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매지컬 시프트 대회인데, 어쩌지.’
아이렌은 등교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다가, 문득 제게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사고의 용의자를 특정한 것과 목적을 파악한 것 까진 도달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아직 완벽한 대책이 없다. 그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재앙이 일어날 걸 알아도, 그걸 대처할 능력이 없다면 미리 눈치 챈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림, 일어났어? 학교 가야지.”
“음냐…, 이 몸의 마법 잘 보았느냐…!”
“…무슨 꿈을 꾸는 거야, 저 녀석.”
슬슬 등교하지 않으면 지각할 텐데, 그림은 잠꼬대나 하고 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못미더운 파트너를 내려다보던 아이렌은 주변을 배회하는 고스트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그림 좀 깨워줄래? 나는 먼저 가볼게. 사이좋게 지각하는 것 보단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우후후. 어렵진 않지만, 괜찮겠어? 그냥 데리고 가는 건 어때?”
“저기, 그림은 생각보다 무거워. 그럼 걷는 속도가 느려져서 나까지 지각한다고.”
학점관리는 학교생활의 기본이다. 그걸 잘 아는 아이렌은 단호하게 그림을 두고 먼저 등굣길에 올랐고,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며 바쁘게 교실로 향했다.
오늘 1교시는 분명 마법역사학이던가. 교과서는 챙겨들고 왔으니, 들어가서 책상 서랍에 넣어둔 공책과 자료만 꺼내면….
“에이스, 듀스. 좋은 아…. 어?”
“아~!”
오늘도 열심히 공부할 생각으로 교실로 들어온 아이렌은, 자신을 향해 아는 척 하는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왜 이 교실에 플로이드가 있는 것인가. 에이스랑은 또 무슨 대화를 하고 있고?
궁금한 건 많지만 그걸 다 이야기 할 시간은 부족한 그는, 어느새 제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자신의 두 손을 마주잡는 플로이드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아기새우야, 안녕? 나랑 놀러 갈래?”
“…예? 놀러, 라니. 언제요?”
“당연히 지금이지. 갈 거지? 응?”
조금 있으면 1교시가 시작할 텐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주변의 A반 학생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눈으로 플로이드를 보았지만, 에이스만큼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마도 에이스는 같은 농구부이니까 그의 성미를 잘 알아 놀라지 않는 것이겠지. 상황을 대충 파악한 아이렌은 당황하지 않고 물어왔다.
“…저어, 수업은요?”
“수업? 별로, 안 들어도 상관없지 않나? 시험만 잘 치면 되잖아. 아기새우는 공부 열심히 하는 편이지? 그럼 괜찮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제멋대로 굴었다간 유급 당할지도 모르지 않나. 무엇 때문에 자신이 지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플로이드의 제안은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관심 있는 선배와 단 둘이 놀러갈 기회가, 제 생에 또 언제 찾아오겠는가? 성실하기는 하지만 유혹에는 비교적 약한 편인 아이렌은 상대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왔다.
“언제 돌아오실 건데요?”
“어?”
“아, 아이렌?”
뜻밖의 긍정적 검토에,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조용해진다. 에이스와 듀스가 황당하다는 듯 아이렌을 보며 눈빛으로 말리려 들자, 플로이드는 이 전반적인 상황이 다 재미있는 것인지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아하하하. 글쎄다? 생각 해 본적 없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 인거죠…?”
“그런데?”
잘하면 오늘 하루는 통째로 날려먹을지도 모른다는 뜻인가. 그건 대단히 곤란하지만, 출석부에 빨간 줄이 그이는 것이 플로이드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 보다는 덜 손해일 것 같다. 기껏 저쪽에서 관심을 가져주는데, 철벽을 쳐봐야 손해이지 않은가.
잠깐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아이렌은 이내 머리를 긁적이더니, 들고 있던 책을 옆에 있는 듀스에게 넘겼다.
“나, 보건실에 갔다고 선생님에게 말 좀 해줘.”
“뭐?! 자, 잠깐 아이렌. 진심이야?”
“응. 아, 그림은 곧 올 거야. 오늘 늦잠을 자버려서, 이제야 달려오고 있을 걸.”
“아니, 그림은 그렇다 치고 너 정말….”
듀스는 아이렌의 성실함을 알기에 이 결정을 어떻게든 되돌리려 해 보았지만, 플로이드는 그가 자신의 목표물을 설득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좋아, 그럼 가자~!”
상대가 허락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다는 것인가. 수업종이 치기 전 재빨리 아이렌을 데리고 밖으로 뛰쳐나온 플로이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보폭과 속도로 중원을 가로질러 나갔다.
“자, 잠깐. 플로이드 선배! 조금, 천천히…!”
‘이건 너무 빠르잖아!’ 마치 대형견에게 끌려가는 보호자 같은 심정이 된 아이렌은 다급히 외쳤지만, 플로이드는 전혀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저 말을 내뱉기 무섭게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아 다리를 더 바삐 움직여야 했지.
‘나, 성큼 따라왔어도 괜찮았던 걸까?!’
수업을 빼먹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은, 과연 제가 학교로 돌아갈 때 체력이 남아있을지 그것이 걱정될 뿐인 거지.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플로이드에게 끌려가고 있는 아이렌은 초점 없는 눈으로 거친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