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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은 잠든 척 감았던 눈을 슬쩍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비하고 임무를 나갔을 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짜증, 이 아니라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삭막한 분위기에 가까웠다. 게다가 같은 임무를 나가는 동료라면 같은 의자에 앉아도 좋을텐데 한 사람은 제가 앉은 자리 뒤에 앉아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 있고, 다른 사람은 옆자리였지만 복도를 가운데에 둔 옆자리로 제각각이었다. 그나마 파인더가 저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통에 알렌은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기차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따로 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라비만큼은 아니어도 리나리 정도로 동료니까 가까이 앉을 수도 있지 않나? 꼭 저 두 사람과 친해지고 말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이렇게 싸늘해서야… 무슨 잘못이라도 한 기분이랄까, 불편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환영받지 못한 그런 기분. 코무이 실장님의 말에 따르면 둘 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니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라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코무이 실장…!

 

 

어쨌든, 알렌은 실눈을 뜬 채 보는 걸 관두고 아예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칸다는 뒤를 돈 채라 보이지 않지만, 유하는 옆모습인지라 그가 무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알렌은 시선을 내린 채 무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유하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유하…”

“시끄러워, 쭉정이.”

 

 

정작 답이 들려온 건 칸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은 한마디는 불만스런 말투로 알렌은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개미 지나가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한 게 취향인가? 이름만 불렀는데 시끄러울리가 없잖아. 하여튼 더러운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 알렌은 일부러 입꼬리를 올린 채 칸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번 해보자, 이거지. 절대 안 져요.

 

 

“저 이제 한마디 했거든요?”

“그게 시끄러운 거다. 조용히 할 줄 모르나?”

“그럼 직접 귀를 막아줄게요. 그러다 머리가 같이 잘리겠지만.”

 

 

차라리 라비가 낫다. 절대로 라비가 낫다. 적어도 괜한 일로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 않으니까! 서로 죽일듯이 노려보는 와중에도 유하는 마치 그들이 저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이 깔리고 기차에 사람이라고는 그들 밖에 없는 시각. 칸다, 알렌, 그리고 유하는 처음으로 셋이 모여 임무를 맡게 되었다.

 

 

*

 

 

“저기요, 혹시 남은 방이 있나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남은 방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런가요…”

 

 

알렌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는 점원을 향해 괜찮다면 손을 휘적였다. 원래 일정이라면 파인더가 잡아둔 숙소에 머물며 AKMA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을 시간이었다.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지 물어보며 찾아갔을 텐데…

 

“어이, 파인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칸다, 그만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넌 빠져, 쭉정이.”

 

 

뭐가 잘못됐는지 파인더가 잡아뒀을 숙소에 그들이 머물 방은 없었고, 다른 숙소를 찾기 위해 마을을 전부 돌았으나 술과 숙소를 같이 운영하는 가게마저 넷이나 지낼 방이 없었던 것이다. 좁더라도 칸다, 알렌, 파인더가 같이 지내고 유하가 따로 머물 방을 구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을 헤맨 시간만 1시간이 넘을 지경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하고, 마을이 넓으니 금방 구할 거란 파인더의 말에 칸다는 일단 진정했으나 이 정도로 돌아다니는 일까지 수용해줄 그가 아니었다. 결국 참다못한 칸다는 제 이노센스를 꺼내 파인더를 향했고 알렌이 급하게 막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그때까지도 유하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알렌은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의문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같이 다니기 싫은데 명령이니 같이 다니는 거고? 그렇다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진다. 리나리는 검은 교단을 홈이라 부르고 동료들을 가족처럼 대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구나. 파인더를 말리는 사이, 둘의 싸움으로 번진 칸다와 알렌은 서로의 이노센스를 맞대며 노려보고 있었다. 이러다 숙박집 하나가 날아가겠구나 싶을 때, 유하가 목소리를 내었다.

 

 

“칸다.”

“뭐.”

“…그만해요.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하? 너야말로 지금까지…”

“… …”

“쯧, 됐어. 너희끼리 숙소를 구하든지 해.”

 

 

유하가 내뱉은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칸다가 말을 되받아치고 죽일듯이 노려보는 눈빛을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마주한 게 전부였다. 칸다도 그 눈빛에 싸울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혀를 차고 밖으로 나갔다. 알렌은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에 오히려 눈치가 보였다. 싸운… 건가? 누가봐도 싸운 건 칸다와 알렌 쪽인데 이상하게도 차가운 기운은 둘 사이에서 느껴졌다.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은 건지도 모른다. 칸다 성격이 형편없으니까. 유하는 칸다가 저를 지나치고 쾅 소리내며 닫힌 문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다시 알렌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잔잔한 표정에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난 밖에서 자도 상관없는데… 조금만 더 돌아다닐까요?”

