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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네빌이 신입 교수로 발령받은 날이었다. 네빌은 소식을 듣고 집에서 짐을 가져와 교수실에 풀어놓았다. 데네브가 몇년전에 준 꼬질이 두꺼비 인형. 아이들에게 나눠줄 초콜렛. 갈 줄을 모르고 몸을 쌩쌩 뒤흔들고 있는 식물. 검은 흙, 하얀 흙, 초록색 흙등 색색깔의 흙들이 교수실 바닥에 쌓여진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데네브는 도와준다고 네빌이 가져온 식물 샘플들을 옮기고 있었는데, 식물들은 재차 데네브를 거부하며 끙 데네브가 쥔 손을 밀어내었다. 응, 내가 놔주겠어? 장난끼가 많기는. 식물이 날도 좋고 산책나가고 싶었나봐, 네빌. 내게 밖으로 나가달라고 소동이야. 데네브는 빙긋 웃었다. 네빌은 화들짝 놀라서는 대답했다. 그 식물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이에요, 빛을 겁내해 데리고 나가서는 바싹 몸을 흙 아래로 파고들어요, 선배. 데네브는 숨을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은 듯 식물을 마주보며 하하 웃었다. 오, 말을 둘러대려 했더니만 일이 그렇게 되네. 얘가 날 싫어한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았어. ‘ 이동마법’ 데네브는 식물을 이동해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예전처럼 T주문을 받지 않도록 식물과 친해졌다는 말을 둘러대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데네브, 선배”

“오, 귀염둥이. 왜?”

“선배! 고개숙여요!”

네빌의 말이 완성된 문장이 되어 나오기도 전에 귓가에 번개가 치는 듯한 음성이 울렸다. 끊어지는 파열음이 날서게 귓고막을 괴롭히다 벽이 투툭 떨어지며 갈라지는 음성이 났다. 난봉꾼이 난동을 부린 양 방안은 처참한 골격이 되어 책을 놓는 대 곳곳이 나눠지고 대끝이 나뭇대가 바싹 갈라지듯이 반쯤 폐허처럼 무너졌다. 게시판에 우수수 붙은 포스트잇이 벽언저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방안은 책과 메모지의 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이어 책이 콩하고 그의 정수리에 떨어졌다가 바닥에 내팽겨쳤다. 네빌은 무심코 책에 맞은 곳이 아팠던지 머리칼을 단번 쓸어내리고는 말했다.

“ 뫄뫄 식물은 이동마법 싫어해서 정성들여 손으로 옮겨야해요. 무심코 이동마법으로 식물을 옮겼다가는 지금처럼 홀쭉 불퉁해져서는 사람들이 섬세하지 못함에 열매를 던지며 혼쭐을 내요. 까탈스럽고 까칠하죠. 조심스럽게, 꼬리를 바싹 세운 고양이를 다루듯 어루어줘야하는데 그럴땐 이렇게...”

그는 네브를 바라보며 말했다. 슬금슬금 재차 조심스레 다가가 식물에게 물건을 내민다. 네브는 조심조심 품안에 쥐고 있던 가방에서 물품을 꺼냈다. 그는 한손에 가득 식물을 달랠 물품을 움켜쥐었다 한쪽 팔을 화악 펼쳐서는 식물을 달랠 물품을 내밀었다. 식물이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네빌에게 맴돌다가 부쩍 삐죽거리며 아래로 나앉았다. 네빌이 만든 극적인 화해 시도를 거부하고 식물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듯이 그의 손끝을 쳐냈다. 데네브는 그의 손끝에서 손을 잔잔히 얹기 시작해 손을 틈새를 감고 손목을 둥글게 감싸쥐었다. 다칠라, 내가 할게. 부드러운 모래가 흘러내리듯이 부드럽게 웃는 웃음이 네빌에게 향했다. 네빌은 잠시 몸을 움찔했다가도 기꺼이 데네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선배가 해야겠네요. 당사자가 해야 받아줄 마음이 들성 말성 하겠는데, 내가 대신해 사과하니까 이 친구 입장에선 사과를 들은 기분이 안 난다나봐요”

“참, 까탈스러우시기도 하지.”

데네브는 웃었다. 남자는 허리를 작게 숙여 그녀를 비등히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빙글 감돌았다. 선배는, 예나 지금이나 식물이 따라주질 않네요, 좋은 사람인데. 고개 숙여 머릿깃이 어깨에 숙여져 겹쳐드는 그에게 식생이 움트는 흙내음이 났다. 데네브는 비가 온날 나는, 흙내음같은 향을, 투박하지만 선선한 이 아침의 향을 좋아하리라. 새벽 바람이 부는 아침. 비탈길에서 내린 바람에 쓸리는 밀보리 언덕이 떠오르는 향을. 자연에 내린 선선한 물빛을 줄기끝에 대롱 매단 채 바람에 고개를 기웃거리는 풀잎처럼. 빙글, 솟은 작은 풀잎이 내민 어깨끝을 적셔오는 봄비처럼. 한 사람만 알아주면 될 걸. 식물에게 사랑 못 받을 몫까지 네게 다 받았기에 불필요하다고 느껴 식물은 사랑을 주고싶지 않나봐. 그걸 네게 받았으니까... 손가락끝을 손 위에서 빙글 돌다 맞춰 감아쥐어주는 손이 따듯하다. 손을 마주 잡아쥐며 그는 식물을 쉽사리 달랠 수 있는 물품을 그녀의 손 안에 밀어뜨렸다. 둥근 구슬 같기도 하고, 질감이 말랑말랑한 젤리같기도 하고, 손아귀속에 쥐어진 따듯한 물과 같이 퐁퐁 샘솟기도 하는 물체가 그녀가 쥔 손 안에 들어왔다.

“이렇게요.”

깍지낀 손이 잘근 펼쳐지다가 이윽고 손가락 사이를 가만가만 잡아쥐며 들어오는 온기가 손끝에서 점칫거렸다. 틈새에 손가락이 훑듯 지나가고 그는 띄엄 데네브의 손가락 몇개를 밀어뜨리듯이 작은 손길로 잡아쥐고는 둥근 유리알 같은 물품을 식물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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