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크리스마스에 시간 있어요?”

 

 

마다라는 제 앞을 막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이에게서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제가 시선을 피한다고 해서 그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으나 지금 상황에서 마다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그를 두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사람을 두고 가는 일이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까지 일주일이 남은 채였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크리스마스 얘기가 나오기 전에 피해다닌 일도 벌써 일주일을 넘긴 채였다.

 

 

“으음, 미안. 그날은 마마가 조오금, 바빠서 말이지이.”

“…거짓말이죠? 제가 확인했을 때는 분명 바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에 나가는 아이돌은 흔하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갑작스럽게 게스트를 찾는 일에도 마다라는 응할 생각이 있었다. 그만큼 일로 채워놓기도 하고, 빈 시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MaM로 하는 활동보다 Double Face의 활동이 많다고 해도 아이돌의 일을 할 수 있단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든 하고야 말거니까. 그렇게 마음 먹은지도 꽤 된 일이다. 그러니 스케줄이 있어서 약속을 잡을 수 없단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일부러 스케줄을 더 잡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미안! 유키나 씨도 바쁘지? 다음에 보자아~!”

“예? 잠깐만요. 미케지마 씨! 잠깐, 마다라 선배!”

 

 

결국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게 마다라의 선택이었다.

 

 

*

 

 

히라이 유키나가 저를 따라다닌 일이 꽤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저를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건 분명 어렸을 때부터 있던 일이었지. 그 종교에서 만나 좋아한다는 고백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어렸을 적에는 농담처럼 여기며 넘어갈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상대는 진지한 마음이었고, 그렇다면 저도 진심을 담아 받아들이는 게 맞는 일이었다. 그가 가진 마음만큼 애정이 없냐고 하면 확신할 수 없었다. 저는 히라이 유키나란 사람을 좋아하는지, 같은 프로듀서라고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는 일인지… 전자라고 해도 쉽게 이뤄질 사랑은 아니었다. 히라이 가문은 법조 가문이었고, 그 종교에 관련이 있었으니 마다라에게 있어 적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들의 자식인 유키나가 더 이상 관련이 없다고 말해도 자신에게 있어 유키나의 부모는 처벌대상과도 같으니까. 제 부모와 연을 끊는 일과 좋아하는 이의 부모를, 그들의 연을 제 손으로 끊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음정리조차 되지 못한 채 실행하고 싶지 않았다. 변덕인지도 모르고, 제멋대로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 없다. 저는 좋은 사람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크리스마스 약속을 잡기 위해 저를 따라다닌 건… 한달은 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저를 붙잡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크리스마스 얘기를 꺼내 그날도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갑작스런 질문에 저도 모르게 긍정의 답을 충동적으로 내뱉을 뻔한 탓이었다. 이후로 말을 나누기 전에 피했고, 기다릴 때는 변명을 생각하고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그를 응대했다.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 또한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의 가문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프로듀서와 아이돌이지 않은가. 이는 또다른 핑계로 삼기 좋았다. 그러니 제가 유키나를 크리스마스에 개인적으로 만날 일은 없을 터였다.

 

 

*

 

 

…없을 터였는데. 마다라는 스태프와 관계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로, 저녁 늦게까지 잡힌 일정을 끝낸 참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오며 이 일정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었다가 내일 일정을 위해 준비할 걸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앞에서 보이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었다. 일주일 전, 급하게 자리를 피했던 날에 더이상 나타나지 않아 그가 포기한 줄 알았는데. 역시 그럴리가 없었나… 마다라는 제게 다가오는 유키나를 가만 바라보았다.

 

 

“기다렸어요.”

“유키나 씨… 원래 이 정도로 막무가내였어?”

 

 

마다라의 말에도 개의치 않은지 붉어진 코 끝에, 그가 가진 특유의 무표정이 마다라를 향했다. 안에서 기다려도 됐을텐데. 프로듀서라는 입장과 히라이가 갖는 성을 그도 무시하지 못한 건지, 밖에서 유키나가 자신을 얼마나 기다렸을지 상상되지 않았다. 우리는 분명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어떠한 사이도 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몇 번이고 생각해왔다. 크게 화가 날 일은 아니었으나 말투가 곱게 나갈 수가 없었다. 무어라 입을 떼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계속 말해왔지만 우리가 이럴 수 있는 사이가 아니잖아.”

 

 

이러지 말자고 더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나. 그렇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내 손으로 끊으면…

 

 

마다라는 제 손을 세게 쥐었다. 드물게 웃을 수 없어 내린 고개에 상대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 지금 여기서 단호하게…

 

 

“…커다란 트리가 예뻐요.”

“뭐?”

“저쪽에 있는 백화점 앞에 커다란 트리가 생겼어요. 전부터 준비하는 걸 봤는데, 오늘 보니 정말 예뻐요. 어두워서 더 밝아보여요.”

“… …”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후로 이어질 말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아마, 그가 몇 번이고 바라왔던 순간이었을테니까. 저와 같이 트리를 보러 가자고. 뺨이 붉어질 정도로 저를 기다린 사람을 지금보다 더 냉정하게 밀쳐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결국 변덕이고, 욕심이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끈이 있다면 그가 유일할 것이다.

 

 

“그 정도는… 우리 사이에도 보러 갈 수 있잖아요.”

 

 

그 말에 맥이 풀린 이처럼 마다라는 제 이마를 짚었다. 괜찮을 거란 의미가 담긴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사이’ 라는 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이도 아니고, 동료이기에 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안에 비록 사심이 담겨있다고 해도 드러내지 않을 거란 말도. 뒤늦게 고개를 든다. 붉어진 뺨과 웃는 낯이 시선에 닿는다.

 

 

저도 따라 미소를 짓고 만다. 이는 어떠한 마음이 담겼다기보다 평소와 같은 웃음이었다. 저도 그처럼 어떠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을 거란, 의미였다.

 

 

“…그럴까아. 크리스마스인데, 트리를 못 보는 건 아쉽지.”

 

 

이 말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커다란 트리 주변에는 가족과 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어쩌면 무리 중에 우리를 연인이나 그 직전의 사이로 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인파 속에 나란히 걷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백화점 입구 앞에 놓인 채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색으로 이뤄진 장식, 붉은색 끈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트리였다. 마다라는 트리를 보고 제 옆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뺨은 여전히 붉었고,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쁜지 미소짓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 안심하고, 만족하는 건 아마 제가 여전히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온전한 행복 앞에서 그 순간을 누리지 못하는 건 제 버릇이었다. 이 순간마저도 우리 사이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차마 확신할 수 없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