“아… 네, 그게 좋겠어요.”

 

 

그 한마디에 어떤 무게가 있는 건지 알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먼저 걸음을 옮긴 유하를 뒤따라 나섰다.

 

 

그렇게 1시간을 더 돌아다니고나서야 그들은 허름한 방 2개를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을 끝자락에 언제 무너질지 상상이 안 가는 낡은 집이었다. 그래도 같은 방을 쓰지 않게 되어 다행이야. 알렌은 파인더와 함께 방에 들어가며, 저처럼 다른 방에 들어가는 유하를 흘긋 바라보았다. 새로운 방을 구할 때까지 그들이 한 대화는 저기 어때요, 가볼까요, 저기도 있네, 같은 짧은 대화였다. 그외에 나눈 대화도 없었고, 누구 하나 먼저 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알렌은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말을 걸지 말라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고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 놓이니 리나리가 무척이나 그리울 지경이었다. AKMA를 만날 때까지 이러려나.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데. 알렌은 유하가 방에 들어가고 닫히는 문소리가 들린 후에 저도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 놓았다.

 

 

“일단 오늘은 쉴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엑소시스트 님.”

“아… 괜찮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파인더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칸다 님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며 뵐 면목이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알렌은 이런 상황마저 익숙하지 않았다. 칸다는 진짜 밖에서 자나?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

 

 

“어이, 일어나.”

“누구…?”

“일어나라고.”

“카, 칸다?!”

“일어났으면 나와.”

“아니, 아니. 잠깐만요!”

 

 

알렌은 제 눈을 한참 문지르다 보이는 모습에 벌떡 일어났다. 그가 이 장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등등 궁금한 건 많았으나 칸다는 알렌이 어떤 상태인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방을 나설 뿐이었다. 알렌은 급하게 코트를 챙기고 칸다를 뒤쫓았다. 방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유하였다. 막무가내로 걸어나가는 칸다나 허둥지둥거리는 알렌의 모습에도 침착한 표정이었다. 여전히 별 다른 말은 없어서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알렌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비명소리?”

“근처에서 들린 건 아닌데…”

 

 

알렌의 의문을 풀어주는 건 의외로 유하였다. 뭐, 칸다가 설명을 해줄 거라 기대한 건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라고 임무를 나와 팔자 좋게 잠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들리지 않은 비명소리를 두 사람은 어떻게 들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돌아다녔어요?”

“멍청하게 누워있던 건 너뿐이다, 쭉정이.”

“칸다.”

“하아… 조용히 따라 와.”

 

 

알렌을 향해 한심한 눈빛을 보내는 칸다를 말린 건 이번에도 유하의 목소리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신경도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막아주고 있었다. 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걸음을 옮기면서 언제 알아냈는지 모를 정보를 얘기하고 있었다.

 

 

“이 마을이 관광지인 것도 있지만… 어제 막 축제가 끝나 아직 머무는 관광객들이 많아요. 관광객처럼 들어왔다면 속이는 일도 쉽겠죠.”

“흥, 그런 건 상관없어. 보이면 벤다. 그거면 돼.”

“안 보이니까 문제잖아요… 칸다가 바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야, 나와. 너부터 끝내주마. AKMA는 나혼자면 돼.”

“그건 내가 할 말이죠. 혼자서도 충분한 임무인데…”

“아니, 아니. 갑자기 왜 둘이 싸워요!?”

 

 

그리고 둘 다 저는 왜 빼는데요?! 알렌은 갑자기 부딪히는 두 사람을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둘, 사이가 안 좋잖아…! 이러다가는 셋이 싸우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걱정을 안고 알렌은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머물었던 숙소에서 거리가 있는 숲이었다. 걸어오는 시간이 걸렸으니 만약 누군가 AKMA한테 습격을 당했더라도 이미 자리를 떠났을 확률이 높은 지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실마리가 없는 한 무작정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렌의 한쪽 눈이 AKMA를 구별한다는 점이었다. 칸다가 알렌을 깨웠을 때도 어두웠으니 여전히 새벽녘인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그의 눈이 없어도 의심스럽겠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며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쫓으며 움직였으나 의외로 보이는 형체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비명소리가 들린 건 확실해요?”

 

 

알렌은 그들을 의심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AKMA를 만난 적도 있었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숲은 의심을 부르기 좋은 상태였다. 거리가 가까우면 악마를 구별하는 눈이 발동된다. 그 이상의 거리가 있다는 건 상대 쪽에서도 공격이 쉽지 않을텐데. 약간의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한 탓인지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알렌은 대놓고 퉁명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시할 필요없잖아요. 투덜거릴 말까지 준비하면 둘러본 주변은 제 생각과 다른 풍경이었다. 칸다는 이미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유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알렌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하, 왜 그래요? 칸다는 또 어딜…”

“하늘이야, 알렌.”

