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주의, 사각관계 있음. (이제부터 유혈 묘사 없습니다.)
산옥이 말한 대로 그는 금방 돌아왔다. 중상을 입은 것치고 일상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씩 웃는 산옥을 보고 애향이 걱정 섞인 얼굴로 그를 보았다.
“정말 안 아파요?”
“질 좋은 치료를 받았잖아요. 들어오면서 이야기 들었는데, 애향 씨도 약초 전문가라면서요? 그러면 아까 저 치료 받을 때 쓴 약초도 애향 씨가 구해 준 거예요?”
“네. 집에 없는 건 다시 나가서 구해 왔어요.”
“저 때문에 너무 번거로운 일 하신 거 아닌가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은 원래 치료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열어두는 무료 의원 같은 거니까요.”
애향에게 이야기를 들은 산옥은 자못 심각해졌다. 원래 애향이 있는 곳은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었는데 요새는 요괴 습격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그럼 족쳐버려야겠네.”
“네?”
“없애줄게요, 그 새끼들.”
“산옥 씨 지금 몸도 성치 않은데! 게다가 요괴는 아무나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요.”
당신 눈에 비친 저도 요괴인데. 산옥은 그렇게 말하려다 그만 두고 제게 맡겨달라는 듯 씩 웃었다. 어쨌든 은인에게 보답할 길이 생겨 그는 만족했다.
한편 삼장 일행은 산옥이 갔을 법한 곳을 물색하고 있었다. 분명 중상을 입어 어딘가에서 쓰러져 있거나 운이 좋게 누군가에게 구출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여러 마을을 다니며 수색을 펼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다닌 마을에서 성과가 없자 모두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있잖아, 오정.”
“왜?”“설마 산옥, 죽은 건 아니겠지?”
“뭔 소리야. 걔가 왜 죽어.”
“그렇지만 파란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없다고들 하고, 상대한 요괴 수도 많았다면서. 산옥은 아직 우리하고 다르잖아.”
“오공,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에요.”
팔계가 한 마디 하자, 오공은 입을 다물었다. 팔계는 산옥이 사라진 이후로 웃지 않았다. 평소보다 훨씬 냉기가 돌고 삼장조차 그를 부르려다 멈칫할 정도로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공이 산옥은 죽었을지 모른다는 소리를 한 건 실수였다.
“미, 미안해. 팔계.”
삼장은 별 말 없이 한숨을 쉬었다. 팔계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좀 지나친 감도 있었다. 전후 사정을 다 듣지는 못했지만 산옥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만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팔계.”
“네.”
“그 녀석 못 찾으면 그냥 두고 갈 생각도 하고 있는 거냐?”
팔계는 핸들을 돌리다 삼장이 한 말에 차를 멈췄다. 급브레이크에 오공과 오정 몸이 기울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팔계에게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찾을 거예요.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만약 그 녀석이 우리랑 있는 게 싫어서 안 나타나는 거라면 어떡할 건데.”
“그럴 일은 없어요. 산옥은 반드시 우리 옆에 있을 거니까.”
단정 짓는 말이었지만 입 꼬리가 바르르 떨린 걸 눈치 못 챌 삼장은 아니었다. 확신도 없이 산옥을 잡으려 들면 산옥이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대체 왜 이러는지.
“하루야.”
“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더 지체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딱 하루 줄 테니 찾아. 못 찾으면 그대로 가는 거야.”
일행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산옥은 애향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 원상태로 돌아왔음에도 환자 취급 받는 통에 행동에 제약이 생기자 산옥은 애향에게 책을 구해다 달라고 했다. 애향은 집에 약초서 외에는 딱히 책이 없어 난감해했지만 금방 책 하나를 찾아와 산옥에게 쥐어주었다.
“무슨 책이에요?”
“동화책이에요. 제가 어릴 때 읽은 건데 이것도 괜찮을까요?”
“좋죠. 약초서보다는 이해가 잘 될 테니까.”
