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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현자님. 찾고 있었어.”

“카인? 무슨 일 있어요?”

“음, 무슨 일이라고 한다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 눈가가 빨개. 괜찮은 거야?”

“아, 이건…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유카리는 붉어진 눈가를 숨기듯 고개를 돌렸다. 이를 보고 있던 카인은 고개를 기울였지만, 이내 다시 웃어보였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점점 끝나갈 무렵, 카인은 한참동안 현자를 찾고 있었다. 파티가 막 시작되었을 때와 중간에 다른 마법사들과 대화하는 모습은 봤지만 정작 제 쪽에서 다른 녀석들과 대화하고 왕자님을 챙기자 현자가 제 시선 안에서 사라지는 건 금방이었다. 이에 대해 카인은 파티였으니 어쩔 수 없다거나 왕자님을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하다는 말 대신 오로지 저의 부족함으로 여겼다. 갑자기 파티가 습격 당한다면? 북쪽 마법사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들과 싸우게 된다면? 왕자님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소중한 현자님을 놓치면 안되는 일이었는데. 동료들이 있다고 조금 안심한 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도 붉어진 눈가가 뻔하게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모른다. 이는 어쩐지 불안감이 들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현자님을 울게 하는 건… 북쪽 마법사들 뿐이려나? 자연스럽게 떠오른 인물이 있으나 카인은 애써 생각을 지웠다. 함부로 의심하면 안 돼. 오늘 오웬은 제법 얌전하잖아. 앞으로도 의심할 수 없고. 무엇보다 현자님이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은 거겠지. 카인은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만큼 타인 또한 쉽게 믿는 편이었다. 물론, 쉽게 믿는다는 표현은 카인의 생각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이었다. 카인은 다른 사람들을, 제 동료를 쉽게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제게서 돌린 시선을 따라 몸을 조금 움직였다.

 

 

“괜찮다면 다행이야.”

“아… 카인. 그, 무슨 일 때문에 왔다고 했었죠?”

 

 

이상하게도 카인은 현자가 제게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을 답답하게 느꼈다. 현자는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제게서 고개를 돌린 채 말하였다. 그를 많이 지켜보았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아직 낯을 가리는 줄 알았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카인은 현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겨우 대답만 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잊은 적이 없지. 다름 아닌 현자와 처음 만난 날이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의기소침한 모습이 지나가고 이제는 몇몇 마법사들과 대화할 때 시선을 맞추기 위해 먼저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는 현자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하고도 시선을 맞출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약간 당황한 얼굴로 제 시선을 피했다. 사람이 시선을 돌릴 때가 언제 있더라. 무언가 감출 때, 상대가 불편할 때… 겠지.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쪽이라면 상관 없었다. 필요하다면 언젠가 얘기해주겠지, 하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감추기 위한 것치고는 시선을 피하는 일이 잦았다. 그럼 현자는 제가 불편한 건가? 그건 내키지 않는다. 현자가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있으며 도와주고 싶은데, 자신이 불편한 거라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카인은 제게서 고개를 돌렸으나 저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현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라… 별 일 아니라면 아니지만. 생각에 빠져 준비한 걸 전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먹 쥔 손을 내밀자 현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져 카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유카리도 손 내밀어 주겠어? 줄 게 있어.”

“이, 이렇게요…?”

 

 

현자는 그의 손 밑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유카리, 라는 호칭은 현자의 이름으로 다른 마법사들이 현자라고 부를 때, 카인은 간혹 가다 그를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특별히 더 친하다기보다는 존칭이나 예의를 차리는 건 카인에게 있어 서툰 탓이었다. 그리고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다며 현자는 카인이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내뱉지 않았다. 카인은 그게 참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제 손 밑에 가지런히 놓인 양손은 어떻게 봐도 제 손보다 훨씬 작은 손이었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잡는다면 두손을 한번에 잡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뭐, 예의가 아니니 그럴 일은 없겠지. 카인은 제 손을 천천히 펼치며 조심스럽게 악세사리 하나를 양손에 올려두었다. 그의 손에 올린 건 금색에 붉은색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현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인은 그게 또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간질거리는 마음과 함께 웃음을 참아내었다.