“예?”

“숲은 함정이었어.”

“그게 무슨…”

 

 

유하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던 알렌을 두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알렌은 저도 따라 숨을 죽이고 같이 걸음을 옮기며, 그가 하는 설명에 집중했다.

 

 

“비명소리는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낸 소리였어요. 알렌의 눈에 오래 발견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지. 계속 움직였다면 흔적이라도 남을 텐데. 날 수 있는 거였어요. 하늘에서 공격해서 엑소시스트를 숲이랑 같이 태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야. 이 정도 밖에 생각 못 한 멍청이라면 기껏 해야 레벨 2밖에 안 되겠지만.”

 

 

알렌과 유하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어두운 숲을 나아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여전히 숲 안이란 점에서 변함 없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숲에 있는 이상 AKMA의 표적이 되는 건 쉬운 말이란 뜻이었다. 이번 임무에 파견된 엑소시스트들 중에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유하는 여전히 무얼 찾는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떨어지며 커다란 폭발음을 내었다. 순식간에 날아간 그들은 콜록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렌은 유하를 찾았지만, 유하는 다시 탁 트인 공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지? 그곳에 있으면 표적이 되는 건 쉽상이다. 아무리 AKMA라도 숲을 전부 태우기보다 훤히 보이는 곳에서 노리는 게 더 쉬울 텐데.

 

 

“설마…”

 

 

알렌은 그제야 유하가 왜 탁 트인 공간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부러 목표가 되는 것이다. 그건 알겠지만 너무 위험하잖아! 알렌의 생각이 현실처럼 또다시 폭탄 떨어지듯 그들 사이에 반복된 폭발음이 들려왔다. 유하는 기생형이 아니었다. 잘못 맞는다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어지는 공격을 피해보지만, 급하게 피하는 게 전부였고 반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칸다는 이럴 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알렌은 제 이노센스를 발동해 하늘을 향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건지 AKMA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알렌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기회가 생기면 유하를 데려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하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바쁘게 뛰어다녔다. 상대는 너무 높은 하늘에 있고 그에게 다가갈 방법은 없었다. 다행스러운 건 그들이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레벨이란 점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저 하나 맞지 않는 상황을 보면 도발에도 쉽게 넘어올 거란 생각도 들었다. 피하는 일에 다급해 잔상처는 많았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언제나 다치는 일이었고, AKMA를 유인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면 칸다나 알렌이 나서면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를 가까이서 공격할 때 반격하겠지. 지금쯤 열받았으려나, 악마 녀석. 유하는 제 이노센스인 장총을 꺼내 하늘을 향해 공격했다. 맞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멀쩡하다는 정보만 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크게 내었다.

 

 

“겨우 그 정도의 공격으로 내가 당하겠어요? 겁이 많아 숨어 공격하는 거라면 이해하겠네요. 누가봐도 실력이 형편없잖아요!”

“… …! …!”

“여전히 다가오기에 무섭나요? 네 꼴을 보니 천년백작도 본인이 만든 악마라는 걸 숨기고 싶겠군요.”

 

 

알렌은 큰 소리에 그가 AKMA를 유인하려는 계획에 확신이 생겼다. 설마 저런 도발에 걸릴까 싶었지만, 의외로 도발에 넘어갔는지 하늘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시선으로 따라잡지 못할 속도는 아니라고 해도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체라면 피하면서도 여파가 심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유하는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잡은 채 AKMA를 노리고 있었다. 둘이 부딪힌다면 더 큰 폭발이 일어날 게 분명한데도. 그들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자 알렌은 왼팔을 뻗어 그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바닥과 부딪히는 폭발에 그들은 조금 더 날아가 유하는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알렌의 이노센스인 왼팔의 힘을 그가 이겨낼 수 있을리가 없었는데 폭발까지 더해진 꼴이었다. 유하는 갑자기 땅을 구른 상황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거리에 도달하면 알렌이나 칸다가 나서서 막거나 본인이 총을 쏘면 폭발에 휘말리기는 해도 AKMA 또한 즉사시킬 수 있었다. 그게 무모한지 제정신이 아닌 작전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총을 쏘기 위해 자리를 피하지 않은 건 혹시 뒤늦게 올 제 동료에 대한 예비책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떻지?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고, 저는 땅을 뒹굴었다. AKMA는 그대로 땅에 떨어져 폭발했나? 그러기엔 들리는 소리가 없었고, 제 귓가에 들리는 건 알렌의 외침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너야말로 뭐예요…? 죽일 수 있었어요. 왜 막았죠?”

“당신도 위험했잖아요!”

