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이다.”
안뜰을 오가던 분주한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선다.
찾고 있는 거라도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나이다는 자신을 부른 사람을 찾아내고 미소 지었다.
온화해 보이지만 어째서인지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 미소.
대답 대신 눈인사를 하고 다가온 지나이다는 이반의 앞에 멈춰 섰다.
“이건?”
그는 특별히 허락도 구하지 않고 지나이다의 손을 잡았다.
왼손 검지와 중지 바깥을 가로지르는, 심각해 보이진 않아도 결코 얕아 보이지도 않는 상처.
여린 살을 갈라 찢은 상처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어, 이렇게 불러 묻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제 왼손을 가볍게 쥔 커다란 손을 마주 잡은 지나이다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어제 일하다가 다쳤어요. 별거 아니랍니다. 이런 상처는 일상이죠.”
확실히 지나이다가 아파서 울거나 앓는 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반은 너무나도 태연한 그 대답에 허탈하게 웃었다.
가위에 베인 걸까, 아니면 칼? 본인 실수로 이렇게 된 건지 다른 사람이 상처 입힌 건지도 신경 쓰인다.
상처투성이 손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무신경하게 중얼거렸다.
“엉망이군.”
“그렇게나 보기 싫은 정도인가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워지지 않는 흉터들로 뒤덮인 흰 손. 여기저기 만져지는 굳은살.
빈말로도 곱다고 하기 힘든 손은 지나이다의 삶이 녹아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결국엔 꽃을 다듬어 파는 지금까지 온 삶이.
‘이 흉터만 없다면.’
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엉망진창인 손이지만, 몇 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게 두면 태어났을 때의 깨끗한 손으로 돌아가진 않을까, 하고.
굳은살은 웬만하면 사라지지 않지만, 힘든 일을 그만두게 하면 딱딱한 살도 제법 연해질 거다. 흉터도 조금씩 옅어질 테고, 깨진 손톱도 예쁘게 기르면…….
“고운 손인데, 아깝게.”
이미 망가진 손은 원래대로는 돌아오진 않는다. 거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인형 같은 손으로 남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었지.
이반은 그냥 그런 생각으로 중얼거린 거였지만, 지나이다의 귀에는 그리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제 손, 보기 흉한가요?”
이반에게서 손 관리에 대한 잔소리를 한가득 듣고 온 지나이다는, 제가 찾던 이를 만나자마자 저런 말을 꺼냈다.
스메르쟈코프는 앞뒤가 댕강 잘린 질문에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뒤늦게 놀란 눈으로 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가씨.”
누가 보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소리라도 들은 줄 알겠다. 지나이다는 당황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스메르쟈코프의 표정을 보곤 웃음을 꾹 참았다.
제가 들은 걸 부정하고 싶은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을 마주 잡았다.
마치 유리 세공품이라도 다루는 듯한 손짓은 섬세하고 집요했다.
손끝으로 흉터와 굳은살을 쓰다듬던 스메르쟈코프는 고해하듯 대꾸했다.
“저는 아가씨의 손이 좋습니다. 손뿐만이 아니라 아가씨의 전부가 좋지만, 손도 좋아합니다.”
“고마워요, 파샤. 저도 파샤를 좋아해요. 파샤의 손도 좋아하고요.”
지나이다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애초에 그는 스메르쟈코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 굳이 듣기 좋은 소릴 하겠다고 거짓 칭찬을 할 리도 없었다.
그건 두 사람 모두가 아는 당연한 진실이었지만, 스메르쟈코프는 어째서인지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제 손은 너무 볼품없습니다.”
이 평가는 겸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객관적인 평가다. 누구에게 물어도, 제 손을 보기 좋다고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거칠고 커다란 손을 차가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하인의 손이 고울 수 없음은 당연하다지만, 그의 손은 유난히 더 거칠었다. 얻어맞을 때 다쳐 남은 흉터부터 식칼을 다루다가 베인 상처, 불에 덴 화상자국에 손가락 여기저기 받힌 굳은살까지.
이런 손을 좋아하기는 힘들지.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한 것뿐인데, 지나이다는 정색을 하고 물어왔다.
“볼품없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예요?”
지나이다는 딱딱하고 선이 굵은 손을 제 얼굴로 가져갔다.
뺨이 다 닳아 없어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스메르쟈코프의 손에 얼굴을 비벼대는 그는,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제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기준 같은 걸 생각했나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남이 뭐라고 하는 걸 신경 쓰느라 정말로 좋아하는 걸 감춰야 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에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미성(美聲)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마치 고양이처럼 피부를 맞대어오는 지나이다를 보며 숨을 삼킨 스메르쟈코프는, 귓가에 들리는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뺨. 제 뺨과는 전혀 다른 감촉.
손에 닿는 부드러움을 슬쩍 쓰다듬어본 그는, 지나이다의 손에 난 상처로 눈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힘을 줘 피부를 당기면 다시 피가 흘러나올 것 같은, 생생한 상처다.
스메르쟈코프는 오직 머릿속으로만 그 상처를 찢어 벌린 후 태연하게 물었다.
“손가락은 어쩌다가 다치셨습니까?”
“어제 일하다가 다쳤어요.”
“가위에 베인 겁니까?”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본인도 베여봐서 안다. 무엇보다, 베어보기도 했고.
솔직한 지나이다와 달리 마냥 솔직할 수만은 없는 스메르쟈코프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덧붙였다.
“아프지 마세요, 아가씨.”
“저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어요. 파샤를 빼고는.”
과연 그럴까.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이 없었다.
눈앞의 여자는 무슨 짓을 해도 고통을 느낄 것 같지 않아서, 제가 목을 조르거나 무언가로 내려치거나 날카로운 걸로 찌른다 해도, 무덤덤하게 제 행동을 다 받아줄 거 같아서.
“그 말이 진짜라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결코 그리 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제게만 허락된 폭력이라면 그 얼마나 숭고한 사랑인가.
죽음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손을 거둔 그는 제 손길이 물든 새하얀 얼굴을 언제까지고 계속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