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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불어온 바람에 넘실거리는 커튼, 화창한 날씨였다. 미하루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을 가지고 책상에 앉았다. 평소에는 직업 사정상 집에 자주오지 않아 책상도 자주 사용하지 않았지만, 요 며칠은 편지를 쓰느라 틈만 나면 책상 앞에 자리 잡은 자신의 모습에서 예전 생각이 종종 났다. 미하루는 편지지를 고르기 위해 서랍에 모아놨던 편지지 세트 중 하나를 손에 집히는 대로 꺼냈다.

 

‘맨 처음에 사용했던 편지지세트네요!’

“그러게,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을 뿐인데~”

 

미하루의 손에 들린 파스텔 톤 하늘색 편지지 세트를 본 리츠가 화면 속에서 반갑다는 듯 입을 가린 채 웃었고 미하루 역시 그리움이 담긴 표정으로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리츠는 포장지를 뜯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미하루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어차피 복귀하면 편지 쓸 시간도 없이 구를 텐데 뭐-”

‘그래도요…미하루는 아쉽지 않아요?’

“원래 연락 끊은 지 4~5년 되었고 게다가 연락을 주고받는다기보다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낸 거니 그가 안 읽고 태웠을 가능성도 있어.”

 

리츠는 질문의 답을 하는 게 아니라 교묘히 피하는 모습에 그녀의 마음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미하루는 리츠의 상냥함에 감사하며 포장지를 뜯어 편지지를 꺼냈다.

자신 앞으로 내려온 한 달 휴가라는 이름의 근신은 미하루에게 있어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멋대로 일을 벌인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기에…

첫 주는 그저 오랫동안 방치해 둔 집을 정리했고 고향 집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옛 연인의 모습에 자그마한 장난기 어린 생각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미하루는 시간도 보낼 겸 약간의 장난기가 포함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편지쓰기에 어느새 진심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끝을 내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다.

‘     유우야에게’ 그간 편지와 다른 머리말을 적는 만년필 닙이 햇살에 반짝였다.

 

 

 

‘미하루, 히로씨에게 전화 왔어요.’

“전화 연결 부탁해.”

 

한 자 한 자 고심하며 쓰는 것을 마무리하자 만년필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리츠가 말을 걸어왔다. 미하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한쪽에 내려놓은 인이어를 귀에 꽂았고 리츠는 전화를 연결시켰다.

 

“무슨 일?”

“아니 전화 받자마자 하는 말이 무슨 일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선배.”

“끊어도 되는 거지?”

“선배 잘못했어요!!말하게요, 말할 테니까!”

 

미하루의 농담에 히로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기지도 못하면서 왜 매번 장난을 먼저 시도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그에게 기회를 주듯 이야기를 재촉하자 히로는 미하루에게 복귀 후 그녀가 인수해야 할 일에 대해 전해주었다.

 

“선배,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오냐.”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미하루는 귀에 꽂았던 인이어를 빼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등에 닿는 푹신함에 몸은 편안했지만 기분은 가라앉았다. 전화를 끊기 전에 후배 입에서 나온 다음 주에 보자는 가벼운 안부가 잊고 싶었던 현실로 자신을 끌고 오는 것 같아 달갑지 않았다.

 

“다음 주라…”

 

편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할지 고민하던 미하루는 생각을 마무리했는지 편지를 챙겨 의자에서 일어났다.

 

 

 

 

 

***

 

 

 

 

 

“이대로 이어서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등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와 인기척이 사라지자 카자미는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상체에 힘을 풀었다. 몇 년째 이어진 가교역임에도 불구하고 제로와의 접선은 언제나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하지 못한 일이었다. 카자미는 제로에게서 부탁받은 일을 최선으로 생각해야 했기에 현재 맡고 있는 공안부의 일과 어떻게 병행할지 머릿속에서 정리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접선 장소가 주차하기 애매한 곳이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경시청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역으로 가는 중 카자미는 눈에 들어온 가게 이름이 예전에 그녀와 헤어졌던 가게와 같아 걸음을 멈추었다. 위치도 업종도 전혀 다른 가게였지만 이름이 같단 이유 하나로 카자미는 가게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피크타임이 지난건지 가게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 것이 아닌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방식이라 먼저 주문을 한 다음, 카자미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가게를 살펴보았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둬, 지금 이 이별은 날 위해서가 아니란 걸.’

 

이리저리 신경 쓴 걸로 보이는 인테리어까지 기억 속 장소와 비슷한 느낌이라 스치듯 떠오른 과거에 카자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는 직원의 발소리에 잠겨있던 생각을 갈무리했다. 공안이라는 직업상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카자미는 커피를 내려놓은 직원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 컵을 옆으로 살짝 밀어냈다. 표면이 찰랑거리며 은은한 커피향이 올라왔는데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마지막까지 인사성 밝은 직원에서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넸다. 행복하거나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지만 가게의 분위기가 좋아서 다시 방문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가게였다. 그러고 보니 미하루도 이런 가게 좋아했는데…

 

“같이 오고 싶군.”

 

카자미는 경시청 도착 예정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손목시계를 보다가 입에서 흘러넘친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제 손으로 잘라낸 과거를 스스로 찾을 줄 몰랐다.

이게 무슨… 진작 헤어졌던 제로의 질책하는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거 같아 카자미는 제 뒷목을 한번 쓸어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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