“그게 지금 무슨…”

“죽을 수도 있었어요. 왜 피하지 않았냐고요. 그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요!”

 

 

알렌은 표정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유하는 그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죽었을 리가 없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AKMA를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다. 거기서 싸우면 그만인데, 조금 다칠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위험한 짓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AKMA를 유인하고, 막는 건 동료가 하고… 유하는 알렌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흥분한 채 말을 내뱉는 알렌과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를 내는 제가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유하는 숨을 삼키며 알렌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화나보이는 모습이 당황스러워 괜찮았을 거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둘의 다툼에 끼어든 건 칸다였다.

 

 

“어이, 그만해.”

 

 

칸다는 AKMA에게 꽂힌 무겐을 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제 생각대로 제게 달려드는 AKMA를 공격한 건 칸다였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유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싸움이 끝나고 찾아온 건 침묵이었다.

 

 

*

 

 

전투가 끝난 후, 치료를 끝낸 이들은 보고와 함께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크게 다친 이는 없던 탓에 휴식을 하루 정도 취한 다음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제각각으로 흩어져 같은 코트만 아니었다면 남처럼 느껴지는 거리감이었다. 그중에서 알렌은 조심스럽게 유하를 찾아다녔다. 역에 놓인 의자에 앉아 유하는 여전히 별 다른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보이는 게 없을 텐데도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저… 유하, 괜찮아요?”

“응?”

“아, 미안해요. 그게…”

“…아니, 괜찮아. 신경 쓰지 말아요.”

 

 

유하는 덤덤한 목소리를 작게 내어 대답했다. 그리고 제게 할 말이 있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알렌은 막상 할 말이 금방 떠오른 건 아니었으나 그에게 소리쳤던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었다. 저에게도 저만의 싸움방식이 있는 것처럼 유하에게도 유하만의 싸움방식이 있을 것이다. AKMA와 처음 싸우는 건 아니지만 교단에 더 오래 있던 건 그 둘이었고, 손발을 더 오래 맞춘 것도 그 둘이었다. 그러니 성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미안해요, 제가…”

“알렌.”

 

 

그의 부름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왜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그에게 집중하는 걸까. 큰 목소리도 아니다.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니고. 그러나 그는 차분하게 이름을 불렀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가만히 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 유하는 또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렌, 우리는 늘 그렇게 싸웠어요.”

“네?”

“칸다랑 나는… 칸다가 다른 동료와 임무를 나가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와 나는 늘 이랬어요.”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싸웠다는 말인가요?”

“응, 우리한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하지만 그건…”

“이상해요? 제정신이 아닌가? 하지만 별로 상관없어. 죽는 건 상관없지만, 지는 건 싫거든. 그래서 늘, 그렇게 싸웠어요.”

 

 

왜요? 왜 상관없는데요? 알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문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그는 살짝 웃는 낯으로 하고 있었다. 알렌은 지금까지 교단에 들어와 유하를 마주하면서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고요하고 단조로운 사람. 그렇게만 느꼈지 그 이상을 알 수 없었다. 그가 위태롭다고 느껴진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알렌은 의문을 접은 채 지금 당장 느껴지는 감정을 말하기로 하였다.

 

 

“난 누구도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요. 동료니까 지킬 수 있다면 지켜낼 거예요.”

“…강하네요, 알렌은. 칸다는 신경도 안 쓰던데.”

“쑥스러워서 그러는 거겠죠. 칸다는 원래 그렇잖아요.”

“하하, 쑥스러워 하는 칸다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끝으로 유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서 보이는 기차의 모습 때문에 일어난 걸 수도 있고, 알렌의 강한 표정을 피하고 싶어 일어난 쪽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알렌은 자리를 옮기는 유하를 붙잡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위험을 피하지 않고 달려드는 건 칸다도 마찬가지였다. 삶에 미련을 두지 않는 말과 행동도 알렌은 기억하고 있었다. 제 삶은 내버려 두고, 타인의 삶은 티나지 않게 챙기려는 모습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여긴 건 저만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닮았기에 서로를 더 내버려 두는 쪽이었다. 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니까. 죽어서도 이루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알렌은 달랐다.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였다. 동료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를 구하는 건, 지키는 건 당연한 사람이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강해져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저 두 사람과 있으면 부딪히는 일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알렌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알렌, 얼른 타요. 다음 기차는 없으니까…”

“내버려 둬. 알아서 오겠지. 이참에 두고 가도 되겠네.”

“칸다… 난 칸다도 여기 두고 가고 싶은데… 내릴래?”

 

 

이제 그들의 대화마저도 싸우는 게 아니라 장난스런 대화처럼 느껴졌다. 결국 알렌은 웃으며 기차에 올라탔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들은 따로 앉았지만, 더 이상 불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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