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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인가…”

 

 

네로는 제 방에 놓인 주방에 서서 이제 막 만든 파이를 바라보았다. 파이 위에는 체리처럼 작고 붉은 과일이 올려져 붉은빛을 띄고 있었고,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가 만든만큼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평소 만드는 파이였다면 완성이 되었을 때 곧장 내놓았겠지만, 지금 만든 파이는 실험작과도 같아서 누구한테 줘야 하는지 고민이 먼저 들었다. 만든 족족 먹어치워야하는 건 힘든 일이란 말이지… 자연스럽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있어도 네로는 일단 고개를 내저었다. 웬만하면 먼저 아는 척 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따로 있었고. 네로는 완성된 음식을 보고도 고개를 기울이는 건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

 

 

“아, 다음주… 크리스마스였네요.”

“크리스마스?”

“네에, 이쪽 세계에는 없는 걸까…”

 

 

유카리는, 이 세계로 와 현자라고 불리던 이는 제 품에 안긴 바구니를 보고 다시 상대를 바라보았다. 바구니 안에는 사과처럼 보이는 열매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는 과일은 다른 세계에서 온 저에게 익숙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세계에 도착해 현자라고 불리며 생활하게 되었지만 다정한 마법사들과 함께 지내며 이세계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현자의 일…이라고 해도 현자의 마법사로 선택받은 이들에게 마을에서 오는 임무를 배정하고 같이 살펴보거나 타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는 등 지금까지 살면서 해온 일들과 전혀 다르지만 직접 마법을 부려야 하는,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여유로운 날에 현자는 가끔 네로를 따라 시장에 가 재료 구매를 도와줄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네로도 번거로울 테니 혼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했으나 할 일이 없을 때 뭘 하면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에 넘어가 이제는 그가 먼저 현자를 찾는 날도 있었다. 이제 막 겨울이 되고, 날이 춥다고 느껴지자 유카리는 원래 살던 곳의 분위기를 절로 떠올렸다. 일주일 전도 아니고 12월이 되자마자 거리가 온통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뒤덮이고, 캐롤송이 들려오며,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던 날이 제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제 집도 아니고, 하다못해 원래 살던 세계도 아니라서, 캐롤송은 물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에 빠져 날짜를 확인하자 마치 저를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에서 일주일 전인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서야 현자 또한 이 세계에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쁜 나날이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정작 크리스마스가 뭐냐는 네로의 질문에 유카리는 잠시 고민했다. 크리스마스라는 건 말이죠, 예수의 탄생일… 아, 예수는 어떤 분이냐면… 하고 역사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전부 늘어놓을 수 없었다. 알아듣지도 못할테고, 자신도 아는 게 적은 탓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산타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에요.”

“산타할아버지?”

“아,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시는 분인데… 붉은색 옷을 입고, 루돌프라는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녀요.”

“왠지 좀… 의심스러운 할아버지 아냐…?”

“그, 그렇죠. 제 설명이 부족한 기분이지만…”

“흐음, 그러면 리케랑 미틸의 선물을 준비해야하나?”

“네?”

“아, 아니. 그 녀석들 착하잖아. 여기는 산타할아버지… 라거나… 없고…”

 

 

네로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볼을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착한 녀석들이고, 아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둘뿐이지… 쌍둥이들은 아이가 아니니까… 아, 왕자님도 아직 아이였던가? 부담스러운 시선에 아무렇게나 말을 늘어놓는데도,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눈빛에 네로는 결국 다시 현자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할 말 있으면 해도 돼…”

“아… 아하하, 죄송해요. 네로는 상냥하네요.”

“아니,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요.”

 

 

그의 대답에 들려온 건 현자의 웃음소리였다. 착하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그가 이어서 내뱉은 말에 애써 고개를 돌리는 게 전부였다. 착하다거나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냥… 네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속으로 고민했다. 착한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북쪽에서 더이상 지내지 못하고 동쪽으로 넘어갔을 때, 마법사인 것만 숨기면 제게 있어 가장 편한 동쪽 나라는 결국 사람마다 맞는 천성이 있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그런 천성을 떠올리자면 자신은 누군가를 돕고 싶다거나 무언가 베푼다거나 선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조금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었고, 신경 쓰이는 일이 없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제와 착하다는 말에 들뜨는 나이도 아니었다. 선생님인 파우스트가 저보다 조금 어린 나이인 걸 생각하자면 이제 의젓해져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그런 게 아닌데. 그렇지만 네로는 현자를 앞에 두면 착한 마법사가 아니라고 크게 부정하지도 못했다. 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 녀석이 들었으면 분명 웃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뒤늦게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들키지 말아야지… 그리고 제 생각을 깨우듯 손에서 갑작스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현자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제 손을 잡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어요!”

“응…?”

“저도 도와줄게요!”

