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로 그는 자기 파트너의 악력을 얕본 일은 없었다. 다만 역시 자쿠로의 팔목에는 살이 그다지 붙어있지 않았는지라, 직접 그가 제 키보다 훨씬 더 큰 화환을 조심조심 뒷걸음질로 옮기고 있으면 괜히 보는 쪽이 조마조마해지는 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라이브하우스의 유리 특성상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으니, 마코토는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도와드릴까요?”
물론 이렇게 묻는 것을 잊지 않고. 드물게 자쿠로는 살짝 올라간 그의 말꼬리가 끝을 맺기 무섭게 짧게 대답했다. 앞에 잡아줘. 마코토의 행동은 재빨랐다. 이미 라이브 스테이지로 입장하는 홀에는 그가 옮겨둔, 오시리스의 오랜만의 라이브를 축하하는 화환이 6개나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그 화환의 디자인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마코토는 4번째에 배열된, 자신의 모습을 흡사 RPG게임의 도트를 찍어놓은 것처럼 꽃을 엮은 화환을 보고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하마터면 발등을 화환 다리에 찧을 뻔 했다. 그 모습을 본 자쿠로가 킥킥 웃어서,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헛기침을 했다.
“맘에 들어? 나도 저 화환이 가장 좋더라.”
“자쿠로 씨가 준비했다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냐. 네 개인 팬클럽 측에서 보낸 것 같은데, 꽤 잘 만들었지 않아? 특히 얼굴이.”
“얼굴이라뇨?”
“못됐게 인상 쓰고 있는 것 좀 봐.”
“…자쿠로 씨, 평소에 제 표정을 그렇게 보고 있으셨던 건가요.”
“억울하면 가끔 손님들한테도 서비스 차원에서 웃어줘 보던지. 아, 이쯤에 놓자.”
자쿠로가 갑작스럽지 않게, 손에서 힘을 빼며 화환을 조심스레 놓기 시작했다. 자연 자신의 손바닥으로 기울기 시작한 무게에 아직 적응을 못한 마코토가 마저 내려놓을 때는 조금 탕,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 탓인지, 다소 꽃받침 줄기가 약해져 있던 푸른 장미 한 송이가 톡 떨어졌다. 물론 자쿠로는 이런 일처리가 이제 손에 완전히 익었다. 그는 재빨리 어딘가에서 가위를 가져와 부자연스레 노출된 장미 줄기를 잘라서 완전히 없앴다. 바닥에 떨어진 푸른 꽃봉오리를 주우며 마코토는 짤막하게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냐. …아, 잠깐만 쉬자. 오늘따라 화환이 유독 많이 들어와서 지금 좀 지치네.”
“앞으로 몇 개나 남았나요?”
한 7개 정도? 그리 뇌까리며 자쿠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어보였다. 마코토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손에 말아쥔 푸른 장미봉오리를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오시리스가 꾸준히 활동하며 입지를 다져놓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화환을 받은 적은 전무후무했다. 아무리 크림슨과의 접전이 끝난 이후라고 해도, 이건-……, 잠깐, 크림슨, 크림슨이라. 마코토는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화환에 써진 축하문구란 비슷비슷한 게 많았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자세히 메시지들을 살펴보던 마코토는 보라색 판넬에 정갈히 적힌 라모 라는 가타카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치챘어? 자쿠로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쿡쿡 웃는다. 그가 가지런히 땋아 내린 사이드 헤어가 가슴께에 늘어졌다.
“아까 전에 봤는데, 빅터네가 보낸 화환도 있었어. 라파엘이 보낸 것도.”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름을 안 적으면 뭘 하겠어, 쿄 군한테 보내는 거라면서 영어로 써놨는데 못 알아채는 녀석이 이상하지.”
뭐, 그래도 모두가 축하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들의 승리를.
진정 뿌듯한 듯 자쿠로가 가슴을 활짝 펴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당장 머리가 잠깐 어지럽다.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솔직한 감상으로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에 가까웠다. 판에 박힌, 너무나도 정도의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였으니까. 모든 악당들을 물리치거나 개심시키고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앞으로도 함께 걸어나갈 의지를 다지는. 자쿠로에게로 흐르는 호감과 별개로, 마코토는 그가 정도의 히어로의 도덕관념이 잡히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를 ‘우리’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것이 설령 혼자뿐일지라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코토, 너 지금 지금까지 지은 표정 중에 가장 바보 같은 얼굴 하고 있는데.”
“제가요?”
“아, 말 하지 말걸 그랬나.”
너는 너무 표정관리 속도가 빠르다니까. 그러며 분홍색 립글로즈를 바른 입술을 살며시 핥아올렸다. 그럼에도 그 입매는 잔잔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과 수 주 전의 입맞춤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것이 아닌지. 견고한 결정처럼 마음을 다듬어 그녀가 내민 손의 끝이 저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가. 기실 그간 일어난 것들은 현실감을 절단당한 주제에 무게감만큼은 엄청났기에, 비로소 그 모든 것들에 온전히 마침표가 찍혔다는 실감은 제법 늦게 찾아들었다. 낯간지러운 그 소년만화의 해피엔딩이 모두 현실이라는 기적. 그것에 오늘은 마음껏 몸을 던져도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코토는 손 안에 웅크려 있는 푸른 장미봉오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파랑과 검정은 오시리스의 심볼 컬러였지만, 오늘은 그 꽃말마저 이토록 완벽히 부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자쿠로에게 꽂는 시늉을 했다. 마치 풀밭에 핀 클로버를 따 좋아하는 아이에게 내미는, 노란 가방이 어울리는 소년처럼. 그의 파트너는 이제 기꺼이 귀를 가까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