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스토리 2장의 전반적인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우왓! 똑같이 생긴 얼굴이 둘 있어!”
중원의 구석. 나란히 앉아있는 목표인물들을 보며 외친 그림이 제 말에 동의를 구하는 듯 아이렌의 팔을 쳤다. ‘그래, 나도 보고 있어.’ 케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던 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한 후 가볍게 코 밑을 문질렀다.
그림과 아이렌이 학원장의 부탁을 받아 학교에서 일어나는 원인 불명의 연속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기를 며칠 째. 하츠라뷸 기숙사의 트레이 클로버가 부상자 명단에 추가됨으로서 결정된 ‘하츠라뷸 기숙사와의 공동 수사 작전’은 다음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학생을 물색하러 나서는 걸로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뭐랄까, 여러 모로 눈에 띄는 학생들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진짜 눈에 띄네.’
아까 전 폼피오레 기숙사의 3학년 학생도 꽤 특이했지만, 저 두 쌍둥이는 특히나 눈에 띈다. 이름이 분명, 제이드와 플로이드라고 했던가. 케이터가 두 사람을 같이 소개한 탓에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장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겠지. 즐겁게 이야기 중인 형제를 관찰하는 아이렌은 제 옆에 있는 에이스와 그림이 떠드는 이야기를 슬쩍 엿들었다.
“그것보다, 저 두 사람. 주변 학생들이 작아 보일 정도로 무진장 크지 않아?”
“비실비실해 보여도, 꺽다리에 강해보인다고!”
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크다. 그래서 눈에 띄었던 것인가. 아이렌은 제가 느낀 유난함이 기분 탓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남자들과 키가 반 뼘 이상 차이나지 않는 자신이 봐도 크다고 느껴질 정도니, 분명 실제로는 더 클 터. 양쪽이 다른 눈동자 색에 쌍둥이라는 점도 충분히 눈에 띄는데, 키까지 크니 ‘특히나 눈에 띄는 것 같다’는 감상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1학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쌍둥이 형제의 특징으로 떠들고 있을 때. 두 사람과는 구면인 리들이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저 둘, 특히 플로이드 쪽은 그다지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아.”
“네? 어째서요?”
질색하는 그를 본 아이렌이 호기심 반 놀람 반의 물음을 뱉었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엄격한 리들이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다니, 혹시 플로이드 라는 사람은 대단한 불량인 것이 아닐까. 괜히 겁이 든 그는 두 형제 중 누가 플로이드인지 묻기 위해 손가락질을 하다가, 형제들 중 눈매가 처진 쪽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라. 이거, 망한 거 아닌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에 아이렌은 급히 손을 거두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대의 관심은 자신이 아닌 제 앞의 리들에게 쏠린 상태였다.
“아~! 금붕어다~!”
“윽, 들켰다!”
반응을 보아하건데, 아마 지금 말한 쪽이 ‘플로이드 리치’인 모양이다. 아이렌은 쓸데없는 불똥이 튀지 않도록 슬그머니 듀스의 옆으로 붙어서 희생양이 된 리들을 주시했다.
“금붕어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숨바꼭질? 재미있어 보이네.”
“프, 플로이드. 날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는 건 그만두라고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그치만, 자그만하고 붉은 건 금붕어잖아?”
확실히 그건 사실이다. 게다가 금붕어는 보통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관상어니, 리들에겐 미안하지만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우아하게 물속에서 헤엄치는 리들을 상상하고 웃는 아이렌과 달리, 나머지 1학년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그림은 ‘뭔가 이상한 녀석인데.’ 라는 말까지 하며 몸을 뒤로 빼고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피하는 행동이 오히려 상대의 눈에 띈 모양이다. 플로이드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림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와~, 말하는 고양이다! 재미있어~. 있지, 있지, 꽉 졸라 봐도 돼?”
“조, 졸라본다고?! 그만두라고!”
그냥 안아본다고 해도 도망갈 그림인데, ‘졸라 봐도 되냐’는 말에 순순히 알겠다고 할 리가 없었다. 아니, 사실 저런 말이라면 어지간한 피학성애자가 아닌 이상 누구든 싫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질색한 그림은 아이렌의 등 뒤로 몸을 숨겼고, 그렇게 또, 허공을 방황하던 보라색 눈동자가 플로이드의 오드아이와 마주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선교환은 첫 번째와 같은 긴장감은 없었지만, 거리가 워낙 가까운 탓에 몸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렌은 거의 얼어버려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어깨만 움츠렸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플로이드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보려고 했지만, 아이렌이 목소리를 내기도 전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제3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런, 하츠라뷸 여러분 여기 모여계시고.”
뒤늦게 플로이드를 뒤따라 온 제이드는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는 제 쌍둥이 형제와 하츠라뷸 기숙사 학생들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혹시, 매지컬시프트 대회를 앞서 적진을 시찰하러 오셨습니까?”
