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린 크리스마스까지 일해야 해?”
카가리 슈세이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제 손을 찔러넣었다. 보통 이런 날은 집에 있잖아? 휴식시간이잖아? 전에는 파티도 했었잖아. 계속 이어지는 질문 아닌 질문에 결국 기노자 노부치카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렸다. 카가리 슈세이의 불평이란 끝도 없이 들어왔지만, 어차피 시덥지 않은 말인 탓에 대꾸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말에 결국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는 것으로, 이는 카가리처럼 휴일에 일하게 된 상황에 불만을 갖고 나오는 까칠함은 아니었다. 그저 일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그렇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카가리의 태도에 나온 잔소리였다.
“그만 투덜거려라, 카가리”
“그래요, 이러지 않으면 우리가 만날 수가 없잖아요.”
카가리를 향한 잔소리가 이어지고, 그 또한 지겹도록 들은 잔소리에 심드렁하니 대답하려는 찰나 이어진 건 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이 골목에 있던 건 분명 카가리와 기노자 두 사람뿐이었다. 간혹 지나가는 인영이 그림자로 비춰지긴 했어도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인기척은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과 언제까지 살아있었는지 모르는 시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카가리와 기노자, 두 사람은 공안국 형사과 1계 소속으로 신고를 받고 어두운 골목길까지 들어온 참이었다. 누가 신고했더라. 카가리는 관심 없는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신고한 내용대로 분명 시체는 있었지만, 살펴본 바로 이제 막 발생한 살인사건의 시체인지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었다. 더 정확한 건 두 사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통신이 불안정한지 곧장 연락을 넣을수도 없었다. 참나, 지금이 언제적인데 아직도 통신이 엉망이람. 그렇다고 일을 한 두번 해본 아마추어도 아닌데 시체를 보고도 떠날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 골목을 거닐던 그들에게서 누군가 말을 건 상황이었다.
이 사람, 대체 어디서 말하는 거지?
가까이 있었다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 또각, 또각. 천천히 다가오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카가리는 빠르게 몸을 돌려 상대를 향해 도미네이터를 겨누었다. 그리고 보이는 모습은 제게만, 카가리에게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갇혀 살아온 카가리에게 익숙한 얼굴 자체도 없으니 유일하게 밖에서 만난 사람 이를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미우라 쿄. 사랑이니 뭐니 쓸데없는 말만 했었지. 아는 얼굴, 심지어 연상을 취향으로 둔 카가리에게서 그녀는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란 게 큰 문제였지만.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허리를 넘는 갈색 머리카락과 흘러내린 탓에 한쪽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내버려둔 채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 맞춰 옷을 입기라도 했는지 옷차림은 회색 티에 코트, 바지, 신발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성은 그들을 보며 다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른 손에는 누가봐도 작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그 총은 제게 통하지 않잖아요? 싸우자고 부른 게 아니니까, 내려놓는게 어때요?”
“사냥개가 목표물을 앞에 두고 이빨을 감추라고?”
“그렇게 말하면 섭한데… 나름 크리스마스라고 선물도 준비했는걸요.”
“선물이라면 이미 받았는데, 추가근무.”
“그만해, 카가리.”
“그래요, 당신이 좀 말려줘요. 나 억울해요.”
“목적이 있다면 말해라.”
“방금 말했잖아요? 선물을 주려고 왔다니까요.”
자, 여기. 미우라 쿄는 쇼핑백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더니 그들을 향해 툭하니 던졌다. 폭탄 아니니 걱정 말아요, 라거나 슈세이의 선물이니까 건들지 말았으면 하는데, 같은 말을 이어서 말했으나 정작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한 채 카가리는 여전히 미우라를 향해 도미네이터를 겨누고 있었다. 살인범인지 확실하지 않아도 잠재범을 위협하기에 알맞은 총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도미네이터가 상대를 향하고 측정되는 사이코패스 수치는 장치가 움직일 정도로 높은 숫자를 띄우지 않고 있었다. 보이는 숫자에 카가리는 혀를 찼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도미네이터를 기노자도 알아챈 모양인지 당황스런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놓인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로 낮은 숫자는, 적어도 그들이 그녀를 잡을 수 없단 걸 의미했다. 카가리는 미우라의 얼굴을 본 순간 예상했었다. 처음 만난 것도 아니며, 그때마다 그녀의 범죄계수는 낮은 수치를 유지했다. 이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던 듯싶다.
“난 아무것도 안 해요, 정말요.”
미우라는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누가봐도 다정한 눈웃음은 그녀를 처음 본 이라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카가리는 아니었다.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연상은 시온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고, 양손을 올리는 모습이 어딘가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게 집행관에 언제 만났는지도 모를 사람에게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는 걸 누가 멀쩡하다 말하겠는가. 중학 교육과정 밖에 인정 받지 못한 카가리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사이코패스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것도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시체를 눈 앞에 두고도 낮은 수치를 유지하는 사람도 결코 정상은 아니다. 뭐, 자신에게 있어서 이는 상식보다 직감에 가까웠지만. 사이코패스 수치가 낮은 사람을 잡을수도 없는데, 상대는 저 선물을 가져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작정인지 그 자리에서 계속 서있는 상태였다. 결국, 가져가면 돌아가겠다는 말에 카가리는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겨 작은 상자를 주웠다.
“어이, 카가리. 괜한 물건을…”
“저 녀석이 믿을만한 건 아니지만, 날 좋아하는 게 맞다면 아무 짓도 안 하겠지.”
“어머, 가져가주는거야? 별 기대 안 했는데. 나 정말 아무것도 안 하다니까요.”
“그래도 집행관의 물건은 전부 확인 후에 가져갈 수 있다.”
“흐음, 알았어요. 그래도 범죄계수가 올라가는 물건이나 위험한 건 아니니 상관없어요.”
“그것도 이쪽에서 판단해.”
“하여간, 믿음이 없어라.”
다른 건 몰라도, 버리면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 괜한 짓 말아요. 미우라는 어깨를 으쓱인 후에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서 선물을 개봉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었으나 강경하게 나오는 감시관의 모습에 물러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혹여 버린다면 크리스마스든, 연휴든 또 불러낼 거란 협박도 덧붙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고개를 기울여 뒤쪽을 가르켰다.
“시체는 내가 한 건 아닌데… 어디 버려져 있길래 신고 좀 했어요. 찾아보세요.”
얘기만 듣자면 시체를 가져와 그들을 불러낸 건 다름 아닌 그녀였고, 그들 주변을 맴돌며 돌아다니던 그림자가 범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미우라도 위험한 상황 아닌가? 그런 생각에 입을 열었으나 이미 멀어진 거리에서 뒤를 돈 채 나중에 보자며 손을 흔드는 미우라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참동안 들고있던 작은 상자는 기노자의 손에 넘어갔고, 후에 범인을 검거하고 돌아간 카가리 슈세이의 앞에 온 건 메리 크리스마스란 종이 한 장과 잘 짜여진 털장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