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직도 그 녀석이랑 연락하냐?”
“그 녀석? 그 녀석이 누구…”
아, 그 녀석인가. 야타 미사키는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같은 학교를 나온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카야시마 츠유미. 후시미 사루히코와 야타 미사키와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생 중 하나였다. 그를 제외하고도 아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 더 있긴 했지만 그쪽은 후시미가 절대 먼저 얘기를 꺼낼 사람은 아니었다. 귀찮게 굴던 건 그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말이지. 미사키는 머리를 긁적였다. 연락을 한다면 하고 있는데… 야타 미사키의 대답이 늦어지자 후시미 사루히코는 저절로 표정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이, 미사키. 너 설마, 아직도…”
“아직도, 뭐! 아니거든?!”
“…나 아직 아무 말 안 했어.”
“어쨌든 아니라고!!!”
이번에도 정확한 단어가 오간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사키가 버럭 소리를 지른 건 너 아직도, 라는 말 뒤에 무슨 말이 오는지 서로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결국 미사키는 한번 더 소리쳤다. 좋아한 적 없어! 하고. 그 말이 후시미에게 있어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인 것처럼 들렸지만 불만을 덧붙이지 않는 건 그라고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하긴 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나도 알아. 얼마 전에 봤어.”
봤다는 말은 안 맞겠지. 그쪽에서 온 연락을 받았어. 후시미 사루히코는 습관처럼 혀를 찼다. 카야시마 츠유미, 이는 동창생인 그들만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와 거래를 하는 사람 중 본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는 정보상이란 위치에 맞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먼저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연락을 한다는 건 그들의 왕이 정보를 산다는 의미였고, 본래 직접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 건 거래 당사자 뿐이었는데 왕 사이에서도 전과 달라진 만큼 그에게도 변화가 있던 모양이었다, 라고 후시미는 상대에게 들은 정보로 추측하였다. 후시미 사루히코는 학창시절 그에게 관심을 두었고, 미사키와 멀어진 이후부터 저절로 멀어진 거리를 애써 채우려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감정이지. 뭣도 모르던 애송이의 호기심이었고. 그를 향한 애정을 그렇게 정의 내린 이후 잊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던 이들과 달리 그는 평범한 쪽에 속했으니까. 셉터 4나 호무라와 전혀 연관이 없을 거라 여기기도 하였다. 그랬던 일도 이제 과거로 남아 후시미 사루히코는 저의 왕 대신에 연락을 보낸 카야시마 츠유미를 마주하고 말았다. 후시미에게 있어 드물게 감정적으로 덮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츠유미는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후시미!’
‘네가 왜 여기에…’
*
“너희 오늘도 학교 땡땡이 쳤더라?”
“…신경 꺼.”
“어? 어, 그… 잠시 일이 있었거든.”
허리에 양손을 얹은 츠유미는 그들을 향해 혼낼 것처럼 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다시 웃어보였다. 후시미는 본래 성격대로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미사키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쑥스러워 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연애는 물론, 여성에게도 관심 없는 후시미와 달리 미사키는 여자만 보면 당황하는, 수줍은 많은 소년이었다. 바닥에 앉은 그들을 내려다보던 츠유미는 망설임 없이 그들 사이로 가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거리는 짧은 단발머리와 큰 덩치가 아닌데도 두 사람보다 작은 체구는 그들 사이에 안정적으로 앉았을 뿐이었다. 츠유미는 학교에서 겉돌던 두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흑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후시미 말야, 분명 엄청 똑똑한 사람일걸. 그렇게 말하던 모습을 미사키는 떠올렸다. 그 말에 열등감을 느낀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이 곧 츠유미가 후시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하였다. 학교를 자주 빼먹는 두 사람을 겨우 쫓아다니느라 바쁜 츠유미와 여러 일을 겪고 결국 두 사람 다 츠유미를 강경하게 밀어내는 걸 포기하기도 하였다. 어차피 서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후시미와 미사키 뿐이었다. 츠유미는 오늘도 학교 수업을 다 마치고 등장했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앉은 츠유미는 밝게 웃음 짓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잔소리도 아니었고, 불만을 내뱉는 말도 아니었다. 오늘은 뭐 했어? 하고 시작하는 말은 오로지 그가 그들에게 순수한 관심을 주는 시작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별 일 없었다는 말로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짧은 침묵 후에 있었던 일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내뱉는 관심도, 어설프게 대꾸하는 대답도 그들에게는 이제 익숙한 시간 중 하나였다.
