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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를 본 건, 라빗츠 멤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 사자나미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본 게 웃는 얼굴이었고,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는 탓이었다. 그를 다시 보려면 라빗츠 멤버와 일 할 때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에덴과 라빗츠가 같이 일한 날에 라빗츠 프로듀서라고 소개를 받았으니까. 사자나미는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을 아직까지도 잊은 적 없는 일처럼. 원한다면 라빗츠의 프로듀서가 아니라 다른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치사한 수를 쓴다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저 '궁금해서'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방법'으로 알아볼 뿐이었다. 그만큼 그가 신경 쓰였다. 히라이 유키나라는 사람이.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사자나미는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자나미 쥰이 기억하는 히라이 유키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몇번이고 다른 모습을 떠올리려고 해도, 그 웃는 얼굴이 사자나미가 가진 그의 전부였다. 그러니 상냥한 사람이거나 다정하고 얌전한 사람이라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사자나미 쥰이 또다르게 기억하는 안즈란 프로듀서도 사려깊고, 좋은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안즈와 같지 않다지만, 좋은 사람일 거란 기대는 막연하게 가질 수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제 마음에 확신을 할 수 없었던 때라서. 그렇게 다시 본 히라이 유키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 그때 본 웃은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얼굴로 다시 만났다. 무표정도 웃음도 거짓된 표정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라빗츠와 함께 있던 그 순간이, 어느 때보다 특별했기에 나온 웃음이었다. 그래서 그 얼굴이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해 제게 전부로 남은 그 웃음이. 이후로 그를 보려면 사자나미는 개인적인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게, 같은 학교도 아니었고 라빗츠하고 소속사도 달랐다. 우연을 가장한 꾸밈도 반복할 수 없었고, 대놓고 기다리자니 이마저도 할 짓이 되지 못했다. -아기씨가 놀리는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저는 히라이 유키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히 다시 만나길 바라며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했다. 결국, 억지같은 핑계를 대서라도 그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사랑은 제게 있어 어떤 의미였을까.

 

 

세번째로 만난 건, 히라이 유키나가 어떤 사람하고 같이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이 누군인지 사자나미 쥰도 모르지 않았다. 단지, 떠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아니라, 아니, 누구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사람과 있던 히라이 유키나의 모습이었다. 사자나미 쥰이 처음 본 히라이 유키나는 라빗츠 멤버들 사이에 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얼굴이었고, 두번째로 본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 그리고 세번째로 본 얼굴은 조금은 수줍게 웃는 얼굴이었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라빗츠와 함께였던 그가 특별한 순간에 웃는다는 건, 프로듀서라는 입장에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금은?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아이돌인 건 알고 있다. 빅3에 속한 제 그룹정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대의 유명세를 모를 수 없었다. 두사람은 어떤 사이지…? 왜 히라이 유키나는 그를 보고 웃는거지…? 제가 어떻게든 다시 보고 싶었던 그 얼굴을 왜 상대는 손쉽게 볼 수 있는거지…?

 

 

아, 그래.

사랑이구나.

다시 만난 사랑은, 저의 사랑이 아니라, 히라이 유키나가 가진 사랑이었다.

 

 

세번째로 얼굴을 본 이후에 사자나미 쥰은 이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그와 제대로 된 인연도 없으니 정리하는 건 정말 쉬운 마음이라 여겼다. 그리고, 또다시 만났을 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가 제게 말을 걸었다. 우연히 만나는 일을 꾸미고, 대놓고 기다려봐도 시선 하나 맞추기 어려웠던 그가 이번에는 먼저 저를 발견했다. 우연도 이런 끔찍한 우연이 있을 수 없었다. 히라이 유키나가 왜 에덴이 일해야하는 건물에 있었는지조차 의문이 들지 않았다. 그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이 가지고 있던 전부를 바꿨다. 히라이가 내뱉은 말은 참 단조로웠다.

 

 

"에덴의… 사자나미 쥰?"

"…그런데요?"

 

 

제 대답은 참, 까탈스러웠지만. 그가 부른 제 이름은 아이돌을 본 팬의 말투는 아니었다. 다정하고, 상냥하지도 않았다. 만약, 신원을 확인하는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이 내뱉은 말처럼 들릴 정도로 딱딱하고, 정보파악을 위한 목소리였다. 물론, 싫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가장 가까이, 저를 대상으로 들은 첫 마디는 딱딱할지언정, 매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제 이름을 부른 이는 귀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역시 제가 사랑에 빠진 탓이겠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히라이 유키나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라빗츠의 프로듀서, 였죠?"

 

 

마치 저를 알아본 게 대단한 일이라는 사람처럼, 히라이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 지금까지 보고 느꼈던 정보는 모든 게 사라졌다. 오로지 제 말과 행동, 눈짓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상대가 저의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당신에 대해 모를리가 없잖아요. 알면 충분히 알았지. 속으로 말하면서도, 사자나미는 처음 만난 이후로 더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만 했다. 근데, 있잖아요? 전 이미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저에 대해 아는 게 에덴 소속이라는 것 뿐일 때도, 저는 당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이 뒤로 만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든 순간이었다. 영영 만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

 

 

우연에 우연은 계속 되는 일이다.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던 건, 제가 그를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저를 발견하지 않은 탓이라고 느껴졌다. 이후로 히라이는 사자나미를 발견할 때마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인사였고, 다른 날은 몸의 컨디션을 묻거나 저번에 나온 방송을 잘 봤다거나, 음악이 좋다거나 등의 칭찬과 관심이었다. 당연히, 조금 들뜨기도 하였다. 첫눈에 반한 사람이 제게 관심을 주는데, 눈 감고 외면하는 일은 아무나 못할 일이다. 꾸준한 인사 덕분에 어느 날은 결국 물어봤다.

 

 

'요즘 우리 자주 만나지 않나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사자나미 군을 살펴보고 있으니까요.'

 

 

그래, 솔직히 두근거렸다. 이어진 대답에는 한숨이 나왔고.

 

 

'빅3에 속하지 않습니까. 관심이 많습니다.'

'아아, 예.'

'저번에 제가 담당한 라빗츠 분들을 잘 대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 말에 또다시 웃고 말았다. 이 사람, 사람을 갖고 노는 거 아냐? 아니면 정말 내가 이상해졌거나. 그와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한 이후에는 히라이를 바라보는 일도 한결 편안해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는 그를 볼 수 있었고, 그가 제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시작이 나쁘지 않다면 생각보다 좋게 끝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자나미 쥰은 히라이 유키나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

 

 

"어라,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는데에~?"

"제가 말을 걸 때마다 그런 반응은 관두세요, 미케지마 씨."

"아하핫, 미안미안~! 그치만 히라이 씨, 표정 딱딱하니까 풀어주고 싶어져서 말야~"

 

 

그래, 지금처럼. 웃는 얼굴은 저를 향하지 않는다. 저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겠다고 이곳, 벽 뒤에 서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제 시선은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그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잔인하지 않나요? 이런 건. 하지만 어쩌겠는가. 멋대로 따라온 건 제 쪽이다. 상대는 제가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따라가는 줄도 몰랐을 테고. 아무리 뒤따라가도 제가 보는 건 그의 웃는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 하나뿐이다.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면 전부인 게 아니었다. 히라이의 뒤를 쫓을수록 그를 이루고 있던 전부에, 웃는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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