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긋 웃으면서 그녀는 자신이 들어설 만큼 벌어진 책상에 몸을 멈춰섰다. 데네브는 잠시 멈춰선 채 고개를 세우고는 서로 함께한 순간을 생각했다. 초상화가 표구된 채 줄줄이 늘어선 회랑에서 미소짓던 그 얼굴을. 진종일 머릿속이 행동을 새기는 리멤브럴이 되어 그녀가 희구하던 풍광을 반사해내는 듯이 느껴졌다. 상을 퉁겨 마음속 거울에 피어오르는 사람은 자신이 든 속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펼쳐보일 태도로 다정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약초학에는 썩 재능이 없었다. 첫 만남부터 이 학문과는 등을 돌린 채로 살아가야 할 사이라는 걸 짐작했다. 보통 초심자가 그렇듯이 생전 접한 적이 없는 낯섬에 서투른 기색을 보이는 것과는 달랐다. 손에 익은 일이 아니라서. 이해하기 난해한 교습에 머릿속이 지끈거리기 시작해서. 예전엔 본 적 없는 식물에 거부감을 행사해서. 이 나열한 이유중 어느것에도 그녀의 것인 이유는 없었다. 타고난 촉이 고개를 내저어 거부감을 표했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에 재능이 널리 발현해 막힘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성적표에 o의 폭설이 내리는 사람은 대대로 기억할 천재들이지. 타고난 재능에 맞물려서 노력까지 겸비해 완벽을 생활 태도로 갖춘 사람. 범재가 조심조심히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떠오르는 질문 사항에 손을 들기도 전에 작은 실마리만으로 내용을 문해해내는데 이르러 잽싸게 목적지에 당도해 있는 사람. 그녀 자신이 온 구간을 쏜살같이 주파할 사람이 아니라는걸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뭐 어때? 사람이 그럴 수도 있었다.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를 못하고. 그녀는 개의치 않아했다. 약초학에 재능이 없데도 지팡이 끝에 설은 주문을 풀어낼 수 있다면 좋았으니. 자신은 교습선생님의 말을 따라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려고 했다. 긴장감을 풀려는 듯이 손장갑에 낀 손을 몇번 폈다 풀었다 하면서 오물거렸다. 성겨진 올리고 자신 손에 음울함이 덧씌워진 채로 손은 미끄덕거리다 못해 삐그덕거렸다. 약초에 손을 뻗었다가 약초가 친화감을 못 느끼는지 껑충 손끝에서 널을 뛰고 심하면 시들고 마는 걸 떠올렸다. 귓가가 요동치는 것과 같은 외침을 귓전에서 울리던 걸 기억했다. 무의식 너머에서 떠오른 기억이 잦아들었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녀가 빙긋 친화감을 품고 다가오는 태도에 식물은 공격적인 태도로 대답을 받아쳤었다.
마음을 기울여 사려깊이 돌보는 태도가 없이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이랬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도 뙤양볕이 내려치는 곳에서도 잘만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공고히 하면서 자라 견고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식물이랬다. 왜, 정성들여서 곰살스럽게 대해보려고 해. 유리창에 반향된 채 들어온 햇볕에 눈이 부셔 손을 뻗어 눈을 반쯤 가렸다. 속내에 떠오른 중얼거림을 이내 입끝에서 피어오르게 말했다. 그녀는 움츠린 채 슬몃 말을 중얼거렸다. 끙, 영 식물을 잘 기르는 일에는 소질없는 자신이 키워올 생각에 잠시 앞이 깜깜해 작은 한숨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거리에서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기르기에 까탈스럽지 않은 식물이라고 당부하는 상인의 언질에 자그마한 식물을 받아왔다. 그러니까, 너가 식물을 좋아하니까. 눈 앞에 네빌 롱바텀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바람에 그랬다. 사람을 살피는 태도로 물그러미 쳐다보다 다정함을 베푸는 네가 떠올라 그랬다. 말도 안 되는 곳에 핑계를 댈 정도로 감정이 하나같이 빈틈없이 떠오른 셈이었다. 책상에 고개를 기울이면서 둥근 이마잇을 유리 외틀에 숙였다. 긴 방선으로 뻗은 식물이 작은 표토에 몸을 피웠다. 파고 모양으로 유려히 퍼진 화분이 그녀의 눈 앞에서 바람을 맞이해 살랑거렸다. 마음속에 들어선 얼굴이 그녀 삶에 큰 잔흔을 남긴 채 생활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당시 썼던 양피지 메모장을 꺼내어 보았다. 엎드린 채로 둥글둥글게 자아낸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상인이 하는 주의사항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말을 숙지했다. 어느 시점인 몇시에, 하루에 몇번 빈도로, 대량으론지 소량으론지 몇번 주어야하는지. 햇볕은 얼마나 쬐어줘야하며 식물 분갈이는 어떨때 해줘야하는지. 평소 말을 듣고도 떠오르겠거니하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주의 사항을 외워버리던 평소 태도와는 달리 굴었었다. 양피지를 꺼내 술술 기억해야 할 사항을 하나 둘 분류하여 꼼꼼히 써놓았다. 각오가 서려 자연히 손 끝에 힘이 들어가 그랬을까, 둥글면서 짤막한 몸집을 자랑하던 글씨는 빼곡히 눌린 채로 자국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