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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혈 묘사, 약간 삼각관계 묘사 있음.

 

단 한 번, 산옥은 팔계가 먼저 내민 손을 놓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일은 팔계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 날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계속 함께 있었다면 이런 감정에 휩싸이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는 잠든 산옥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언젠가 둘은 수많은 요괴에게 급습 당했다. 팔계와 산옥 모두 실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인원수는 상대가 압도하고 있어 꽤나 난항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둘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산옥은 심한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어 밑을 내다보지 않았다. 죽일 듯이, 아니 정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상대를 바라보는 산옥이었다. 비호를 휘두르는 그는 얼굴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산옥은 싸울 때만큼은 누구보다 잔인했고, 냉혹했다. 그만큼 앞만 보고 싸우곤 했는데 그게 이번에 아주 큰 패착이 되어 돌아왔다.

 

“큭!”

“산옥!”

 

벼랑 끝으로 몰리고 몰린 산옥은 추락하기 직전이었다. 요괴 하나를 상대하던 중 배를 걷어차였다. 체급 차 때문인지 몸이 붕 뜨더니 그는 벼랑 끄트머리를 겨우 잡고 있었다. 팔계는 산옥을 보자 금방 그를 잡아주려 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팔계 발목을 붙잡았다. 산옥은 입을 오물거리더니 침을 뱉었다. 아래로 떨어진 침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제대로 맞았구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그는 차츰 힘이 빠져나갔다. 많은 이들과 싸우느라 평소보다 체력을 더 많이 쓴 탓이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 안에 감돌고 있는데다 현기증까지 오고 있었다. 산옥은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벼랑 위로 올라오려 했다. 그러나 다리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발을 굴러도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이를 아득 물었다. 팔계는 여전히 혼자 고전 중이었다. 이렇게 도움이 안 돼서야. 팔계가 산옥에게 달려와 손을 붙들자, 산옥은 고개를 저었다.

 

“산옥?”

“틀렸어요. 지금 이렇게 붙들고 있는 것도 한계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조금만 버텨요. 내가 끌어올려 줄게요.”

 

산옥은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고개를 젖혀 피를 토했다. 그에 팔계가 산옥을 빨리 끌어올리려 했다. 산옥 손톱에 흙이 계속 끼었다. 잡은 손에는 힘이 없어 헛돌기만 하고 있었다. 산옥은 빈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리고 팔계를 보고 웃었다.

 

“괜찮아요.”

“안 돼요, 산옥.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미안해요.”

“산옥!”

 

헛돌았던 손이 팔계 시야에서 멀어졌다. 산옥은 눈을 감았다. 그래.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짐이 되기만 할 바에는 제가 없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높은 곳을 그렇게나 무서워하는데 어째서 떨어지는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기만 할까. 팔계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이대로 금방 멀어질 수 있는 사이란 걸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해 볼걸 그랬나. 사랑한다고.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밤을 팔계로 인해 셀 수 없을 만큼 보냈노라고. 부질없는 생각이 밀려드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됐나. 희미한 웃음이 새었다.

 

한편 팔계는 산옥이 떨어진 걸 알면서도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산옥은 팔계를 보고 웃었다. 그 웃음에 팔계는 산옥에게서 화남을 보았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제 품에서 생을 다한 화남을 떠올리며 그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에게 마음을 준 이들은 바람결에 사라지는가. 어째서 산옥은 화남과 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는가. 대체 자신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는가.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망연히 있던 그 뒤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팔계, 괜찮아?”

 

팔계는 말이 없었다. 그런 팔계를 이상하게 여긴 오공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팔계와 산옥이 함께 있었을 텐데 산옥은 어디로 간 걸까.

 

“산옥은?”

“제 실수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저는 산옥을 찾으러 가야겠어요.”

“어이, 팔계!”

 

다른 이들이 불렀지만 팔계는 모두 무시하고 벼랑 밑으로 달려갔다. 더 이상 무엇이든 잃을 수 없다. 그는 말로 뱉는 대신 제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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