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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되세요~”

 

내미는 꽃바구니에 손님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말실수라도 한 걸까 사과를 했지만 사과하지 말라는 답변과 함께 꽃바구니를 챙겨가는 손님을 보내고 나서야 길게 숨을 내쉰다. 크리스마스 당일. 일찍 문을 닫고 싶어도 닫을 수 없는 이유는 조금 전과 급하게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꽃다발과 예약받은 꽃바구니 등도 이미 다 나갔고 아마 지금 같은 저녁에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은 몇 없을 터이니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은 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만나서 파티를 함께할 친구나 직장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함께할 가능성이 있던 가족들은 다른 지역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연인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니 일찍 문을 닫았어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문밖으로 보이는 따듯한 풍경과 그 안으로 지나다니는 가족 연인 등의 짝을 지어 다니거나 혹은 집에 있을 상대를 위해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건 생각보다 외롭지 않고 좋았다. 그러다 가게 안을 둘러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분이 좋았다. 문을 열어놓기 잘했구나. 한 사람이라도 더 기쁘게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서.

 

“저 실례합니다. 혹시 꽃을 구매할 수 있을까요?”

“네, 천천히 고르시고 말씀해 주세요.”

 

손님이 꽃을 고르는 동안 부자재를 확인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가 챙겨 나왔다. 꽃을 골라 가리키자 그 꽃을 챙기고 나와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선 꽃의 가시와 잎을 정리하며 속포장지와 겉 포장지의 색을 고른다. 리본으로 묶어 마무리를 하는 과정을 빠르게 움직인 뒤 손님에게 건넨다. 값을 지불하고 나가는 손님께 아까와 같은 인사를 하자 아까와는 다르게 활짝 웃는 얼굴과 답을 받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배어 나왔다.

 

언제쯤이었던가 어머니가 이곳을 운영하던 시절, 사용되지 않을 꽃을 모아 액세서리로 만들던 때. 생일날 반 친구들에게 간식과 함께 하나씩 나눠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하교할 때쯤 누군가 찾아와 자신에게도 달라고 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탓인지 얼굴만 하얗게 가려진 채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달린 머리끈을 하나 꺼내 떨리는 손으로 내밀자 강한 움직임에 눈을 떴다.

졸다가 머리가 앞으로 쏠려 고개가 급히 아래로 숙여졌나 보다.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앞으로 1시간쯤 남아있자 정리해야지 싶어 몸을 일으켰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탓인지 누군가 꽃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리게 한 걸까. 일단 먼저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거.”

“네? 아… 저건 ‘카라’라는 꽃이에요. 주로 부케에 쓰이고 있어요. 꽃말은 '순수', '천년의 사랑'. 송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꽃다발의 경우에는 '당신은 나의 행운입니다.' 5송이는 ‘당신만한 여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라는… 헉.”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가게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입을 가렸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지금 손님과 일행일까. 어째서 화가 많이 난 걸까. 노려보는 얼굴이 무서워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데 손이 떨려 마주 잡았다.

 

“한 송이면 돼.”

“아, 네, 네!”

 

손님이 대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뒤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까 이곳에서 꽃을 구매하는 사람이 보스…는 아닐 거다. 보통은 아랫사람을 시킬 테니까. 그렇다면 역시 저기 창문 밖에서 노려보고 있은 분홍빛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보스겠지 싶었다. 분명 자주 꽃을 사 가는 손님 중에도 나는 뒤 세계의 사람이라고 보이는 손님이 있었다. 말단 같은 느낌의 사람이. 그 사람은 꽃을 사 가는 것 외엔 별일이 없어 단골손님으로 대하지만 지금은 존재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아니, 생각을 할수록 무서워져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옮겨 손을 보며 빠르지만 정성을 다해 포장한 꽃을 내밀었다. 꽃 관리로 인한 제 손 보다 고운 손이 꽃을 받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있었다. 밖에 있던 보스의 시선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 빨리 좀 가지. 속으로 생각만 하는데 어째서인지 꽃이 다시 내밀어진다.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받아.”

 

역시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손을 보던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깔자 보이는 건 늘 보던 신발과 처음 보는 신발이었다. 발목이 드러나는 것 같은데 춥지 않은 걸까 했다가 다시 본인 걱정을 한다. 다른 꽃으로 준비를 해야 할까 그렇기엔 포장한 꽃이 너무나 예뻤다. 아까워. 다시 한번 꽃이 다가오자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이 보인다. 제발 진정하자. 포장한 꽃이 손에 잡혔을 때쯤, 상대 손가락이 손등을 건드렸다.

 

“답례야. 예전 네 생일날의.”

“네…?”

 

예전 생일… 손을 내밀던 남학생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졌다 맑아지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기억을 못 했을까. 친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 대화도 했었고 그 후로 이곳에도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여러모로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함께 온 일행이 달라서 였을까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본 탓이었을까. 얼마 전 경찰과 함께 찾아온 남자가 있었다. 최근에 찾아온 적이 있었냐고. 중학생 때 이후로 만나지 못했기에 제가 알던 사람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을 했기에. 조금 전까지 보였던 발이 안 보이자 고개를 들었다. 입 밖으로 무언가 새어 나온다.

 

“사노군?”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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