 

 

“이 반지는…”

“크리스마스에 착한 아이는 선물을 받는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준비하고 싶었어.”

“…저, 저는 이제 아이도 아니고. 착한 일은…”

“하하, 섭한 말 하지 말아 줘. 현자님이 우리를 도와주는 건 분명 착한 일이잖아.”

 

 

제 말에 한참동안 반지를 바라보던 현자는 살짝 웃는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알 수 없었으나 곧이어 좀 더 밝은 웃음으로 저를 바라보자 그 얼굴이 기뻐하는 얼굴인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감정표현이 솔직하다는 느낌이었다.

 

 

“저, 해봐도 되나요?”

“그야 물론이야. 괜찮으면 내가 껴주고 싶은데. 어때?”

“네?”

“잠시만. 실례할게.”

 

 

현자가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카인은 조심스럽게 그의 손 하나를 쥐었다. 다른 손에는 그에게 주었던 반지를 다시 챙긴 참이었고, 카인은 손을 잡은 채로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막상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려 하니 손가락 크기를 직접 재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치수도 모르고 왜 반지를 구매했냐고 한다면… 다른 악세사리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띈 반지가 어울리겠다 싶어 덥석 사왔을 뿐이지 큰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었다. 깜짝 선물로 준비하고 싶었고, 다른 일도 겹치다보니 누군가한테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게 문제였다. 그래도 어디든 맞지 않으려…나? 하나하나 손가락을 살핀 후에 카인은 검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다행히 반지는 현자의 손가락에 맞는 크기였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카인이 고개를 들자 잔뜩 붉어진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를 피한 시선은 아니었다.

 

 

“카, 카인…”

“…어, 현자님. 괜찮아? 얼굴이…”

“괜찮아요! 정말, 정말 괜찮아요!!”

 

 

말과 동시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채 멀어지는 현자를 카인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선은 피하지 않았어도 제게서 뒷걸음을 친다. 뭔가 잘못했나? 의문이 들어도 금방 드는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 괜찮은 거겠지만… 마음 한 구석이 탐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멀어지는 걸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이럴 때 카인은 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제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다. 붉어진 얼굴로 점차 멀어지는 현자를 카인은 덥석 붙잡았다. 이런 식으로 떠나지 말아 줘. 저 자신도 모르게 그리 말하는 듯했다.

 

 

“어, 어? 카인…”

“갑자기 미안해.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어. 정말, 괜찮아?”

“그게, 괜찮은데요. 조금, 쑥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쑥스러워…?”

“반지를… 끼워주는 건…”

“응…?”

“야, 약지 손가락은 아니었지만…”

 

 

그제야 카인은 붉어진 얼굴과 제게서 멀어진 걸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은… 아니, 싫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닌데… 우린 그런 사이가… 현자와 마법사일 뿐… 온갖 생각이 들고 난 후에야 카인의 얼굴도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더니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미안해요. 카인, 그런 의미가 아닌 건 아는데…”

“하하, 괜찮아. 아예 그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예?”

“으음, 지금은 정확하게 말 못 하겠는데.”

 

 

제 볼을 긁적거리며 카인은 제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순전히 우연으로 인해 알게 된 일이지만, 제게서 시선을 돌리는 현자가 마음에 걸렸던 일도,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싶다는 생각도, 그가 웃으며 저를 바라보자 간질거렸던 이유도, 전부 어떤 마음에서 나온 일인지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네, 나 제법 현자님을… 크리스마스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라고 하던데 선물을 주려다 되려 기회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대로 모른 채 현자님을 보냈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카인은 아직 붉은끼가 남은 얼굴로 평소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현자님의 모습이 여전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말해도 될까? 그때는 또다르게 준비를 해야겠지만 말야.”

“네? 네에… 기다릴게요…”

 

 

카인은 제 주인에게 맹세하는 이처럼 정중하게 말하였다. 카인에게 있어서 이제 시작이기에 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저만 좋아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지. 현자님은 어떤 마음인지, 그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카인은 알아야만 했다.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채워진 마법관의 크리스마스 날, 많은 이들 중에서 하나의 사랑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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