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해결사 일행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같이 귀걸이를 찾아 나섰다. 세이메이는 부적의 문제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못 하던 상황에서 목표가 생겨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볼 곳은 집이었다. 능숙하게 잠금을 해제하고 들어간 집은 집주인을 닮아 깔끔했다. 원래도 그랬지만 잠시 집을 비웠다고 사람 사는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구역을 나눠 역할분담을 하자 정적이 흐르던 집에 소음이 가득 찼다. 단체로 남의 집을 뒤지는 행동을 누가 보면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었지만, 그들이 어디 남이던가. 제대로 뒷정리를 하고 간다면 집주인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열심히 찾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모인 세 사람은 당황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없어."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귀걸이가 어디에도 없었다. 워낙 정돈이 잘 되어있어 찾아볼 장소가 많지 않았고, 그중 어디에도 귀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없을 수도 있다는 경우도 예상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유추할 장소가 짚이지 않았다. 

"어디에 둔 거지?"
"가게에 둔 건 아닐까요?"
"잃어버린 거 아니냐 해?"

머무는 장소는 적지만 행동반경은 긴토키보다 넓은 사람이었다. 잃어버렸다면 카부키쵸 전체를 뒤져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하지만 시즈카는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아녔다. 더군다나 스승에게 받은 물건이라면 더더욱. 

 

"…잠시만."

말이 없던 긴토키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책은 여기 있는 게 전부던가?"
"거기 뭐라도 있냐 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방을 둘러보고 나온 긴토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이 잠든 상황에서 시즈카라는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 긴토키는 그게 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긴토키는 시즈카와는 소꿉친구라고 불리는 사이이고 그동안 긴토키의 예상은 대부분 맞아떨어졌었다.
 이곳에 없다면 있을 만한 곳은 대충 예상이 갔다.

"아마 자기만 아는 곳에 뒀거나 누구한테 맡겼을 거야. 어디에 뒀는지는 모르겠다만…일단 나눠서 찾아보자."

 

해결사 일행은 세 갈래로 나눠졌다. 각자 시즈카가 갈만한 곳을 찾아가고, 그 길에 지인들을 만나면 귀걸이의 행방을 묻는다는 계획이었다. 얘들을 보내고 자리에 남은 긴토키는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긴토키도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나 빼고 시즈카가 신뢰할만한 사람이면 역시…' 


. . .


"즈라!"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그렇게 급하게 무슨 일인가 긴토키."

'마치 화장실이 급한 얼굴이군.' 카부키쵸의 거리를 숨 가쁘게 뛰어다닌 긴토키는 겨우 제가 찾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양이지사 카츠라 코타로, '도주의 코타로'라고 불리며 지명수배가 되어있는 테러리스트지만 긴토키와 시즈카의 입장으로선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였다.
 세간에 떠도는 그와 달리 긴토키 앞에서의 그는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국물을 맛이 어땠니, 다음번엔 엘리자베스가 추천한 메뉴를 먹도록 하지라는 둥의 소리를 하는 실없기 그지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카츠라 특유의 텐션에 휘말릴 뻔한 긴토키는 목적을 되새기고 숨을 골랐다.

"너 요새 시즈카한테 뭐 받은 거 없냐? 물건이나 먹을 거라던가 아무거나."
"음? 받은 건 없다만. 그러고 보니 요새는 통 보기 어렵더군."

아무래도 정답이 아니었나 보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긴토키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카츠라에게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한 번에 찾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또 누굴 찾아가야 하나.

"붙잡아놓고 미안한데 나 바쁘다. 너도 잡히지나 말고….?"
"…?"

말을 이어 하던 긴토키는 카츠라의 뒤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카츠라는 굳어버린 긴토키에 의아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건 평범한 골목이었다. 다만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통 위에는 흰털의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긴 흰색 털, 목에 감긴 붉은 리본,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쓰레기통 위를 노니는 우아한 몸짓이 놀랍도록 익숙했다. 그 고생을 하며 되찾아준 지 한 달이 겨우 지났건만 금세 또 탈출한 게 틀림없었다. 원래라면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고양이를 본 긴토키는 입을 뻐끔거리며 놀라움을 갖추지 못했다. 
 고양이의 입에 물린 손가락만 한 붉은 무언가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ㅇ,야, 잠깐, 앗!!"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며 고민하는 긴토키를 놀리듯 눈이 마주치자마자 훌쩍 담을 넘어간 고양이에, 긴토키는 욕지거리를 뱉으며 황급하게 고양이를 쫓았다. 옆에 서 있던 카츠라의 목덜미를 붙잡고 끌고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가! 엘리자베스!"
"잠깐 나 좀 도와주라 즈라!! 저 고양이 좀 잡자!!"
 
자세한 사정까지 설명하기엔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불친절한 설명과 무턱대고 요구한 부탁에도 카츠라는 금세 제 페이스를 되찾았다. 같이 지낸 세월은 세월인지 왁왁거리며 츳코미가 오가는 중에도 두 사람은 타이밍 좋게 고양이를 몰아갔다.

"바보야 너가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건데!!"
"내가 왼쪽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왜 그렇게 왼쪽에 집착하는 건데?! 너 좌수납이냐?"
"무릇 무사라면 당연히 트렁크 파-"
"안 궁금하거든!! 것보다 무사랑 무슨 상관인데 그게!!"

합이 안 맞을 때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 겨우 포위 비슷한 형태를 갖췄다. 골목 구석에 몰려 주위를 살피는 고양이의 모습이 꽤 애처롭긴 했지만,  이 모습에 넘어가면 제 옆에 있는 바보처럼 얼굴이 발톱으로 엉망이 될 테였다. 긴토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카츠라와 눈치를 보다 동시에 달려들었다.

