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쁘도록 진부한 선물에게
성야를 앞둔 밤이었다. 거리의 나무에는 작은 전구가 반짝거리고, 사슴이며 썰매 모양의 오브제가 화려하게 꾸며진 트리 곁을 지키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는, 12월 말.
“…….”
“마세,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은데!”
시노노메 야마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머리에 대강 얹혀 있던 후줄근한 산타 모자가 맥없이 툭 떨어진다. 아이쿠, 짧은 추임새 같은 소리와 함께 모자를 주워든 소년은 비뚤어진 박음질 자국이 선명한 그것을 제 머리에 도로 뒤집어쓰며 티 없이 맑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천진한 모습에도 히마와리는 웃을 수 없었다. 웃기 힘들다는 게 맞을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두 손은 학예회에서나 쓸 법한 색종이 장식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집에 보내줘…….”
“어허, 그거 다 하기 전까지는 못 간다고 했을 텐데.”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장식을 왜 공연 직전에 벼락치기로 시키는 건데!!”
“크리스마스를 순수하게 즐길 생각만으로 가득 찬 커플이 꼴 보기 싫어서인 게 당연하잖냐!”
떼잉 하는 혀 차는 소리가 히마와리의 신경을 갉아먹는다. 마스터가 이상한 피해 의식을 품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말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에덴에 있는 커플이라 하면 자신과 단테뿐인데 그걸 기어코 물고 늘어지는 꼴이라니. 하아, 긴 한숨과 함께 히마와리가 고개를 들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11시 반을 막 지난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오전이냐고? 차라리 그랬다면 이토록 간절하게 퇴근을 부르짖지도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30분 앞둔 앞둔 12월 23일 밤 11시 32분, 라이브 하우스 에덴의 직원 마세 히마와리는 출근한 지 12시간이 넘어가도록 퇴근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기념 라이브를 계획해놓고 겨우 트리 하나만 성의 없이 덜렁 세워놓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공연을 3일 앞두고 급하게 공수해오느라 뒤죽박죽으로 엉킨 장식이며 그마저도 분위기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탓에 길게 자른 색종이를 손수 엮어 고리 형태로 이어 붙여야만 하는 현재의 작태가 심히 불만스럽다. 크리스마스 당일엔 밴드맨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별개의 스케줄이 있을 테니 그다음 날인 26일로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으나 문제가 있다면 24일과 25일은 에덴도 공식적으로 휴업한다는 점이고, 때문에 그전에 장식을 달아둬야 한다는 점이었다. 누구는 할로윈 끝나자마자 캐롤 틀고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느라 난리도 아니라는데, 왜 우리는 눈앞에 닥치고서야 급하게 해치우려고 하는지. 마스터가 일부러 못된 명목을 내세우긴 했으나 사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기는 했다. 연말이라고 답지 않게 라이브 일정이 몰아친 탓이었다. 게다가 구두쇠인 마스터가 웬일로 낡은 기자재를 차근차근 갈아치우기 시작한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히마와리는 이성보다 감정에 따르기로 했다.
그나마 낮에 연습을 끝낸 밴드맨들이 도와준 덕에 마무리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게 몇 안되는 위안일까. 단테도 라모 씨와의 약속 시간 전까지 틈틈이 도와주고 간 데다 꾸미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큐어큐어트론이 어디에 어떤 장식물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전반적인 틀을 잡아주었고, 굿즈를 직접 제작했던 짬으로 손이 빨라진 페어리 에이프릴이 일감을 확 줄여주었다. 카즈마는 끝까지 남아 도와주고 싶어 했지만 피로가 쌓였던 건지 10시도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냥 보내줬더랬다.
어찌 되었든 카즈마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에게 일정이 있어 일찍 가봐야 했던 오시리스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말동무를 해주다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간 블레이스트의 도움도 결코 작지 않았다. 적당히 도와주고 간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울 따름인데, 딱 한 명. 유일하게 스케줄이 빈 밴드맨이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야마토, 졸리진 않아?”
“에덴에 있어서 그런가, 말짱해!”
“새 나라의 청소년은 일찍 자러 가야지. 안 그럼 키 안 큰다?”
“더 안 커도 마세보다 크니까 괜찮아!”
분명 악의 없이 한 말이겠지만 어쩐지 좋지 않은 곳에 푹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키가 작은 것도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는 사고뭉치 강아지 같은 야마토가 키를 들먹이니 묘하게 반발심이 든 탓이다. 귀여워하는 건 제 쪽인데 머리는 상대 쪽이 더 높다는 데서 인지 부조화를 느낀 탓일지도 모른다. 뭐, 대형견도 좋긴 하지. 뒷발로 서서 털복숭이 앞발을 들이미는 큰 개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히마와리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갈색 털에 푸른 눈을 가진 개의 이미지를 엿보는 것처럼 물끄러미 히마와리의 표정을 관찰하던 야마토가 나는 사람인데 하고 대꾸한다. 소년이 타인의 마음을 멋대로 읽고 대답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마세야말로 졸려 보여.”
“으응, 평소 같았으면 자려고 누웠을 시간이라서.”
“그건 큰일이네. 뒤는 나한테 맡기고 어서 가, 더 소중한 게 있잖아……!”
“내가 너를 두고 가긴 어딜 가!”
