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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X미즈시타 유우키

 

 

* 자살, 집착 소재가 존재합니다.

 

 

 

 

 

" 너, 언제까지 이럴 건데?"

" 네? 무슨 말씀이세요?"

 

 

 

 

미즈시타는 고개를 기울인 채 란포를 바라보았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어?! 란포의 화난 목소리에도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란포를 바라볼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란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명탐정, 에도가와 란포가 시시한 살인사건 하나 풀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그저 처음에는 외면이었다. 누군가의 음모인가 싶어 답을 찾기 전까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흥미 없는 사건은 웬만해서 나서지 않았고, 의뢰받은 사건만 해결하고 다녔으니 일부러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아니길 바라며, 스스로가 생각한 추리가 틀리길 바라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해결한 사건 중 자신의 추리가 어긋나길 바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간절했으며, 그만큼 믿지 못했다. 그러니 틀려야 한다. 자신의 위상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양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다음에도, 또 다른 날에도 일어나는 살인사건에 모든 답은 하나를 가르쳤다. 그녀가 범인이다. 범인이다 못해 자신에게 힌트를 남겼다. 마치 찾아주길 바란 사람처럼 하나하나 자신에게 닿도록 하는 이정표를 남긴 것이다.

 

 

 

" 네가 범인이라는 건 진즉에 알았어. 그러니 제대로 말해. 왜 그런 거지?"

" 역시, 란포 님이라면 금방 알아줄 것이라 믿었답니다. 그렇지만…. 너무 성급하신걸요. 저는 아직 마지막 힌트를 드리지 못하였어요."

" 뭐?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하는 말인 건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란포가 바라본 그녀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시체를 앞에 두고서도 오로지 란포에게만 집중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힌트라니, 그러면 살인사건이 하나 더 일어난다는 말과 같았다. 그녀의 살인은 오로지 란포에게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게 전부라 특정 대상이 없었다. 오로지 즉흥적인 살인에 그녀를 온종일 따라다니지 않는 이상, 조건을 좁히기 어려웠고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단 세 건의 살인이지만 시체가 사망한 시간은 전부 달랐다. 그나마 장소를 좁히자면 그녀의 능력을 고려해 공장 같은 장소였다. 하지만 살인자라면 마을 중심의 장소를 고를 리가 없다. 결국, 즉흥적인 살인을 사전에 막을 방도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러다 곧 어쩌면 좋죠, 이제 탐정사에는 못 나가겠어요. 하고 말을 내뱉은 후에 한 발자국씩 어두운 골목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 란포 님이 아셨다면 다자이씨도 알아차리셨을 테고…. 곧 탐정사에 의뢰가 들어갈지도 모르고…."

 

 

 

점점 멀어지는 거리와 작아지는 목소리에도 란포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능력자라고 해도 그녀를 주먹 싸움으로 이길 방법이 자신에겐 없다. 다자이가 있었다면 무리 없이 잡을 수 있겠으나 란포는 아직 망설였다. 탐정사인 그녀를, 동료인 그녀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녀를 잡을 수 있을까? 잡는다면, 그 이후는? 란포의 능력이라면 이미 계산된 결과였다. 다자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그녀를 잡을 수 있다. 망설이지 않는다면 최악의 결말은 맞이하지 않을 텐데도 망설이는 자신을 보자니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알았을까? 망설이기 바란 걸까, 망설이지 않기 바란 걸까. 란포는 제 시선 안에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뒤늦게 소식을 접해 살인현장을 보러 온 무장 탐정사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다음에 뵈어요, 란포 님. 그 한마디만이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 이후로 미즈시타씨가 보이지 않는다구요."

" 진정해라, 아츠시. 실종은 아닌 게 확실하니까."

 

 

 

당황스러운 목소리와 차분하지만 곤란한 듯한 분위기의 목소리가 오고 간다. 3일 전 란포와 미즈시타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러니까 요코하마에 총 세 번째의 살인이 일어난 후에 미즈시타는 종적을 감춘 것이다. 쿠니키다씨….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그야 당연히….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쿠니키다의 시선은 란포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란포 씨를 두고 어딘가 떠나는 일은 없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탐정사 사이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만약 납치라고 해도 곧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파견 임무 중 다른 일에 휩쓸려 납치당했을 때도, 구출 작전을 펼치기도 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빠져나왔냐는 말에 그녀가 한 말은 하나였다. 란포 님에게 드릴 간식을 샀는데 너무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 이후부터 쿠니키다를 포함한 탐정사 전부가 그녀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 짓고 만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란포는 자연스레 간식을 받았을 뿐이었지만. 이 사건에 대해 신입인 아츠시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 아츠시, 너는 어느 정도인지 예상하기 어렵겠지만 미즈시타가 절대 란포 씨를 두고 어디 가는 사람이 아니야. 제 발로 떠나는 일은 절대 없고, 만약 누가 데려갔다고 해도 2~3일 만에 제힘으로 돌아왔어. 곧 돌아오거나 사장님의 개인적인 명령으로 잠시 출장을 갔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할 일은 아니라는 의미일 거다."

" 예? 그럼…."