“으음, 그게~. 이건 이런저런 사정이….”
사실대로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범인색출작업을 들키면 용의자는 도망가고 말 것이다. 케이터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도 못하고 거짓을 시인하지도 못한 채 말을 얼버무렸고, 제이드는 그걸 충분히 수상하다고 판단했는지 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스파이 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겠네요.”
“네? 아, 아니. 스파이라니. 저희는….”
이대로 오해를 사면 하츠라뷸 기숙사에게도 좋지 않고, 다음 피해자 예측 작업에도 차질이 생긴다. 아이렌은 정신이 번쩍 들어 사태를 해명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제이드의 눈에는 기숙사도 알 수 없는 수상한 상대의 말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째서 저희들을 관찰하고 있었는지, 이유를 자세히 들려주겠습니까?”
“이 녀석, 말하는 건 온화해 보여도 전혀 눈이 웃고 있지 않아….”
리들의 말과 달리, 제이드 쪽도 만만치 않게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에이스는 그리 생각한 것인지 상대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제 동급생들과 선배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에이스의 말대로 이쪽도 만만치 않게 유해하다. 그런 상대들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해명이나 설명이 아니라…. 스피드겠지.
“어쨌든, 실례했습니~다!!”
케이터의 외침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던 조사단이 일제히 메인스트리트 쪽으로 뛰어간다. 달리기는 자신 없지만, 설마 저 두 사람이 자신들을 쫓아올까? 딱히 아직까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는데?
아이렌은 그렇게 생각하고 적당한 속도로만 뛰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큰 오산이었다.
“으왓, 쫒아오고 있다고!”
“뭐?!”
‘거짓말!’ 듀스의 외침에 뒤돌아 본 아이렌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자신들을 쫒아오는 플로이드였다.
안 그래도 팔다리도 긴데, 대체 저 속도는 무엇인가! 성큼성큼 거리를 좁히는 상대에게 근본적인 공포를 느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더욱 열심히 뛰어야만 했다.
“있잖아~ 기다려~!”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기다리나! 전원 퇴각!”
이미 퇴각하고 있지 않던가요, 라고 태클 걸고 싶지만…. 지금 제게 입을 열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체력의 한계까지 뛰는 아이렌은 제 뒤에 바로 플로이드가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라, 애써 에이스와 듀스의 등만을 보며 달려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열심히 뛰었을까.
그레이트 세븐의 동상이 있는 곳까지 도착한 5명과 1마리는 축 늘어져 거친 숨을 골라야 했다.
“하아, 하아…. 무서웠다고. 뭐야, 저 녀석들?”
“나에게 묻지 말아주길 바래. 1학년 때부터, 저 둘은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싫다고.”
그림이 투덜거리며 흐트러진 목의 리본을 정리하자, 리들이 핀잔을 주듯 대꾸했다. 1년 넘게 같이 한 동급생의 입에서 정체불명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대체 저 쌍둥이는 뭐하는 사람들일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숨 쉬는 게 고작인 아이렌은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일행들의 말을 경청했다.
“저 둘은 공격했다간 보복이 무서울 것 같네.”
“나라면 노리지 않을 거 같아….”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정말로 마냥 무섭다고 해도 좋은 걸까. 제이드는 포커페이스라 확실히 꺼림칙하긴 했어도, 다른 쪽은….
“그래도, 플로이드 선배 쪽은 좀 귀엽지 않나….”
“뭐?!”
“허?”
“렌, 그거 진심?!”
제가 무슨 엄청난 말실수라도 했나. 에이스와 듀스, 케이터의 반응에 흘리듯 제 의견을 내뱉은 아이렌이 고개를 뒤로 빼었다.
“아니, 하지만. 그렇게 커다래선 나긋나긋하게 얼쩡거리는 게 꼭 대형견 같아서 귀엽지 않나요?”
“…아이렌, 너도 참 취향이 특이하구나.”
리들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따가웠다. 무언가 겪은 것이 많은지 혀까지 차며 아이렌을 보던 그는 괜한 관심은 가지지 말라는 듯 단호히 손을 저었다.
“충고하는 데, 괜한 관심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귀찮아지기 싫으면 말이지.”
“네, 네에.”
일단 대답은 했지만, 자신은 하츠라뷸 학생도 아니다. 충고든 명령이든, 그의 명령을 꼭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거였다.
자신을 꿰뚫어보듯 날카로웠던 그 시선과 아이 같던 말투의 괴리감. 확실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제가 느꼈던 두려움 뒤에는 확실한 ‘호기심’이 있었다.
‘옥타비넬 학생 중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지내다 보면 친해지는 사람도 생기려나.’
갑자기 덥석 다가갈 생각은 없어도, 이 호기심을 그냥 썩힐 생각도 없다.
케이터가 다음으로 예측한 학생을 말하는 와중에도 플로이드에 대한 생각만 하던 아이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