뚱맞은 대답에 놀랄틈도 없이 성호는 저만치 달려나간 후였다.
"잠깐만, 같이 가!"
황급히 성호의 뒤를 쫓았다. 우리는 그렇게 비행선에 숨어들었다.
* * *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환풍구을 타는 날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줄이야. 성호의 뒤를 따라 기어가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로켓단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한숨을 내쉬는 흉내에 가까웠다.
이쪽저쪽으로 꺾으며 기어 다니기도 한참, 어느 지점에서 성호가 멈추었다. 아까부터 넓어진 환풍구의 가운데에는 철망이 자리했는데, 성호의 옆으로 다가가니 아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힘이라면 여기 호연만이 아니라 세계를 정복할 수 있어!"
마음의 물방울을 손에 쥔 여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깔깔 웃었다. 조명으로 밝아진 곳에서 보니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로켓단의 간부 아테나였다. 그의 앞에는 기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라티아스가 갇힌 채였다. 그가 몸부림치며 기구에 부딪힐 때마다 기구가 번쩍였다. 라티아스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앞뒤 잴 생각도 못 하고 몬스터볼을 꺼냈다.
"라티아스를 풀어줘!"
철망을 부수고 내려간 레어코일이 기구와 이어진 기계를 향해 10만 볼트를 내뿜었다. 성호와 메탕구의 도움으로 우리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테나와 그의 조무래기들이 몬스터볼을 꺼내 들었다.
* * *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기기는 했다.
다만 포켓몬 시합에서 발생한 충격을 버티지 못한 비행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성호가 포켓몬을 꺼내기도 전에 바닥이 꺼졌다. 떨어지는 중에 무장조의 등에 탄 성호가 내게 손을 뻗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공포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으면 내 포켓몬들은 어떡하지? 내가 눈앞에서 죽으면 성호는 어떡해. 엄마랑 아빠는? 두 분 모두 많이 우실 텐데. 나 정말 이대로 끝이야? 싫어, 무서워.'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딘가에 부딪힌 충격에 눈을 떴다. 다소 딱딱했지만, 바닥이라기에는 푹신한 감촉이었다.
"라티아스?"
내 말에 라티아스가 목을 젖히며 울었다. 마주친 노란 눈동자가 생기로 반짝였다. 따듯하고 매끄러운 라티아스의 몸은 나를 빠르게 진정시켰다. 군데군데 남은 흉터 주변을 쓸다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내 옆으로 다가온 성호가 물었다. 많이 놀랐는지 은빛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창백했다. 내가 아니라 그가 죽다 살아난 것만 같았다.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다행이야."
실없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데도 성호는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그의 시선에 닿는 곳곳이 간지러운 기분이라 못내 그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동 터오는 햇빛이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의 과학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