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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래서요. 매그너스 님, 듣고 있어요?”

“아니.”

“어째서! 르네 이야기 들어 줘!”

 

매그너스는 흥미 없다는 듯이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의 등에 꼭 매달려 있던 르네가 연신 칭얼거린다. 긴 머리카락이 들썩이는 움직임을 따라서 검게 출렁거렸다.

 

“르네는 엄청 대단하구 엄청나단 말이에요, 어쩌면 이런 면으로는 매그너스 님보다도 강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매그너스 님은ㅡ그리구 다른 노바들은 늘 전술적으로만 생각하잖아요. 근데, 전술 중에서도 르네가 쓸 수 있는 전술이 있다니까요? 그것도 다른 노바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대단하고 엄청난...”

“나 바빠.”

“르네 말을 들어!!!”

 

무슨 관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군다. 르네는 누가 생각하더라도 아무튼 매그너스에게 무엇을 뽐내고 싶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또 한두 번인 일도 아닌데다가ㅡ대개 르네가 뽐내고 싶어 하는 일은 매그너스에게는 하등 쓸모도 없는 정보이며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머리를 쥐어짜게 될 만큼 골치 아픈 종류였기 때문에, 매그너스는 굳이 그 잡스러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버린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분명히 머리 한 구석에서는 기억해 두고 있다는 것이 매그너스라는 남자의 솔직하지 못한 면이었지만.

그나저나 듣자 하니 이 녀석, 또 뭔가 저지른 모양인데. 분명히 또 골치 아픈 일이다. 매그너스는 그걸 최대한... 최후의 최후까지 무시하고 싶었다. 어차피 르네가 저지르는 대부분의 일은 매그너스의 힘으로 막을 수조차 없기 때문에, 일찍 알아봐야 속이 썩을 뿐이었으니.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르네가 저지르는 대부분의 일은 매그너스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다...

 

“르네는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진짜루요! 저, 분명 이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초월자 정도는 됐을 거예요.”

“...이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어, 으흠, 에헷. 그, 그란디스에서 태어났으면 말이죠.”

“...메이플 월드에도 초월자 있잖아?”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무튼!”

 

아, 젠장. 대답해 버렸다. 매그너스는 순간 자신이 르네의 이 페이스에 말려들었음을 깨달았지만... 늦었다. 사랑하는 상대에 의한 포기를 학습한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진다. 없는 줄 알고 살았던 관용과 자비의 마음이 기분을 쿡쿡 찔러 다듬는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건만, 또 너무 매정해 보였다...

뭐 매그너스는 원래 매정한 사람이므로 고개를 돌려 봐도 르네가 딱히 더 속상할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간에 말려들어 버린 매그너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져 버리고야 말았으므로, 느릿하게 한 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까딱일 수밖에는 없었다.

 

“아무튼 뭐.”

 

그래, 말 해라, 말 해. 네가 말 해 봐야 내 속 썩는 것밖에 더 하겠냐. 바로 그것이 문제였으나 이미 마음이 기운 매그너스가 그런 것을 또 신경 쓰겠는가. 르네의 얼굴이 활짝 웃는 것을 보며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대가는 치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튼, 응, 르네는 정말 대단하단 말이에요. 펜릴은 또 딱히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긴 한데 고 노바는 워낙 꼬장꼬장하니깐, 그렇다고 딱히 르네가 매그너스 님을 엄청나게 돕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이 정도면 분명 적들을 잘 교란한 게 아닐까요? 르네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제 팬클럽도 생겼다구요.”

“...네 인기는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설명 안 해도 되는데. 얘기하고 싶은 게 그거냐?”

“매그너스 님 알아요? 그럼 르네가 판테온에서 싸인회 여는 것도 알아요?”

“그걸 왜 거기서 열어?! 환장하겠네!”

 

판테온이라 하면 적군의 요새 그 자체다. 매그너스가 지배한 헬리시움을 호시탐탐 노리는ㅡ뭐 굳이 따지자면 원래 침략자는 매그너스이므로 왕국을 돌려받으려는 그들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ㅡ노바들이, 어떻게든 간신히 살아남은 채 힘을 키우는... 아니 근데 거기서 왜 싸인회를? 판테온의 노바들이 기어이 돌아 버렸나? 귀여우면 뭐든 좋다는 건가? 귀엽긴 하지만!

그야 르네가 판테온을 제멋대로 누비고 다니는 정도는 알고 있다. 본인이 말하는 것도 말하는 거지만, 르네가 저지르는 일의 규모 정도면 결국 매그너스에게도 보고가 온다. 판테온에서 그, 아이돌 공연 비슷한 게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대체 뭐 하는 거야, 거기서?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심지어 엔젤릭버스터랑 노래로 자웅을 겨뤘다던데? 귀여웠다던데? 그게 뭔데??? 지금 전쟁 중 아니었나???

생각할수록 골이 아프기 때문에 매그너스는 그 이상 사고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르네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작거렸다. 아무튼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녀석이다...

 

“아니 그치만, 딱히 르네가 뭐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치만 지금은 안 해요, 다른 일 하고 있으니까.”

“다른 일?”

 

...분명 판테온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을 텐데.

다시 말하지만, 르네가 저지르는 일의 규모 정도면 매그너스에게도 보고가 온다. 그 말인즉, 현재 르네가 저지르고 있는 무언가는 공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럼......

 

“너 대체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냐?”

 

르네는 입을 딱 다물었다.

자랑은 하고 싶은데 말하지는 못 할 어떤 것...... 매그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이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한두 번이었으면 르네가 입을 다물자마자 그 사고의 종류를 예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매그너스 님 들어보세요, 르네가 하는 일은 결국 헬리시움에 도움이 된다니까요?”

“뭘 들어 봐, 이 자식아!!! 그걸 왜 나한테 자랑해!!!”

“아니! 그야! 그게! 그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럴 수도 있어?! 내 앞에서 다른 남자 꼬신 걸 그렇게 자랑하고 싶냐?!”

 

분노한 매그너스가 르네의 조그만 머리통을 짤짤 흔들어댔다. 그야 하지만, 르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랑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매그너스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상대를 그... 함락시키기는 했으니까.

미인계로.

 

...확실히 미인계도 계책은 계책이다. 다른 노바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대단하고 엄청난 전술인 것도 맞기는 하다. 세상의 그 어느 누가 유령이 된 영웅을 아주 제대로 꼬셔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르네가 아니고서야.

그러니 자랑하고 싶을 만도 했지만, 동시에 자랑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기는 했다... 일의 전말까지 들었다가는 르네의 생사가 남아나지 않았겠지만, 아무튼간 생각해보니 할 말이 아니었다고 뒤늦은 판단을 한 르네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얌전히 매그너스에게 혼나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러니까 그 일련의 사건은 결국 르네가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로’ 상대를 제대로 걸려넘어트렸다는 소리이므로, 또 어떤 대단한ㅡ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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