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유혈 묘사 있음. 사각관계 있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산옥은 파악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는데, 익숙지 않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키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일어나시면 안 돼요. 아직 치료가 다 안 됐어요.”
“누구.”
“절벽에 쓰러져 계신 걸 제가 보고 마을 주민 분들을 불렀어요.”
“아, 신세를 졌네요.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의사 선생님을 모셔올게요.”
모르는 이에게 참 상냥한 인간이군. 산옥은 그렇게 생각했다. 요괴만 느낄 수 있는 냄새 같은 것도 없으니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안으로 들어와 산옥에게 물었다.
“기분은 어떤가?”
“개 같아요.”
“저, 저기. 제가 붕대를 감았는데 혹시 아프셨나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산옥이 절벽에서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자 두 사람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서 얼굴에 흉이 졌구먼.”
“괜찮아요. 원래 좀 까지고 다치고 해서 익숙하니까.”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그나저나 죽을 좀 가져왔는데 드실래요?”
“내가 가져다 먹을게요.”
“그런 소리 말아. 지금 몸 상태가 회복도 안 됐는데 움직이면 곤란해. 자자, 환자는 누우라고.”
“아니, 그래도 돕는 게 속 편하고 좋은데.”“환자는 누워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러다 회복이 더뎌지면 자네만 손해잖아.”
의사가 한 말에 할 말이 없는지 산옥은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래그래, 착하네. 착해.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은 뭔가?”
“산옥이에요. 염산옥.”
“산옥. 좋은 이름이네. 그럼 애향이 올 때까지 누워 있게. 치료는 한 번만 더 받으면 될 것 같으니까. 회복 속도가 빠르구먼.”
“아하하. 다행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 요괴 회복력은 인간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순수 요괴인 산옥은 일행 중에서 회복 속도는 빠른 편에 속했다. 그나저나 저를 도와준 이 이름이 애향이구나. 산옥은 누워 있다가 다시 들려온 발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좀 드세요. 일부러 식혀 왔어요.”
“감사합니다, 애향 씨.”
“어, 제 이름을 아세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알려 주시던데요. 애향 씨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저는 산옥이라 불러주시면 돼요.”“아, 네. 그러면 저도 산옥 씨라고 부를게요. 팔은 움직이실 수 있겠어요, 산옥 씨?”
“네. 괜찮아요. 저 때문에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아니에요. 저희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거든요. 누구든 곤경에 처하면 도와야 한다고요.”
“어머니들은 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 먹겠습니다.”
“네. 모자라시면 더 가져다 드릴게요.”
산옥은 죽을 먹었다. 콩이 들었는지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약간 풋내가 났다.
“콩을 넣고 끓인 죽인가요?”
“콩 싫어하세요?”
“아니에요. 그냥 콩 특유 풋내가 나서 궁금했어요.”
“보통은 잘 못 맡으시던데. 산옥 씨는 바로 아시네요.”
애향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걸 주절주절 설명하게 시작했다. 콩을 맨 처음 넣어서 어느 정도 불린 다음에 쌀을 넣고 푹 끓인다고 한다. 소금을 넣기는 하는데, 식구들이 싱겁게 먹어서 적게 넣었다는 말을 하던 그는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제가 말이 많죠?”
“괜찮아요. 잘 먹었습니다.”
“더 드실래요?”
“아니오, 더 그러면 실례잖아요. 읏차.”
“누워 계셔야 한다니까요!”
“그냥 잠깐 여기만 둘러보고 싶어서요. 금방 올게요!”
“산옥 씨!”
“아, 죄송한데 위에 걸칠 옷 좀 주실래요? 이 상태로 돌아다니면 안 되겠는데.”
씩 웃으며 묻는 말에 애향은 저도 모르게 멍한 얼굴로 산옥을 보더니 이내 어디선가 옷을 가지고 왔다. 산옥이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 걸 보고 그가 물었다.
“정말 나갈 생각이신 거예요?”
“아무래도 길치라서 멀리는 못 갈 거예요. 일행들하고 합류할 길 좀 찾아보려고요. 그러면 갔다 올게요. 옷 고맙습니다, 애향 씨!”
산옥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애향은 벙찐 표정으로 그가 간 곳을 보더니 슬며시 웃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네.”
애향이 산옥을 발견한 건 절벽에 달린 약초를 캐러 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절벽 밑 부분에 달려 있는 약초는 양도 많고 쓸 곳도 많아 주로 찾곤 했다. 여느 때처럼 약초를 캐러 절벽에 다다르던 애향은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입가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놀란 애향이 바구니도 집어던지고 어깨를 두드렸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어떡하지?”
상대는 미동이 없었다. 설마 죽은 건가? 손목을 쥐어 맥박을 확인하니 다행히 살아 있었다. 약초고 뭐고 애향은 상대를 등에 업고 바구니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후다닥 달려오는 애향을 본 주민들이 의아해하다 그가 업고 온 이를 보고 경악했다.
“누군지도 모르고 데리고 오면 어떡하니!”
“하지만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데 어떻게 가만 둬요? 우리 늘 사람 살리려고 약초 연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애향은 그렇게 말하고 그를 제 방에 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쓰러진 이 입술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씨.”
“이봐요, 정신이 드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곧 다시 의식을 잃은 건지 말이 없었다. 푸른빛 머리카락 때문에 하얀 피부가 창백해 보였다. 애향은 그가 누구이든 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창백한 피부에 시선에,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