산옥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산옥은 웃음이 많은 이였다. 애향이 해 주는 크고 작은 일들에 언제나 감사를 표할 때나, 우스운 걸 봤을 때, 아이들과 놀아줄 때 등 산옥은 잘 웃었다. 애향은 그게 좋았다. 확실히 소일거리를 돕는답시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서툰 감이 있는 그였지만 다시 해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서 본성은 선한 이라는 걸 느낄 때마다 끌림은 날로 강해졌다. 그가 책을 다 읽은 것 같자, 애향이 말했다.
“이제 산옥 씨 이야기 해 주세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다 똑같지 않았어요?”
“그래도요.”
애향이 조르자, 산옥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항상 동료들 이야기를 할 때면 산옥 눈은 빛났다. 특히 팔계라는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웃기도 했다가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기도 해서 그는 잘 몰라도 산옥이 팔계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언젠가 산옥에게 팔계가 어떤 이인지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인지.”
“하지만 산옥 씨, 팔계라는 분 이야기 할 때마다 행복해 보였는데.”
“그랬구나.”
그 말 이후로 산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계속 아무 말 않고 있더니 고개를 떨어트린 채로 말을 꺼냈다.
“정말 모르겠어요. 그 분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 시야에 조금이라도 내가 있는 건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뻔히 알면서 왜 그 사실을 숨기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제법 오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어떤 존재냐고 물어보면 왠지 답을 할 수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산옥 무릎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놀란 애향이 그를 다독였다. 산옥은 진정하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죄송해요. 못난 꼴을 보였네요.”
“괜찮아요. 다 울었어요?”
“네.”
“못된 사람이네요, 팔계 씨는. 산옥 씨를 이렇게 울게 만들고.”
“아니, 아니에요. 그건.”
이렇게 팔계 때문에 울면서도 편을 들어주다니. 그만큼 좋아한다는 건가. 애향은 속이 쓰렸다. 산옥을 다독이면서 그는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부드러운 손길과 달리 눈빛은 서늘했다.
시간은 벌써 밤이 되어 달이 빛나고 있었다. 팔계는 어느새 입술을 짐짓 물고 있었다. 삼장과 약속한 시간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방금까지 다녀간 마을에서도 수확이 없어 이대로 산옥을 두고 떠나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 때 눈에 들어온 마을에서 팔계는 홀로 담배를 피우는 이를 찾았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자 일행들이 짜증스러운 눈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이 그린 산옥 초상화를 보였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애향은 담배를 피우다 말고 누군가 제게 그림을 보여 주자, 의아한 표정으로 초상화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것에 그려진 건 산옥이었다. 애향은 그림과 운전수를 번갈아 보고 조금 입 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찾았다. 산옥을 웃고 울게 만드는 팔계를 말이다.
“당신이, 팔계 씨군요?”
“그걸 어떻게.”
“일단 저희 집으로 오시죠. 일행 분들도 따라 오세요.”
애향이 불쾌감을 드러내자 팔계는 당황했다. 초면인 이에게 불쾌하다는 시선을 받는데 어쩐지 제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애향은 다른 일행들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곤 팔계와 함께 들어가면서 그만 들릴 정도로 소곤거렸다.
“유감이네요.”
“네?”
“당신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어요. 산옥 씨가 따르는 이가 당신이구나. 당신과 일행들이 이곳을 찾지 않으면 좋았을걸.”
“산옥은 어디 있나요?”
“자요. 당신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했다가, 그렇게 반복하다 잠들었어요.”
울었다니. 그게 또 무슨 소리인가. 산옥이 일행들과 벗어나 있던 동안 이 사람은 산옥과 어떤 교류를 해 왔기에 산옥이 슬픔까지 토로해 보인 걸까. 팔계도 본 적 없는 눈물을 왜 그는 본 걸까.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보고 애향이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둘은 계속 말이 없었다. 애향이 답답한 공기를 피하려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던져 비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