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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틀로다이우스는 싸늘한 기온에 저절로 눈이 떠져 창밖을 바라보니 사방이 온통 흰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밤사이에 눈이 온 것이다.

 

 

 

별빛축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눈이라니.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낭만적이라고 하던가. 휘틀로다이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해가 중천임에도 아직 열리지 않은 방문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미 일어났겠지. 그래도 오늘 내내 저 문이 열리는 건 손에 꼽으리라. 그렇게 짐작했다.

 

눈이 내리면 일라이는 늘 기분이 가라앉았다. 언젠가 일라이가 해준 얘기로는 눈을 보면 자신의 고향이 생각난다고 했다. 물론 숲을 버리고 나온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고향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늘 눈이 올 때면 일라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럴 때면 늘 같이 자던 침실은 금세 두 사람 몫의 열이 언제 있었냐는 듯 차갑게 식어 한동안 온기를 잃어있었다. 눈이 거의 녹을 즈음이면 다시 기운을 차린 일라이가 집안을 그리고 집 밖을 열심히 쏘다니며 특유의 태양 같은 웃음을 짓겠지. 이 일련의 흐름이 익숙해진 휘틀로다이우스는 저 문이 저절로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날을 위해 기쁘게 해줄 무언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별빛축제니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자신의 연인이 가라앉았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씩 방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일라이가 모습을 보일 때의 모습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인지 다크써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렇게도 좋아하고 잘 먹던 고기는 먹는 둥 마는 둥 입에 거의 밀어 넣듯이 먹고는 그대로 다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

 

그다음 날에도 눈이 와서 어느 정도 녹은 눈 위로 또 소복하게 쌓였다. 하얗게 물든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휘틀로다이우스는 감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오늘도 일라이는 방에 틀어박혀서 거의 나오지 않겠지... 어제 저녁에 봤던 일라이의 안색을 떠올리며 휘틀로다이우스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에게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저녁에 잠깐 방 밖으로 나온 일라이에게 별빛축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조금이라도 즐거운 화제를 꺼내서 얘기를 하면 기분전환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꺼낸 것이었다.

 

"내일은 사귀고 나서 맞이하는 첫 별빛 축제잖아~어떻게 보내는 게 좋아?"

 

"아... 벌써 그렇게 됐어? 내일... 이라고."

 

조금 난감해하는 안색에 휘틀로다이우스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일라이였기에 자신과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드문드문 들어봤을 뿐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설마 별빛축제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실수했다는 생각에 급하게 화제를 바꿔보려 했지만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일라이는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에 틀어박혔다

 

정말 좀처럼 잘 굴러가지 않는다. 인간관계란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휘틀로다이우스는 고대인 시절 몇십 몇백의 세월을 살았지만, 지금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이렇게 제대로 사람과 마주한 건 아젬과 하데스 말고는 없어서인 걸지도 모른다. 그때 조금 더 사람들과 지냈다면 일라이를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하데스가 지금 이 꼴을 보면 삐뚜름하게 웃겠지. 답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휘틀로다이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에도 봤던 밝은 일라이의 미소가 오늘따라 옛날일처럼 느껴졌다.

 

 

 

*

별빛축제 당일. 이틀이나 내려놓고 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이젠 자신까지도 우울해지는 걸 느낀 휘틀로다이우스는 느릿하게 자신의 방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리엔 벌써부터 들떠 보이는 연인과 아이들이 눈길을 걸어 다니며 즐거워하고 있지만 이 집안은 밖과는 다른 세상인 건지 조용하고 어둡기만 하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저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오늘을 위해 미리 사둔 일라이를 위한 선물을 꺼냈다. 잘 포장된 상자가 반짝였지만, 이 선물의 주인은 오늘 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선물이야 동거하는 이상 언제든지 줄 수 있지만 이 선물은 별빛축제 당일인 오늘 주고 싶었다. 거실의 소파에서 차를 마시며 일라이의 방문을 멍하니 쳐다봤다.

