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2월 24일 11시 48분.

토요일 오후 탐정사, 둘이서만 남아 야근을 할 때 턴테이블에서 재즈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쿠니키다와 젠킨스에겐 일종의 법칙이나 규율과도 같았다. 쿠니키다는 크리스마스 이브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율이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제법 놀랐으나 상대가 젠킨스였으므로 그려려니 했다. 물론, 프랭크 시나트라의 Come Fly With me은 젠킨스가 가지고 있는 음반 중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으나-그녀는 참 우습게도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20세기 후반의 물건(대부분 영화나 음악)에 어린아이처럼 열광하곤 했다. 보편적인 23살의 청년이 가질 취향인가? 쿠니키다는 의뭉스러웠으나 자신이 아는 젠킨스는 '그럼 22살이 낚시에 가는 건 말이 되냐'며 제게 빈정대고 쏘아붙일 게 뻔했으므로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녀가 '다른 노래를 들을 거야'라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 것이라고 예상한 쿠니키다는 미간을 찌푸리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하고픈 말은 많았으나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측불허한 여자. 그런 여자랑 지금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니.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쌓이는 기분인데 실제로 같이 보내게 되었으니. 한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지금 뱉었다가는 욕이란 욕은 다 토해낼 젠킨스가 눈에 선했다.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아래에서는 키스해도 된다는 거 알아?"

 

한참을 창가에 서서 사람이 오가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젠킨스가 쿠니키다에게 물었다.

 

"꽤 뜬금없는 이야기군. 너답게 제법 외설스럽고." 쿠니키다는 본인이 읽고 있던 책에서 젠킨스에게로 눈동자를 옮기며 답했다.

"여러 설이 있지, 연인인 남녀가 크리스마스 날 겨우살이 아래서 서로 입을 맞추면 마녀의 보호를 받는다던가, 행복해진다던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받는다던가. 낭만적이잖아."

 

 

쿠니키다 도련님께서는 미신은 안 믿을 나이인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 하고 그녀는 쿠니키다에게 눈 깜짝할 새에 다가와선-그의 팔을 잡아당겼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었겠으나-자신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쿠니키다의 날카로운 비명이 젠킨스의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악!

 

 

"이, 이게 무슨."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춤추고 싶어서. 스물두 살이나 먹고 왈츠도 못 추는 건 아니지?"

 

 

그게 아니면 설마 부끄러운 거야?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젠킨스는 타인과 맞닿는 것에 지독하게 능하다. 능글맞고 짓궂은 투로 말한 뒤, 애매한 모양새로 허공에 얹어진 쿠니키다의 손을 잡아끌어 제 허리 위에 올려두는 그녀를 보곤, 한 사람만 목석같이 서 있으면 그게 춤이겠느냐 쿠니키다는 생각하며 음악에 맞춰서 발을 옮긴다.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지 마라. 물론 출 줄 알지만, 네 녀석에게 '이 나이 먹도록'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군. 고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잖나."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 게 아니라, 한 살이나 차이가 나는 거지. 말대답하지 마. 당신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재수가 없네."

 

 

 재즈 노래는 예고도 없이-젠킨스가 무슨 장치를 해둔 거로 분명하다, 고 쿠니키다는 생각했다-왈츠로 바뀐다. 대개 둘의 춤은 쿠니키다의 느릿한 발돋움에 젠킨스가 맞추는 형태다. 첫 왈츠를 췄을 때부터 이는 변함이 없었다. 춤에 익숙하지 않은 쿠니키다가 젠킨스의 춤 상대가 되어주었기에, 그것은 또 젠킨스의 배려였다. 쿠니키다는 춤을 추는 젠킨스가 좋았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할 때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힘찬 몸짓을 하는 젠킨스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때의 젠킨스는, 정말로 살아있는 상태였으니까.
주머니에서 꺼낸 리본에 묶인 겨우살이. 춤을 추다가 발을 멈춘 젠킨스가 까치발을 들어 그것을 쿠니키다와 본인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이 의도까지 파악하지 못할 쿠니키다가 아니었다. 천천히, 젠킨스의 뺨을 잡고 얼굴을 겹쳐낸다. 부드러운 살덩이가 닿고, 온기가 퍼져나간다….


젠킨스는 겨우살이 아래에서 눈을 내리감은 상대를 천천히 관찰한다. 이게 본인 입이 닳도록 말하던 이상적인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만약 정말 그랬었다면 젠킨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신은 슬리퍼를 상대 얼굴에 던지며 발랑 까진 엉큼한 놈이라고 질타를 날렸을 것이다. 입술이 떨어지면 타액이 느리게 늘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의 느린 동작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나?"

 

아름다워서. 머릿속에 뜬 물음에 대답하듯, 쿠니키다가 금방이라도 터질 양 벌건 본인의 얼굴과 정반대로 정갈한 어조로 말한다. 아니, 보통 그걸 키스한 뒤에 말하지는 않지? 그리고 그건 아까 내가 한 말이지 않아? 하고픈 말을 꾹 참은 젠킨스가 쿠니키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부루퉁한 표정으로 한참 그를 바라보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씩 웃었다. 근데 쿠니키다. 실은, 내가 더 흥미로운 얘기를 알고 있는데, 하는 말과 함께.

 

 

"겨우살이 아래에서 두 번 키스하면 무병장수한다더라."

 

 

젠킨스가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속이 뻔히 보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쿠니키다의 잇새에서 헛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정말인가? 그 얘기는 처음 듣는군."

"진짜인지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글쎄다. 특정한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말하는 쿠니키다의 말투가 퍽 농조다.

"그래, 그럼 그냥 할게."

 

 

무어라 대답도 듣지 않은 젠킨스가 까치발을 들었다. 둘의 얼굴이 다시금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젠킨스. 쿠니키다는 젠킨스의 입안에서 속삭였다. 쿠니키다는 춤을 추는 젠킨스가 좋았다. 그리고 그 옆엔 언제나 본인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