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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 씨, 이번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트리 꾸미기!”

“의외네. 윤경 씨는 뭔가를 꾸미거나 장식하는 거 안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데에 신경을 잘 안 쓰기는 해요.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럼 이번에는 왜 신경을 쓰는 거예요?”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무영 씨 집 안이 허전해보이지 않았으면 해서요.”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크지 않은 트리와 각종 장식품을 들고 무영의 방에 모였다. 제일 먼저 윤경이 트리 위에 별을 올려두었다.

 

“트리에 별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길을 잃어도 이 별을 따라가다 보면, 제가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윤경은 자신이 올려둔 별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벽에 닿았다. 벽에는 여러 가지가 붙어 있었다. 윤경이 무영에게 보냈던 편지들, 윤경과 무영이 같이 찍은 사진들, 그리고 윤경과 무영이 썼던 기사들.

 

“언제 이만큼 많이 붙였어요? 처음 봤을 땐 여기 엄청 휑했었는데.”

“별을 많이 모아뒀다고 생각하면 돼요.”

“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난 이 벽을 봐요. 윤경 씨를 만나기 전에도 그랬어요.”

 

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형이 왜 죽었을까. 그 단서들로만 이 벽을 채운 적이 있어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면 항상 그 때의 벽을 봐야 했어요. 그래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래서 벽 근처에는 아무 것도 못 뒀겠네요. 단서들이 가려지면 안 되니까요.”

“그랬죠. 그런데 형이 왜 죽었는지 알게 된 후로는, 더 이상 벽에 단서들이 붙어있을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다 떼어냈더니, 내 길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 뒤로도 사해재단을 쫓았잖아요.”

“내가 형이 죽은 이유를 찾고 있을 때에도, 찾고 나서도 이 기자님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요? 네 인생을 살라. 그 말이었어요. 기자가 되기 전에는 유도가 내 인생이었는데, 이제 유도는 못하게 됐고, 형이 죽은 후에는 그 이유를 찾는 게 내 인생이었어요. 이유를 찾은 뒤로는 기자 일이 내 인생이긴 했는데, 가끔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마치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벽에 뭔가 있어야할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계속 생각했죠.”

“지금은… 지금은 어때요?”

“벽을 다시 봐요. 내가 가지지 못했던 걸 누군가가 채워줬잖아요.”

 

그리고 윤경의 입술에 무영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윤경은 조심스럽게 무영을 안았다. 무영은 윤경에게서 미세한 떨림과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윤경 씨, 트리는?”

“조금만 더 이렇게 있으면 안돼요? 무영 씨가 별을 따라서 날 찾아 왔는데, 바로 떨어지고 싶지는 않아요.”

 

무영은 부드럽게 윤경을 토닥였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말하는 손길이었다.

 

“윤경 씨, 그러면 캐롤 하나 불러줘요. 크리스마스니까. 윤경 씨가 노래 속삭여주면 참 좋던데.”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뭐든, 윤경 씨가 좋아하는 캐롤이라면.”

 

곧 두 사람의 심장 소리와 윤경의 청아한 캐롤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트리 위에서 두 사람을 향해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뒤의 키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보다도 달콤하고, 종소리보다도 아름다웠으리라. 둘만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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