 

 

*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에 네로는 현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파티에 내놓을 신작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트리라는 커다란 나무도 준비하는 모양이니 본격적이라 여긴 것에 비해 음식은 뭐든 괜찮다면서 빨간색과 초록색이 조화롭기만 한다면 된다는 이야기에 네로는 너무 대충인 건 아닌지 고민했다. 끝내 생각한 방법은 평소 만들었던 요리를 살짝 변형하는 식이었다. 네로는 이제 막 만든 과일파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크리스마스에 대해 잘 알 뿐더러 먼저 얘기를 꺼낸 건 현자였으니 그에게 가서 파이가 어떤지 물어봐야겠다는 결론이었다. 나름 깜짝선물처럼 준비해주고 싶었지만, 정작 당일에 마음에 들지 않는 쪽도 곤란한 일이었다. 네로는 만든 파이를 들고 방을 나섰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을 테니 조금 급한 마음도 들었다. 어디보자, 분명 현자씨는 오늘 뭘 한다고 했더라. 트리를 꾸밀 장식을 산다고 했던가? 아직 안 돌아왔다면 곤란한데. 고민에 빠져 걸음을 옮기던 네로는 왁자지껄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소리든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현자의 목소리를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말하면 또 어느 녀석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게 분명해 일단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에만 신경 써야지. 네로는 아까보다 더 들뜬 표정으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나무를 세워놓고 클로에, 샤일록과 대화를 나누는 유카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이라면 괜찮겠지, 서쪽 마법사들이니까. 그들은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보다 음식에 대해 화려한 평을 내놓는 마법사들이었다. 이 나이에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듣고 우쭐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역시 좋은 칭찬만큼 들뜨게 하는 일은 없었다. 네로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현자 씨, 바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 네로. 무슨 일 있어요?”

“와아, 현자님! 좋은 냄새가 나!”

“이번에도 맛있는 파이를 구워왔나요, 네로?”

 

 

역시나. 예상한대로 파이를 내놓기도 전, 칭찬부터 늘어놓기 시작한 서쪽 마법사들의 모습에 네로는 쑥스러운 웃음을 감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고 있던 파이를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자 아까보다 더한 감탄소리가 들려왔고, 이번에는 현자의 목소리도 그들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네로는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현자씨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고 생각했다.

 

 

“대단해요, 네로. 벌써 파이를 만들었나요? 무척 예뻐요!”

“이걸로 괜찮아? 현자 씨가 말한 느낌을 살렸는지 잘 모르겠어서.”

“응, 충분해요. 역시 네로. 믿음직해요. 케이크도 기대되네요.”

“하하… 그렇게 띄워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렇지 않아요! 저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네로의 음식이라면 믿고 먹는걸요. 네로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지니까요.”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에 네로는 살짝 웃어보였다. 이렇게까지 칭찬해주는데 싫어하는 요리사는 역시 없…

 

 

“왜 그렇게 봐…?”

 

 

네로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나 싶어 제 얼굴을 문질거렸다. 파이를 보고 기쁘게 웃는 현자에게 향해 있던 시선은 이제 저를 보고 미소짓는 클로에와 샤일록에게 향하였다. 네로의 질문에도 샤일록은 후후, 소리를 내며 웃을 뿐이었고, 클로에는 왠지 어색하게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네로는 그들의 웃음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괜한 오해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이, 너희들…”

“응? 왜 그래요? 네로, 혹시…”

“아니…! 아무 일도 없어, 현자 씨. 마음에 들었으면 다행이야. 그건 너희끼리 먹어. 난 다른 음식도 만들어봐야해서!”

 

 

그들을 추궁하기도 전에 들어온 현자의 질문에 네로는 급하게 고개를 내저었고, 혹여나 더 말이 이어질까 걱정되는 마음에 급한 발걸음을 옮기며 대꾸했다. 현자가 클로에와 샤일록을 바라보자 그들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네로… 많이 바빠보이는데, 역시 도와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동쪽 마법사는 수줍음이 많잖아요? 분명 혼자 하는 게 더 편할 테니까요.”

“응, 지금은 혼자 두는 게 좋을지도 몰라. 우리는 나무를 꾸며야 하잖아? 현자님, 이 색은 어때?”

 

 

현자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로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네로는 가끔 허둥거리는 때도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브래들리와 있을 때였다. 그래서 네로가 브래들리를 불편해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브래들리가 아닌, 서쪽 마법사 클로에와 샤일록, 그리고 현자인 자신 뿐이었다. 동쪽 마법사인 네로에게 활기찬 서쪽 마법사들은 조금 부담스러운 걸까? 괜찮을 거란 말에 상점에서 사온 붉고 둥근 장식을 손에 들었지만, 네로의 반응에 걱정이 드는 건 여전했다.