 

오늘도 저 문은 굳게 닫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휘, 일어나.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몸을 누군가가 흔드는 감각에 무거운 눈꺼풀을 서서히 밀어 올렸다. 아무래도 차를 마시고 멍하게 거실에 있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흐릿한 시야가 초점이 맞춰질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처음 본 것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일라이였다.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고 다크써클이 짙은 얼굴이라 휘틀로다이우스는 팔을 뻗어 일라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원래라면 반항했을 텐데 일라이는 얌전히 끌려와 가슴팍에 안겨 마주 안아주었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일라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지며 잠을 깨웠다. 그러고 보니 일라이는 이제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에 슬쩍 물었다.

 

"이제 괜찮아?"

 

"괜찮냐니?"

 

의아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일라이는 고개를 들어 휘틀로다이우스를 바라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눈이 와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미간을 살짝 찌푸린 일라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생각이 난 건지 눈을 크게 떴다.

"아냐! 너랑 사귄 뒤로는 눈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어!"

 

"그럼 왜 그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야?"

 

휘틀로다이우스의 물음에 일라이는 대답하기 곤란한 건지 민망한 건지 그건... 하면서 말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왠지 시선을 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휘틀로다이우스는 일라이의 볼을 잡고 고개를 자신 쪽으로 고정시켜 억지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일라이는 아 알았어! 얘기하면 되잖아. 라고 하며 투덜거린 뒤 휘틀로다니 유스의휘틀로다이우스의 품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일라이가 나오는 동안 창밖을 보니 완전히 어두웠다. 오랫동안 낮잠을 잔 모양이었다.

 

잠시 뒤 자신의 방에서 나온 일라이의 손에는 흰색의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휘틀로다이우스의 앞에 온 일라이는 흰색의 무언가를 둘러주더니 만족한 듯이 끄덕였다. 목도리였는데 목도리 끝에는 연보라색의 수국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거 만드느라 그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난 손재주가 없잖아. 원래는 어제까지 완성해보려고 했는데..."

 

일라이는 훨씬 전부터 만들고 있었다고... 라고 하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침울해했다. 잘못 만들어서 다시 풀고 다시 엮고 그러다가 실이 엉망이 돼서 다시 처음부터 뜨고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별빛축제가 다가왔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연인이 된 이후에 맞이하는 별빛축제잖아. 그러니까 좀... 특별한 걸 주고 싶었지. 결국 겨우겨우 뜬 목도리가 다지만... 게다가 늦을뻔해서 폼도 하나도 안 살고."

 

일라이는 폼이 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휘틀로다이우스는 그저 자신을 위해 오로지 자신을 생각하며 만들어준 목도리가 너무도 좋았다. 이렇게 자신의 연인은 멋지고 귀여울 수가 있을까.

 

"곧 추워질 거고 나와는 다르게 넌 추위를 잘 타잖아. 그러니까... 뭐 그런 거지."

 

일라이는 머쓱한지 시선을 피한 채 목덜미만 긁어댔다. 목에서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스함에 휘틀로다이우스는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아 어쩜 이렇게 행복한 별빛축제가 다 있을까. 오랫동안 살았던 고대인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고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 심정을 그대로 얘기했더니 부끄럼 많은 일라이는 너는 무슨 그런 민망한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하냐고 질겁을 하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소리 내서 웃었다.

 

"별빛축제가 이렇게 끝나버려서 아쉽네."

 

"끝나지 않았어, 일라이. 아직 12시가 아닌걸?"

 

"그렇지만 겨우 한 시간 남았잖아."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있지."

 

휘틀로다이우스는 은근한 손으로 옆에 앉은 일라이의 허리를 더듬었다. 그러자 움찔한 일라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

 

"대체... 야! 얼마 남지 않은 거와 이 행동은 무슨 상관이야?!"

 

"한 시간 동안 별빛축제를 즐겁게 보내기 위한 행동?"

 

늘 짓던 일라이 평가로는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미소를 지은 휘틀로다이우스는 왁왁 소리치며 반항하는 일라이를 소파에 눕히며 자신의 선물은 끝나고 있다가 주기로 마음먹고는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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