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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알고 있는 줄 몰랐어요.”

“새삼스런 말이네. 네가 좋아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모를 일은 없고. 백지한은 퉁명스런 말투로 덧붙였다. 그의 반대편에는 채유하가 자리잡은 채였다. 그들 사이에는 스테이크와 와인 담긴 잔이 놓여 있었고, 레스토랑 안은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장식으로 꾸며져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흔히 들려오는 곡인데도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분명 크리스마스의 마법이라고 채유하는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사소한 대화에도 웃음이 나왔고, 흔들거리는 발을 감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대화내용도 평소랑 다름없었다. 마 팀장님이 짜증난다거나… 일이 너무 많다거나. 반려나 자격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으니 평소랑 다르다면 다른 느낌이기도 하였다. 한참 제 얘기를 늘어놓는 채유하의 목소리 사이로 어딘가 만족스러운 백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좋아?”

“네? 뭐가요?”

“여기 말야. 평소에도 왔으면서.”

“크리스마스는 원래 특별하잖아요.”

 

 

제가 그렇게 웃었나? 생각이 들자 채유하는 저도 모르게 제 뺨을 문질거렸다. 이건 데이트가 아니라고 결론지으면서도 들뜬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마침 일요일에 걸린 크리스마스라 쉴 수 있었고… 매해 같이 보내던 수연이는 바쁜지 연락이 되지 않아 집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바깥에 놓인 커다란 트리와 수많은 장식을 보며 집에만 있는 시간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정말 마지막 수단으로 집에 있을 유예 씨와 함께 산책이라도 할까 고민하던 차에 백지한 씨에게서 연락이 온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뭐 해?]

 

 

그 문자에 답할 말은 생각보다 오래 고민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라고 하면 처량해보일까 싶었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집에 있으면 나중에 유예 씨한테 들을테니까. 대놓고 저랑 약속잡게요? 물어본다면 기대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게 뻔하고. 그러니 음… 왜요? 라고 답장하는 게 최선이었다. 제 답장에 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시간 있으면 만나. 없어도 봐, 보고싶어.]

 

 

보고싶어. 그 단어가 뭐라고. 고민하게 의미없을 정도로 허락의 답은 제 생각보다 빠르게 보내고 말았다. 좋아요, 어디서 볼까요? 라고 했으니 어쩌면 기대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치만,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가장 소중한 친구를 볼 수 없다면, 차라리 눈길 가는 사람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대신, 이라는 취급은 미안하기도 했으나 얼굴 못 볼 사이가 아니라며 약속날까지 스스로를 몇 번이나 설득했는지. 데이트가 아니라고 결론 짓고서도 어떤 옷을 입을지 늘어놓고 고민까지 했으니 누군가에게 말 못 할 비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채유하는 잔을 들고 백지한을 향해 내밀었다. 두근거리는 건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이 시간을 즐기는 게 맞지 않나?

 

 

“건배할래요?”

“얼마든지.”

 

 

*

 

 

백지한은 제 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제 시선에 담았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에 보자는 문자를 보낼 때, 거절의 답이 올 거라 생각했었다. 저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았고, 분명 친구랑 시간을 보낸다는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시간을 제가 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했다. 나하고도 보면 안돼? 하면서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말한다면 그가 넘어와줄까. 답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제가 살아온 시간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내온 시간보다 더한 기다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왜요? 라고 묻는 말에 빠르게 답했다. 이유를 말한다면 당연히 하나였으니까.

 

 

‘보고싶어.’

 

 

그 대답에 넘어와준 걸까. 거절의 답이 돌아올 거란 불안감을 지우지 못한 채 ‘좋아요, 어디서 볼까요?’ 라는 문장이 헛것은 아닌가에 대해 한참 고민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뒤늦게 취소할까 싶어 데리러 간다는 답을 남기고서야 불안감을 누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레스토랑에는 둘만 있었다. 저번의 일이 떠올랐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며 웃는 얼굴에 애써 기억을 밀어냈다. 실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덕분인지 제 생각보다 더 부드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곳에 제 말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거나 웃기도 하는 얼굴은 평생 잊혀지지 않겠지. 제가 그에게 닿길 바라며 그저 바라보던 뒷모습 하나하나 여전히 제 품에 있는 일처럼. 그러니 부디 이 시간도 영원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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