 

 

 

마침 아츠시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실종 소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모습은 사장님도, 그리고 의자에 앉아 대화를 듣던 란포도 마찬가지였다.

 

 

 

" 란포, 슬슬 결정을 내릴 때다."

" ...나도 알아, 사장님."

 

 

 

편지 하나가 도착했거든. 장소가 쓰여 있는 작은 쪽지에 장미 한 송이. 란포는 제 앞에 놓인 장미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장미, 언젠가 그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검은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짙은 붉은색이 검정에 가까울 뿐이라고. 듣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장미색 따위가 아니라는 것도. 붉은색이 모여 흑색을 띠는 게 자신과 같다며, 이렇게 어두운색이라면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붉은색을 싫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만약 이렇게 어두운색이 된 저도 누군가 사랑해줄 수 있을까요, 하고 말을 맺었다. 그러니 이 쪽지는 그녀가 쓴 쪽지이며, 자신을 초대하는 초대장이라는 걸 란포는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망설임에 닿지 말아야 할 순간마저 도달하고 말았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작게라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면 당장 자신의 눈앞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결국 맞이하게 된 지금과 같은 결말?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게 된 그녀였을까. 어느 쪽이든 당장 가야만 한다….

 

 

 

 

*

 

 

 

 

" 익숙한 장소네."

" 그렇죠?"

 

 

 

저희에게 있어 소중한 장소잖아요, 고른다면 이곳이 좋을 것 같았어요. 추억 이야기를 하듯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이 오히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누구든 그녀를 보았으면 살인자 같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그랬다. 무장 탐정사는 분명 사람을 위해 나서는 이능력자들이 모인 곳이다. 사람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 그녀는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제 와서는 그렇게 보기도 어려웠지만. 사장님의 안목이 언제나 바르다고 할 수 없어도 의심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단순히 사랑에 보답받지 못해서, 누군가의 현혹에 넘어가서, 사람을 죽여 사건을 만들면 자신을 쫓아올 테고 그게 또 하나의 사랑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대체 어디서 올 수 있었던 걸까. 탐정사들은 그녀를 잘못 본 것일지도 몰랐다. 단순히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잘못된 애정에, 잘못된 행동에, 잘못된 결말. 처음부터 선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웃어 보였다.

 

 

 

" 란포 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계속, 계속 바랐던 일이랍니다. 란포 님께서 저를 사랑해주실 때까지요."

 

 

 

그녀는 웃으며 한 발자국씩 뒤로 향하였다. 하나, 하나, 뒤로 갈수록 난간에 가까워져 결국 건물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사람이 개미만큼 보일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으나 사람 하나가 떨어진다면 죽기에 좋은 장소였다. 란포의 미간은 점점 좁혀졌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할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란포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해서, 라고 정의하기 어려웠다. 란포는 그녀가 죽지 않길 바랐지만, 그녀가 누구도 죽이지 않길, 누구도 그녀의 손에 죽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남는다면? 뭐가 됐든 말릴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 ...날 사랑한다면서, 죽는다는 거 웃기지 않아? 내가 널 평생 쫓을 거라는 것도 기만이야. 네가 저지르는 살인은 난잡해서 범인을 추론하기 쉽거든. 지금이라도 당장 넣을 수 있어. 계속 도망치는 건 무리야."

" 그렇지만, 란포 님. 저를 사랑하시잖아요, 저를 잡고 싶지 않으시잖아요. 그런데도 잡아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매일같이 저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시는 모습이 사랑스러우신 것도 알고 계셨나요?"

 

 

" 란포 님, 알고 있답니다. 제 머리로는 도저히 당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생각한 게 지금, 이 상황이 전부라는 것도."

 

 

저를 나쁘다 여기시나요? 저는 정말로 사랑해서 그랬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저만의 것이 될 수 없다면, 저만을 사랑할 수 없다면, 저라도 당신의 것이 되길 바랐어요. 당신의 기억 속에 가장 깊숙이 새겨질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기다렸답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할 때까지, 그리고 저를 사랑하게 되셨을 때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당신에게 남을 기회를 노렸어요. 란포 님은 명탐정이시잖아요. 이런 저를 기억해주시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였다.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이라면 중간에 끊고 무시했을 테지만, 조용히 듣고 있는 건 오로지 네가 나의 흥미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거야. 사장님의 눈을 의심할 생각은 없지만, 그녀가 무장 탐정사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건 처음부터였을 것이다. 란포는 이제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느꼈다. 만만찮은 위치에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란포는 손으로 모자를 더 깁게 눌러썼다. 다른 손은 여전히 주머니에 넣은 상태였다.

 

 

 

 

" 네가 거기서 떨어져도 너는 내게 있어 가장 끔찍한 사건이 되지 못할 거야."

" 그건…. 거짓말이시네요."

 

 

 

 

잔인하세요, 말하며 웃는 모습에 란포는 모자를 꽉 쥐었다. 누가 봐도 잔인한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오가는 대화도, 바람 소리마저 멈췄을 때, 란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래에서 비명이 들릴 때까지 란포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또다시 그녀가 내뱉은 말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 사랑해요, 란포 님.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제가 당신만의 것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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