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렌, 혹시 응급처치나 수술할 줄 알아?”
코일의 질문은 다소 뜬금없었다. 제 방에 가만히 앉아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있던 셀렌은 갑자기 찾아온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이 기차에는 분명 군의관이 따로 있는데, 굳이 제게 와서 묻는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점은 있지만 구태여 물어보고 싶진 않았던 셀렌은 솔직하게 답했다.
“간단한 응급처치라면 할 수 있는데.”
“그래? 총알 같은 것도 뺄 수 있어?”
“…해 본 적은 없지만, 할 수는 있을지도.”
간단한 응급처치라면 군사학교에서 배웠다. 탄환 적출은 해 본 적 없지만, 디스티가 하는 걸 여러 번 보았으니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잘됐네. 잠깐 따라와 주겠어?”
누가 다친 건가. 하지만, 치료라면 군의관에게 가는 게 훨씬 좋을 텐데. 물론 디스티는 개조에 미친 매드 닥터니 치료받기 불안할 수도 있지. 하지만 비전문가인 제게 치료받는 것보단 전문가인 그가 나을 터다.
그렇지만 과묵한 셀렌은 구구절절 말하기보단 일단 코일을 따라갔다.
“아.”
동행의 끝, 도착한 곳에서 보이는 부상자의 얼굴을 본 셀렌이 자신도 모르게 작게 탄식했다.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건 왼쪽 가슴을 저격당한 군의관이었다.
*
셀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상처 입은 디스티를 수술대 위에 눕히고, 지시에 따라 메스를 건네주거나 약을 찾아주었을 뿐이었다.
남의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만큼 저 자신의 상처도 손쉽게 치료하는 디스티는 그렇게 순식간에 스스로 부활했다.
수술대를 간단히 정리한 그는 피투성이 가운을 벗어 던졌다.
“도와줘서 고맙군, 중위. 이왕이면 내가 총에 맞지 않게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쉬러 가도 좋다고 한 건 군의관이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렇군, 이히히!”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임에도, 디스티는 전혀 화내거나 심각하게 주의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은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이고 그렇기에 총에 맞는 것쯤은 별다른 일도 아니라는 듯. 그는 그저 낄낄 웃으며 느긋하게 상의를 갈아입을 뿐이었다.
“또 무슨 짓을 해서 총에 맞은 겁니까?”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평소와 같았지.”
“잘못한 게 많군요.”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가!”
그거야 군의관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으니, 평소와 같다고 하면 이런 대답밖에 해줄 수 없다.
냉정한 셀렌의 대답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디스티는 제 상처를 손끝으로 더듬어 보았다. 대부분의 처치는 제가 했지만, 몇 번은 셀렌의 손길이 닿았던 치료였다.
“역시 중위는 뭔가 익히는 건 잘한단 말이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 치곤 제법이지 않나.”
보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살균된 손으로 몇 번이고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저러면 안 되지 않나.’ 싶지만, 비전문가인 자신보다는 전문가인 그가 더 잘 알 테니 쓸데없이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
셀렌은 묵묵히 정리를 도우며 답했다.
“저도 수업 때 이런 건 다 배웠습니다.”
“중위는 수업보다는 실전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실전에서도 배웠지요.”
“하긴, 실전만 한 배움이 어디 있나.”
대화는 그쯤에서 끊어졌다.
수술대가 깨끗해지고 난잡했던 의무실이 정돈된 후. 디스티가 새 옷을 입을 즈음, 코일이 슬그머니 나타나 상황을 물었다.
“셀렌, 그 자식 살려뒀어?”
말투만 보면 죽길 바라는 거 같지만, 정말 죽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디스티가 기분 나쁘고 싫은 것과는 별개로 이 열차에는 군의관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테슬러가 디스티를 마음에 들어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죽일 수 없었다.
멀쩡해진 디스티는 제 팔에 링거 바늘을 꽂으며 방문자를 반겼다.
“이런. 왜 다시 온 건가, 코일 대위? 드디어 개조당할 마음이 생겨서?”
“너는 어떻게 죽다 살아나 놓고 또 죽음을 부르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이히히히. 내가 죽긴 왜 죽어. 중위가 날 지켜줄 텐데. 안 그러나?”
디스티가 선명한 자주색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과연 제 호위병이 무슨 소리를 할지,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군의관이 기뻐할까. 셀렌은 그런 걸 생각해서 맞춰 줄 정도로 감성적이지 않았다.
“쏴도 돼. 코일.”
그래서 그렇게 답했다.
어차피 그는 저 자신도 치료할 수 있는 불사신 같은 천재 의사니, 두어 번 정도 쏴도 괜찮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이런, 이건 직무유기 아닌가 중위?”
“시끄러워. 죽어!”
“정말 날 죽일 건가? 그건 총통이 바라는 바가 아닐 텐데!”
디스티와 코일 사이의 실랑이엔 무게가 없었다. 셀렌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리며 코일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군의관과 총을 들고 소리치는 동료를 시야에 담았다.
‘…이게 사이좋은 모습인 건가?’
총통은 두 사람이 사이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셀렌이 보기엔, 이건 살벌한 거지 다정한 건 아니다.
하긴, 감정을 잃은 제가 무어라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그는 방으로 슬그머니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