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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을 뻗어 와닿는 펜을 제 측으로 굴려 만지작거렸다. 데네브는 필지를 꺼내 아무뜻도 없는 단어를 꾹꾹 종이에 새겨놓았다. 몇주전에 진즉 정리한 커리큘럼이었다. 기본적인 틀은 그랬다. 어떤 마술주문을 선택할지 여부를 고심하는 것. 경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키 위해 안전을 공고히 하는 것. 효율성과 안전. 이 두 개의 틀 내에서 데네브는 제가 할 조치를 사전에 충분히 마련하고는 했다. 호그와트에 동이 틀 시기에 데네브는 일찍이 일어나 제 마음을 덜어놓으려는 듯이 행위를 반복하고는 했다.

입가를 비죽 벌리며 흘려진 웃음이 데네브를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했다. 보기엔 그저 임기응변으로 홀랑 그때그때 내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 같았건만.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당면한 일을 풀어가는 걸 보고 한 학장님은 혀를 찼다더만. 글쎄, 데네브는 무엇이든 짜야 일에 임하는 사람이었다.

꽁꽁 언 빙판길을 보고 그곳이 고요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층층히 두터워진 얼음벽 속에 수만개로 갈라진 물이 움직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데네브는 수갈래의 물결을 가득히 외벽 내부에 가둬놓는 사람과 같았다. 당장 처리해야할 일감. 말 할수 없는 자신의 기억. 터뜨릴 수 없는 상념. 그날 일상에 놓여진 일감부터 속속이 데네브를 이루고 있는 비밀까지도. 그 일을 일일이 표정에 드러냈다간 데네브는 제 일상을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장난끼 없이 감정을 전할 수 있을까? 그 여부를 묻자면 데네브의 머릿속에선 늘 엑스자 표가 아른거렸다. 자신 머릿속에 몇겹으로 쳐둔 방벽을 깨야할테고.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부응했다는 죄책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츠려야 할테다. 머릿속이 아른거렸다...

네빌은 말하지 않았다. 데네브가 지나왔고 자란 시간은 한 토막을 잘라 버려내듯이 고스란히 잘라 덮었다. 선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의식을 마비시키고 행동을 시전자의 뜻대로 조정하는 크루시아스저주와 같이 그랬던 거에요. 크루시아스 저주는 마법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들죠. 저주에 걸린 자는 제가 한 생각이 옳은 생각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치를 못해요. 그저 마비된 감각에 자신을 놓고 뒷배에 선 자가 내린 명대로만 움직이죠. 벨라트릭스가 선배를 움직인 마법은 공포와 두려움이었지만요. 시전자가 펼친 실에 따라 자신 수족을 움직이는 나무 인형마냥 그랬던거에요. 하고.

 

네빌은 그 날 일을 비밀에 부쳤다. 그가 행방불명된 선배를 쫒으며 알아냈던 실상을 덮었다. 물론, 데네브가 불사조기사단에 실상 위해를 가한 일은 없었다. 그랬다면야 데네브는 제 행실을 덮을 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벨라트릭스가 내린 명령을 외면하면서 주문을 지껏 지멋대로 날려대며 지형지물을 깨부쉈다. 벨라트릭스는 말하고는 했다. 호그스미스에서 마법사 모자를 내려놓고 돈을 받는 거리 공연을 하지 그래? 오, 평소엔 틀리는 법이 없는 마법이 사방으로 솟구치는 걸 보고 누구든 호응이 없을까. 평소 그 멍청이들은 좋아하잖아. 제멋대로. 엉망으로. 사방팔방으로 볼성사납게 튄 잉크자국 같은 것들을 말이야. 책상물림만 하는 이, 멍청이가. 블랙가가 낸 수치라면서 깔깔 비웃으며 눈 앞에서 손가락질을 해도 경과는 같았다. 데네브는 자리에 주저 앉은 채로 떨리는 몸깨를 애써 수습하려는 듯이 팔을 있는 힘껏 펼쳐 머리를 감쌌다. 불규칙하게 갈라지면서 흘러든 숨까지 벌벌 떨면서 조롱을 감내할 뿐이었다.

이걸 감출 수 있을까. 데네브가 그들이 한 일을 눈 앞에서 보고도 방조했다는 혐의는 피할 수가 없었다. 공포가 층층히 차오르며 자욱해졌다. 지형지물이 가른 경계를 모호히 흐트리는 안개와 같이 그의 생각을 마비시켰음에도 그 날, 그 때, 그 시간에 데네브가 누구와 있었는지는 숨길 수가 없으리라. 블랙가의 일원으로서 벨라트릭스의 명을 받고 한때 네빌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일을. 자신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억지로나마 호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데네브는 그녀가 향한 감정은 반드시 그녀가 임한 일을 고백하는 것을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틴 커튼이 내린 겹외창에 다가가 그녀는 손수 창을 열었다. 그 날, 지금, 존재한다는 감상을 느끼고 싶어서였으리라. 그녀를 뒤챈 감정을 열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상에야 그가 끌어쥔 채 일평생을 관철해온 걸 외면한 채로 보내올 수는 없었다,네빌이 그녀 손에 꼭 쥐어쥔 비밀은 그녀가 해내야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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