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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는데 표정은 풀어주면 안 될까…….”

 

거의 우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작 유타와 유키 코사쿠를 힐끗 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너네도 이참에 카나메 줄 선물 고르면 좋잖아.”

“어허, 오해하지 마, 히메쨩."

"우리는 곤경에 빠진 공주님을 도와주러 온 거라고.”

“맞아맞아. 사실은 그 녀석을 생각해서 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옳소.”

 

코사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둘을 노려보다가 이내 가게의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같이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둘은 오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히사코는 어때? (거길 시즈나 언니 동생이랑 가라고?) 그럼 슌. (슌은 뭐든지 다 OK! 할 것 같잖아) 치즈루로는 안 될까? (걔는 좀 못 미더운데) 차라리 카나메랑 와서 고르면? (그게 무슨 말이야!)

결국엔 코사쿠의 고집에 못 이겨 같이 와주기는 했다만, 협조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질 않았다. 저렇게까지 '우리랑은 관계없어요~' 하는 얼굴로 일관할 줄은 몰랐지만.

 

 

유키와 유타는 카나메에게는 자기 말은 무시하고 빈정대고 언제나 놀릴 거리만 찾는 귀찮은 친구들일지도 모르지만, 코사쿠에게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둘이 코사쿠를 도와주는 것이 단순히 '재미있어서'라는 것도 코사쿠도 알았다. 그래도 코사쿠는 둘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것이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슌은 사고회로가 너무 꽃밭으로만 향하고 (사쿠의 마음을 아는지부터 의문이지만) 치즈루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심코 카나메에게 말해버릴 것 같다. 메리 양이나 그 밖의 인물들은…… 거의 얘기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코사사쿠의 마음을 알 리도 없다.

 

 

무엇을 선물해야 의미가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어쩐지 뒤가 조용해진 기분이 들었다. 코사쿠는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유타와 유키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만히 두면 두 사람의 세계로 빠져버리는 쌍둥이라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쓸데없는 참견으로 귀찮게 하거나 계속해서 불평만 늘어놓는 것보다야 나았다.

 

코사쿠가 카나메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여전히 히메미야 코사쿠도 네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선물을 사러 오기 전 유타에게 상담을 했지만, 결론은 유키의 귀에 들어가 (그렇게 되리라 예상은 했다) 카나메가 여자애의 섬세한(?)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는 말이나 들었다.

그래두…….

 

코사쿠는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물건을 찾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이제 됐다. 그래도 같이 오면 조언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도와주지도 않을 거라면 왜 따라온 거람.

코사쿠의 손에는 두 종류의 열쇠고리가 들려 있었다.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려면 역시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좋을 것이다. 게다가 열쇠고리라면, 색만 다르거나 디자인이 살짝 다른 세트로 나온 제품도 많으니 카나메에게 하나를 주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가질 수가 있다. (물론 카나메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만) 커플템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코사쿠는 은밀한 상상을 하며 비실비실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망상에 빠져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사쿠를 불렀다.

 

“사쿠.”

“아, 네, 네?”

 

사쿠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았다. 유키가 사쿠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쿠는 식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열쇠고리를 재빠르게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유키가 봤으면 백 퍼센트중에 백 퍼센트 놀릴 만한 장면이다.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코사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유키와 마주했다.

 

“아 놀래라……. 왜?”

 

당연히 비웃거나 핀잔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키는 코사쿠의 팔을 잡고 어느 곳을 눈짓했다. 유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유타가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왜 너희도 선물 사려고? 하지만 유키는 사쿠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팔을 잡아당겼다. 코사쿠는 영문도 모른 채 유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코사쿠는 유키의 손에 이끌려 유타에게 왔다. 코사쿠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둘은 번갈아 봤다. 유타는 차분한 얼굴로 코사쿠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너 아직도 젓가락 이거 써?”

 

유타가 보여준 것은 수저 세트였다. 코사쿠는 유타의 손에 들린 것을 자세히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수저였다. 얼떨결에 맞다고 하기는 했지만, 의문점이 하나 더 늘었다. 하나는 물론, 그걸 왜 지금 묻느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타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매일 봤으니까.”

“이제 가도 돼. 근데 아까 그 키링은 사지 마. 별로야.”

 

역시 봤구나. 유키의 말에 코사쿠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져 빠르게 둘에게서 멀어졌다. 같이 와달라고 하기는 했어도 둘에게 자신이 카나메에게 어떤 선물을 하는지는 들키는 것은 부끄러웠다. 유치원 때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놀리는 사람들이다.

 

 

 

코사쿠는 한숨을 쉬며 쇼핑몰을 나왔다. 쇼핑몰을 전부 돌았는데도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어떤 종류로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유키와 유타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대체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고 해서 카나메가 코사쿠에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카나메의 생일까지는 시간이 꽤 남기도 했다. 하지만 코사쿠의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유키는 걱정이 많아 보이는 코사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볼을 쿡쿡 찔렀다.

 

“히메쨩,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우리 기사들이 있잖아.”

“그게 뭐야.”

“히메쨩의 우는 얼굴을 못 본 척하는 건 기사의 도리가 아니지. 안 그런가요, 유타 경.”

“물론이죠, 유키 경.”

 

공주와 그의 기사들. 중학교 축제 때 했던 연극의 역할이었다. 능청스럽게 그때의 대사를 읊는 둘의 모습에 (각색은 했지만) 코사쿠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환상의 짝꿍이라니까. 코사쿠의 웃는 얼굴에 유키는 만족스러운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내 유키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표정이 스쳐 가더니 코사쿠에게 달라붙는다.

 

“아- 오늘 너무 많이 움직였더니 너무 지쳤네-. 사쿠가 사주는 저녁 먹고 힘내야겠다-.”

“야아! 방금까지는 기사님이라면서.”

 

저 말을 하곤 앞장서는 유키의 뒤를 코사쿠가 쫓아간다. 유타가 그런 둘의 행동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뒤를 따라갔다.

 

-

 

 

“이게 뭐냐?”

“으응, 카나메 생일 선물.”

 

유키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카나메의 손에 네모난 포장 박스를 억지로 쥐여주었다. 어쩐지 그 미소가 음흉하게 느껴져 카나메는 박스를 받아들면서도 몸을 뒤로 뺐다.

답지 않게 정성스럽게 싸맨 포장을 풀어보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저 세트가 나왔다.

 

“이게 뭐야?”

“젓가락.”

“그건 아는데, 그러니까 왜 이걸 주냐고.”

“그거야 카나메 젓가락이 촌스러우니까.”

“뭐라고?”

 

카나메가 인상을 쓰든 목소리를 높이든 유키는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로 카나메를 볼 뿐이었다. 둘을 지켜보던 유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유타가 도시락통에 젓가락을 부딪쳐 둘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곤 말했다.

 

“그거, 사쿠가 주는 거야.”

 

-

 

 

“나도 너희와 여전히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거.”

“뭐?”

“사쿠.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유타는 잠시 생각하다가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조건에 딱 맞으면서도 코사쿠라면 생각해내지 못할 물건이 떠올랐다.

 

“간단하네. 토요일에 같이 가겠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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