"야 찢어진다 찢어진다!! 이거만 뱉으면 놔준다고 요녀석아!!"

안타깝게도 긴토키의 외침이 고양이한테 전달될 리가 없었다. 카츠라도 달려들었지만 말랑한 육구가 아닌 날카로운 발톱과 잔뜩 스킨쉽을 나눴을 뿐이다. 두 남자의 외침과 고양이의 비명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하악질을 하느라 입에 물은 걸 뱉어냈다. 하얀 털을 날리며 곁을 떠난 고양이에 골목에 남은 건 만신창이가 된 남자 둘 뿐이었다.

부적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래도 되찾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꽉 쥔 주먹을 펼친 긴토키는 붉은 무언가를 보고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설마하면서 살핀 붉은색의 종이를 펼치자 거기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당일대출]♡$소액 고액 긴급대출$♡※


"………"
"이야 찾아서 다행이군. 긴토키."

제자리에 굳어서는 말이 없는 긴토키가 안심하는 중이라고 생각한 건지 카츠라는 뿌듯한 표정과 함께 긴토키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수고는 나중에 갚으라며 옷 정리를 하는 카츠라에도 긴토키는 죽은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종이를 내려다 봤다.
손안에서 처참하게 구겨지는 종이와 함께 하얗게 물든 긴토키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마에 솟은 혈관과 함께 긴토키는 울고 싶은 심정을 한마디로 축약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장난해?!?!?!?!?!?!?!?"


. . .


고작 길거리에 널린 대출명함을 뺏으려고 고생한 긴토키에게 남은 건 상처 가득한 양팔, 고양이 털로 엉망이 된 상의,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이었다. 

의욕을 상실할 정도로 단기간에 지친 건 오랜만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무소로 오는 와중에 시즈카의 지인들을 몇몇 마주쳤지만 모두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는 대답과 함께 본 지 오래됐다는 소리가 전부였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못 하던 어릴 적과 변한 게 없지 않은가. 답답한 마음에 잠들어있는 시즈카를 흔들어 깨워 대답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쯧, 술 한잔 가지고 넘어갈까보냐."

이번에야말로 뼛속까지 탈탈 털어먹을 테다. 사람을 이만큼이나 부려먹었으니 일어난다면 그 값은 톡톡히 치를 생각이었다.  궁시렁거리며 계단을 오른 긴토키는 아무도 없는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무소로 모이기로 했건만 아무래도 가장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긴토키는 습관적으로 책상에 놓인 점프를 집어 들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생각에 점프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즈카라면 어디에 보관했을까? 누구한테 맡겼을까? 저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더 있던가? 혹시 저한테 숨기려고 일부러 제가 모르는 장소에 뒀다면? 하나하나 떠오른 가능성을 지워가며 유추하던 긴토키는 어느 순간 점프의 페이지를 넘기는 걸 그만뒀다.

시즈카가 가장 믿는 사람은 자신이다.

그리고 시즈카가 아끼는 사람도 자신 일 테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긴토키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꼭 지금의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신파치와 카구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소로 돌아왔다. 다들 별 수확이 없던건지 제가 보고 들은 걸 말하며 의견을 나누다 약간의 불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말싸움하며 문을 여는 그들을 긴토키는 여전히 느긋한 태도로 맞이했다.
책상 위에 놓인 시계 뒤에는 자그마한 상자가 놓여있었다.

"긴쨩, 그건 뭐냐 해?"
"부적 찾았어."
"네? 어디서요?"

두 손바닥보다 큰 상자는 검은색의 흔히 볼 수 있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장식도 잠금도 없는 단순한 상자를 보던 긴토키는 별거 아닌 듯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이들은 진짜인가 싶어 상자 앞으로 몰려와서는 긴토키를 추궁했다.

"우리 집에 있더라. 여기 책상 아래."
"바로 곁에 있던 거네요."
"우리는 괜히 헛수고한 거지."

한 방 먹었어. 덤덤히 말하며 긴토키는 상자를 열었다.
 
내용물은 많지 않았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붉은색의 부적 귀걸이, 그리고 오래됐는지 조금은 닳아버린 책 한 권이 전부였다. 찾아다닌 노력에 비해 조촐한 내용물이었지만 아이들은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즈카가 자신의 집 다음으로 오래 머무는 곳은 가계를 제외하고 꼽자면 단연 해결사 사무소였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아 챈건지. 기쁜 기색인 아이들과 달리 긴토키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멍한 얼굴로 썩은동태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당장 누님한테 가자 해!"
"이제 금방 일어나실 거야."
"그래. 가자."

긴토키는 품에 귀걸이와 책을 챙기고는 사무소를 나섰다. 몇 시간 만에 다시 찾은 음양사 가문은 이전과 달리 쉽게 출입할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집채 만한 도깨비 식신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해결사 일행을 맞이한 건 세이메이였다.

"마침 때맞춰 왔군."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안내하는 세이메이를 따라가자 아까와 같은 방이 나왔다. 늦은 시간에 바깥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었고 방안에는 붉은빛이 가득 차 있었다. 조용한 방안에서는 익숙한 인영이 앉아있었다. 늘 보던 웃음을 머금은 채로, 나긋한 말투와 목소리도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좋은 아침."
"시즈카씨?"

지금 시간은 오전도 아닌 오후였다. 여전히 뜬금없고 태연한 인사에 신파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카구라는 누님을 외치며 시즈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카구라의 투정을 받아주며 웃던 시즈카는 문 앞에 선 긴토키와 마주했다.

"잠 한 번 오래 자네. 자는 김에 더 자고 오지 그랬냐."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

뚱하니 내려다보는 긴토키를 올려다보며 시즈카는 웃었다. 몇 시간 만에 보는 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웃음이었다.

"그러면 긴토키가 외로울 거 같아서 안 하려고."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