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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붕! 그 손, 어떻게 된 거냐고!”

“다쳤어.”

“다쳤어, 라니. 대체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설마 그 용의자 녀석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공격당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아이렌은 제 옆에서 잔소리하는 그림을 힐끔 쳐다보곤 피식 웃어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림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사고를 칠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 걱정을 해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 미워할 수 없게 되어버리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른 아이렌은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냥 독초에 긁힌 것뿐이야. 약도 발라뒀으니 내일이면 마비 증상은 없어질 거래.”

“독초? 대체 어딜 갔다 왔길래?”

“뒷산에 잠깐.”

“…나보다 먼저 교실로 간 거 아니었냐고….”

 

그림은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이렌은 그런 그림의 반응에 에이스와 듀스가 정말로 비밀을 잘 지켜주었다는 걸 눈치채고, 두 사람의 우정에 소소하게 감동했다.

‘보건실에 간다’라고 말해 달라 부탁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플로이드와 놀러 갔다고 솔직하게 말 할 수도 있었던 건데. 다들 어쩜 이리 착한 걸까. 아이렌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깨끗함이었다. 물론, 그 깨끗함이 좋은 거긴 했지만 말이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 널 두고 갔다가 벌이라도 받은 모양이지 뭐야.”

“그래! 감히 이 몸을 두고 가다니! 독초에 긁혀 보건실 신세를 지는 정도로 끝나 다행인 줄 알라고!”

“네. 네. 잘못했습니다. 예비 대마법사 그림 님.”

 

누가 보아도 과장된 아부였지만, 그림은 그 호칭이 나쁘지 않은지 금방 화를 풀어버린다. 못마땅한 표정을 거둔 그림은 아이렌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오늘 오전에 있었던 수업에 대해 종알종알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1교시에 에이스 녀석이 말이지.’ ‘3교시에 발가스 선생이 말이야.’ 그림은 신이 나서 혼자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아이렌은 거기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플로이드와 일탈한 시간을 곱씹느라 귓가를 스치는 말이 들어올 자리 따윈 없었기 때문이었지.

 

‘왜 부르신 걸까.’

 

플로이드는 자신을 데리고 뒷산까지 달려갔다. ‘이 시간엔 여기가 제일 조용하니까.’라며 의기양양하게 웃던 그는 낮잠을 자기 좋은 나무 그늘을 알려주거나 학교가 다 보이는 큰 나무 위에 자신을 올려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그래.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한 일이라곤 순수하게 노는 것밖에 없었지. 혹시나 무슨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긴장하고 갔던 아이렌은 그렇게 한참을 즐기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상대에게 질문하고 말았다. ‘왜 놀러 가자고 한 거냐.’라고 말이다.

 

‘그냥, 아기새우랑 놀고 싶어서? 왜? 아기새우는 나 싫어?’

 

그 질문 자체가 어이없다는 듯 답하는 플로이드 때문에, 아이렌은 황급히 그런 건 아니라고 변명해야 했다. 자신은 결코 당신이 싫은 게 아니며, 오히려 그랬다면 따라오지 않았을 거란 말을 한 후에야 플로이드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반문해 왔다.

 

‘그럼 됐잖아. 뭐가 문제야?’

 

그래. 사실 정말 순수하게 노는 게 목적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습관적으로 상대를 의심했던 아이렌은 자신의 불순함에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상대는 그걸 신경 쓰지도 않고 솔깃한 말들을 해왔다.

 

‘아기새우는 재미있으니까.’

 

거짓 하나 없는 미소로 웃는 플로이드는 아이같이 순수해 보여서, 아이렌은 자신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그건 호흡하는 걸 잊을 정도의 충격에서 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렌은 그 말 한마디가 너무 기뻐서 뒷산에 놀러 가 상대와 나누었던 대화의 절반은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봐, 꼬붕! 듣고 있어?!”

“응? 아. 듣고 있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상태가 안 좋으면, 양호실로 가버리라고.”

“아냐. 그런 거 아냐. 걱정하지 마.”

 

놀러 간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제가 한 거짓말에 책임을 지려고 일부러 독초에 긁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후 수업까지 빠지고 싶진 않다. 자신은 지금 학생이니까, 학업에 충실해야지. 마법도 못 쓰는 제가 필기 수업까지 빼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로 그 학업의 의무도, 플로이드 리치의 존재 앞에선 파도 앞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다음에 또 같이 놀러 가면 좋겠다.’

 

그와 함께 있기 위한 조건으로 손이 긁혀 마비되는 정도는 감수할 만한 고통이지. 자신이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티 없이 웃으며 자신과 놀고 싶다고 하는데, 제가 뭐라고 거절할 수 있겠는가?

쉽게 의심하고, 거리를 두고, 거짓말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한 자신에겐 그런 날카로운 솔직함을 이길 재간이 없다.

아이렌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손을 몇 번이나 쥐락펴락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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