*
얼마나 당황한 건지. 후시미는 스스로 믿고 싶지 않을만큼 츠유미를 바라보고 내뱉은 말에 후회하고 있었다. 어디서 뭐하고 지냈는지 모르던 상대였고, 상상도 못한 이가 상상도 못한 상황에 나와 당황스러운 건 맞았지만, 그렇게 흔들린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본래 성격이 그러하니 겨우 츠유미 따위에 솔직해진 상황은 후시미에게 있어 조금이나마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당황한 자신과 달리 츠유미는 곧장 일 얘기를 꺼낸 탓에 당황한 스스로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멀어진 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제 쪽이면서, 상대도 저와 똑같다며 실망하고 만다. 이런 어린애 같은 모습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시작된 일 얘기에 후시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셉터 4 일원 중 한 사람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어떠한 추억 얘기도 없이 어느새 꺼진 화면만이 후시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친구놀이는 졸업했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듯 무표정만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청의 왕, 무나카타 레이시가 자리를 비운 지금 후시미는 부장에게 가 들은 정보를 전달하였고, 오래 고민하지 않고 미사키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건 친구놀이가 아니야. 정보를 얻기 위한 교류일 뿐이지.
“그럼 결국 넌 알고 있었단 말이겠군. 정보교류는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텐데?”
“아니, 뭐. 크흠, 도와주다보니 알게 되어서… 아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편할테고…”
아니, 것보다 내가 왜 너한테 변명을 하고 있어야 해?! 미사키는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만나자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에 대한 이야기였냐고. 툴툴거리며 말하지만, 그의 반응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미사키도 처음 츠유미가 하는 일을 알았을 때 크게 놀랐고, 자신이 알고 있다면 사루히코도 알고 있겠구나 싶어 넘어간 일이었다. 정작 연락하는 법도 모르고 오는 연락만 대신 받을 뿐이니 그가 정말 츠유미가 맞는지 확신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응? 근데 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뭐가.”
“넌 그 녀석한테 관심 없지 않았냐…?”
“지금도 없어.”
“그럼…”
“적의 왕도 정보상이니 뭐니 이용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후시미는 그가 말을 끝까지 내뱉기 전에 끊어내고 제 할 말을 내뱉었다. 바보 같은 미사키가 진심을 알기 전에 거짓으로 대답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진심이 섞인 말이었다. 츠유미라는 사람은 미사키처럼 바보같이 웃거나 단순해보여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겉돌던 학생을 이유없이 쫓아다녔을까? 그럴리가 없지. 왕들 사이에서 무언가 시작되려는 건 후시미도 알고 있었다. 자주 자리를 비우는 청의 왕이나 전보다 눈에 띄게 부딪히는 호무라, 티내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도…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에 호무라는 후시미에게 있어 평생 남을 흉터와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이야기가 시작될지 예상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이야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게 결코 좋은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츠유미가 있다. 어쩌면, 가장 즐거웠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과거 속 사람이 이제 현재로 나타나 제 앞에 다가온다. 과거는 과거로 남으면 좋을련만. 그 생각이 후시미 사루히코라면 했을 생각이 아니면서도,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스스로에게도 큰 부정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됐을 때, 그 상황에 그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뭐, 미사키만큼 목숨 걸고 지킬 생각은 전혀 없지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전쟁 속에 놓인 우리의 이야기도 결국,
새로운 문장이 쓰여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