 

 

*

 

 

이후로도 현자는 몇 번이고 네로를 보기 위해 주방과 그의 방을 기웃거렸다. 그때마다 다른 마법사들이 나타나 정작 네로와 둘이 있을 자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트리보다 그를 먼저 챙길 걸 그랬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늘은 꼭 말을 걸겠다며 한마디를 부탁한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카리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과 함께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파티가 시작되자 참여할 거란 기대가 들지 않았던 북쪽 마법사들마저 모여 마법관의 소란스러움이 더욱 더 커지기 시작했다. 가장 커다란 별이 위에 달려있고, 작은 장식들로 이루어진 트리와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이루어진 마법관에 네로가 현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한 음식들까지. 마법사가 존재하는 세계라고 말하지 않으면 제 세계에서 볼 수 있을만한 풍경에 유카리는 미소지었다. 살면서 성대한 파티를 참여한 적은 없었지만, 만약 참여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추억에 잠겨 있는 것도 좋지만… 유카리는 샴페인이 담긴 잔을 들고 마법사들과 하나하나 인사하며 마법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가 살던 곳에서 본 크리스마스와 비슷하다며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파티가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하며 많은 대화를 끝으로 마지막에 말을 건넨 마법사는 바로 네로였다. 현자는 벽에 기대 파티를 둘러보던 네로의 곁으로 가 먼저 감사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게 된 건 네로 덕분이라며 음식을 준비했을 때보다 더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네로는 그 모습에 진정하라며 웃어보였다. 네로에게는 현자가 다른 세계로 와 오늘처럼 들뜬 모습을 본 적은 처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분명 돌아가고 싶겠지. 처음 마법관에 왔을 때, 자신의 식당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누구보다 돌아가는 일에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방법조차 찾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 현자의 기분을 함부로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즐거워보이니 다행인가. 네로는 마법관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괜찮은 것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유카리는 여전히 샴페인 잔을 든 채로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 맡에 선물이 놓여 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진짜 산타클로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응? 원래는 없어?”

“아, 네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아아, 어쩐지. 마법도 없는데 전 세계에 선물을 줄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아하하, 그렇네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살던 곳에도 마법사가 있었을지도…”

 

 

시간이 흐를수록 파티는 활기를 더해갔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재앙을 잊은 듯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방관자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쭉 늘어놓던 현자는 어느새 말을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멈춘 목소리에 네로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작 눈물을 흘리는 현자를 마주하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해 큰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파티의 소란스러움에 묻혀 그들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저희를 발견하지 못한 건 네로에게 있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혀, 현자씨. 울어…?!”

“아, 아뇨. 그게… 저도 모르게… 그, 어쩌다보니…”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해줘.”

“아… 죄송해요. 하하…”

 

 

유카리는 손으로 제 눈가를 눌렀다. 돌아가고 싶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한 탓에 제 세계가 유독 그리워진 건 아니었다. 그저 제 얘기를 늘어놓다보니 만나고 싶은 이들과 아늑한 집 생각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마법사들과 지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제 모든 걸 두고 온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였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처럼 제 세계와 비슷한 풍경이 되면 돌아가는 방법이 더 간절했다. 기껏 자신을 생각해주며 준비한 파티에 눈물이라니. 미안한 마음에 유카리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웃어보였다. 제 눈물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 그를 위해서라도 눈물을 더 흘릴 수 없었다. 괜찮아요, 정말요. 유카리는 몇 번이고 괜찮다 말하였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네로였다. 네로 터너, 스스로가 착한 마법사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타인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법사였다.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미소짓는 마법사. 현자에게 착한 존재로 남고 싶은 마법사. 유카리라는 사람에게서 시선을 뗀 적 없는 마법사. 네로는 언제나 유카리가 신경 쓰였다. 그 마음에 분명 좋아한다는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잘 이해한다. 그런 제가 그를 붙잡을 계기 따위, 되어서도 안 되고, 되고 싶지도 않았다. 발목을 붙잡을 수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네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줘. 현자 씨가 살던 곳과 얼마나 똑같이 만들 수 있을지 자신 없지만,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이 말을 하며 자신의 표정이 어떘는지 네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언젠가 떠날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따른다는 건, 매번 제 쪽이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었는데. 나는 떠날 녀석들만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울지 마, 현자 씨. 네가 울면 여기서 가만 있을 녀석이 없거든.”

 

 

이번에는 좀 더 농담처럼 말했다고 생각했다. 가만 있지 않을 녀석들 중에 저도 속한다면 속하는 일이겠지. 할 수 있는 건 몇 없지만. 한참 제 눈가를 문지르던 현자는 그를 보며 미소지었다. 고마워요, 네로. 역시 상냥하네요. 제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웃어보일 뿐이었다. 저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를 내면서 매번 저를 상냥하다고 말한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에게 있어 착한 마법사로 남는 정도로 충분하다. 잠시 고민하던 유카리는 또다른 잔을 들고 와 제게 건네었다. 잔 안에 든 샴페인은 분명 샤일록이 고심해 고른 종류였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아닌, 즐거움 혹은 현자를 위해 생각해서 골랐을 거란 묘한 확신이 있었다. 너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그러니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잔을 바라보았다.

 

 

“네로가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요.”

“… …그래?”

“아, 제가 크리스마스에 하는 인사를 알려줬던가요?”

“아니, 글쎄. 다른 녀석들이 하는 걸 듣긴 했지만.”

 

 

유카리는 아까보다 더 밝은 얼굴로 자신의 잔을 내밀며 네로가 들고 있던 잔에 살짝 부딪혔다. 그가 보였던 눈물은 혹시 제 착각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금방 기운을 차렸다. 그게 꼭 스스로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잔을 부딪힌 현자는 그를 보며 말하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네로!”

“…메리 크리스마스, 현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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