갑작스러운 상황극 같은 대사를 자연스레 이어받자 어휴 하는 마스터의 한숨 소리가 둘이 뭐 하느냐는 듯 무안을 준다. 머쓱한 마음에 짤막한 웃음소리를 내자 야마토가 뭣도 모르고 마주 웃었다. 애초에 야마토는 상황극 따위의 장난을 걸었다는 자각이 없을 것이다. 그토록 과장되어 보이는 말마저 솔직한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다. 히마와리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올곧은 이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야마토를 고를 수 있을 정도의 성정이 아니던가. 그 말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만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불만이 꺼진 빈자리를 대신하듯 잠기운이 파고들자 히마와리는 두어 번을 연달아 하품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맺혀 아른거리는 시야로 시계를 올려다보면, 11시 51분.
아, 다 만들었다. 치렁치렁한 장식을 번쩍 들어 올리자 한 발 먼저 작업을 끝낸 마스터가 뻐근해진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내쉰 안도의 한숨 소리와 장난감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이는 야마토의 환호성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이제 달기만 하면 되는데……. 히마와리는 미리 붙여둔 양면 테이프의 위치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나보다 큰 야마토야, 이것 좀 붙여주라. 아까 다른 벽에 붙일 때 보니까 좀 높더라고……. 잠기운에 늘어진 말끝에도 맡겨만 달라며 올곧은 목소리로 대답한 야마토가 색종이 고리를 낚아챈다.
응, 그쪽. 반대편은, 맞아, 거기. 또 다른 곳은…… 뭐야, 잘 찾네. 멀찍이서 장식의 위치를 확인하던 히마와리는 이내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척척 알맞은 자리를 찾아내는 야마토를 바라보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나 없이도 잘하는 것 같고, 이제 다 끝났고, 그러니까 잠시만 눈 좀 붙여도 되지 않을까. 그대로 눈을 감자 까무룩 수마에 잠긴 의식이 암전한다. 마세 히마와리의 기억은 그렇게 끊어지고 말았다.
한편 장식을 다 배치하고 돌아온 시노노메 야마토는 고개를 꾸벅이며 잠든 히마와리를 뒤늦게 발견했다. 내버려 두면 이마를 박고 깨어날 것만 같은 그 모습에 후다닥 달려가 무거운 고개를 받친 소년은 늦지 않게 받아냈다는 것이 못내 뿌듯하다는 듯 에헤헤 하는 웃음소리를 낸다.
“하여간에, 집에 가서 잘 생각은 안 하고.”
“많이 피곤했나 봐! 갈 준비 끝나면 깨우지 뭐.”
그러니까 마스터가 마세 짐 좀 갖다주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마스터에게 눈짓한 야마토는 가만히 어깨를 내어주다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12시 1분. 방금 막 날짜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헐레벌떡 메신저를 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밴드 멤버 중 막내의 생일이었다. 폭격에 가까운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자 다른 멤버들도 우다다 축하 메시지를 올리기 시작한다. 정작 생일을 맞은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알림에 자다 깼는지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오타뿐인 답장을 돌려주고 있었지만.
랜선을 타고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자니, 메신저의 진동과 타자를 치는 팔의 움직임 때문인지 어깨에서 끄응 하며 앓는 소리가 났다. 마침 마스터가 히마와리의 가방과 겉옷을 저 구석에서 건져 먼지까지 털고 건네주었으므로, 야마토는 제게 기댄 작은 몸뚱이를 흔들며 그 위로 쓰고 있던 산타 모자를 폭 소리 나게 얹었다. 섬세하지 못한 손길이었던 까닭에 모자를 썼다기보다 차라리 덮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 마세.”
성탄절 당일의 첫 인사는 제 것이 될 수 없으니 전날인 이브의 첫 인사라도 가져가겠다는 심보였다. 천하제일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닐 만큼 모든 활동에서 최고와 첫째를 노리는 야마토로서는 그 정도가 최선의 양보였으리라. 아쉬움을 지운 손길로 히마와리를 깨우던 야마토가 문득 하얗게 빛나는 액정과 진동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축 늘어뜨린 손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휴대폰에는 히마와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메리 크리스마스’를 가장 먼저 속삭일 인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가 통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단테? 단테지? 단테구나!”
[……? 왜 네놈이 받지?]
“마세가 자고 있어서 대신 받았어! 지금 막 깨우려고 했—”
[관둬라. 내가 데리러 갈 테니.]
“그런가, 알았어!”
쯧, 혀 차는 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의 대답도 지체하는 기색도 없이 통화가 끊긴 화면을 바라보던 야마토의 입술에서 또 다시 헤헤 하는 웃음소리가 샌다. 나도 그렇지만, 단테는 마세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다행이네, 마세. 중얼거리듯 속삭이면 잠결에도 용케 연인과 제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히마와리의 눈꺼풀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어라, 깼나? 단테가 깨우지 말랬는데……! 언젠가 잠든 고양이를 어루만졌던 기억을 되살려 모자에 반쯤 파묻힌 머리를 쓰다듬자 언제 움찔댔냐는 듯 고른 숨소리를 따라 둥근 어깨가 작게 들썩인다.
옳지, 옳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마스터가 건넨 코코아 잔을 받아들면서도 야마토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제 소중한 동료이자 오래도록 자신들을 응원해 준 관객의 곁을 잔잔히, 또 마땅히 지킬 뿐이었다. 산타라고 할까, 오히려 선물 그 자체에 가까운 친구를 위해. 소년의 밴드, 블레이스트에 몇 없는 발라드 곡을 번갈아 흥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