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죽었다.
꿈이란 게 다 그렇듯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주위에 홀로 남았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즈카는 눈앞의 시체의 몸을 흔들었다. 어느새 발 앞에 놓인 시체는 늘어났다. 한 명, 두 명, 수십 명, 수백 명, 익숙한 형체에도 불구하고 전부 눈을 감고 있어 망연히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러 명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글바글 모여서는 자신을 집어삼키려 끊임없이 달아붙어 왔다,
꿈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들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잠잠해졌다. 허구 속에서라도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것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과 다를게 뭐란 말인가. 시즈카는 땀으로 흥건한 목덜미를 손등으로 훔쳤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달라붙어 오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아 머리맡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영 느낌이 불안했다.
. . .
"어."
"아."
걱정이 되어 가게의 문도 열지 않고 해결사로 향하던 발걸음은 의외의 곳에서 멈추었다. 찾아가려던 사람을 으슥한 골목, 전봇대 위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긴토키는 전봇대에서 내려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위법 행위는 안 하면 좋을 텐데."
"훔쳐본 거 아니 거든?“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나오기 힘들 거야, 긴토키.“
”아니라고 말했쟎냐! 무거운 건 나에 대한 너의 그 선입견이겠지!“
긴토키는 남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소리는 하지 말라며 뒷목을 긁적였다. 전봇대 위에서 남의 집 담장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충분히 수상해 보일 수 있었고, 시즈카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그 의심이 어째서 걱정이 담긴 한탄으로 돌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법 행위를 하더라도 인간의 도리는 지켰으면 한다는 꽤 느슨하고 엉뚱한 가치관을 가진 시즈카였기에, 긴토키는 미묘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금의 말도 상대방이 위법 행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단호함보다는 구치소에 갇혀서 좋을 거 없다는 뉘앙스가 더 강했다. 원래 자기 사람한테는 한없이 풀어지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오면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라 늘 미묘한 표정이 되어버리기 일상이었다.
“…뭐, 마침 잘 됐네.”
깊이 생각하는 걸 관둔 긴토키는 이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지금 같은 시간에 가게의 문도 열지 않고 사무소네 방향으로 가는 걸 보면 시즈카도 오늘은 쉬는 날이라는 소리였다. 자신 같았으면 휴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시즈카라면 흔쾌히 도와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 좀 도와줘.”
긴토키가 내민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어설픈 그림이지만 붉은 리본에 새하얀 털, 특징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귀여운 생김새의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로라는 걸 이해하자 아까 전의 긴토키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꿈자리가 좋지 않아 걱정했지만, 이런 날에는 자신의 직감을 따르는 게 좋다는 걸 이미 수십번이나 겪은 시즈카였기에 고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다 짚이는 곳이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 .
“진짜 여기 맞아?”
조금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신사였다. 아직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 건지 딱히 더럽다거나 버려졌다고 생각될 수준은 아녔다. 시즈카의 직감과 운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절로 이런 곳에 정말 고양이가 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나야 모르지.”
“하긴, 이제부터 찾아야겠지.”
단순한 직감과 운으로 여기까지 안내한 건 시즈카였으니 이곳을 뒤지는 건 긴토키의 일이었다. 입구 양쪽에 늘어선 여우 석상들에 자연스레 시즈카의 허리춤에 있는 여우 가면으로 시선이 향했다. 언제봐도 시즈카는 이런 곳이랑 잘 어울린다니까.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칭찬을 한 것도 아닌 단순한 감상이었다.
시즈카는 신사를 둘러보고는 느껴지는 불안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긴토키였지만 딱히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은 괜찮을 테였다. 괜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더니, 그런 말을 꺼내 의도치 않게 겁먹게 하는 건 어릴 적으로 충분했다.
“애들은?”
“다른 의뢰.”
바스락, 바스락. 구역을 나눠 풀숲을 뒤지자 말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풀숲은 벌레가 나와 농담으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특히 더 보기 싫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찾아 돌아가는 게 나았다. 나무 위부터, 석상의 뒷부분, 신사의 마루 밑까지 꼼꼼히 뒤졌지만, 고양이의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흰털이라면 어딘가의 누구도 지니고 있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는 흰털보다는 은빛 털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한낮의 햇살이 구름에 가려지자 가뜩이나 스산한 분위기에 동조하듯이 소름이 돋아와 긴토키는 괜히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소리에, 초여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온도가 낮아진 착각이 일었다,
“…있잖아, 긴토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줄래.”
타이밍이 무섭게 목소리를 내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괜히 불안감이 엄습했다. 시즈카가 무슨 말을 꺼낼지는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이런 타이밍에 꺼낸 말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칼같이 거절하는 긴토키에 시즈카는 잠시 할 말을 찾아 망설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타이밍에 자신이 말을 꺼내는 경우는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흔치 않았다.
“그치만….”
“아아-아무것도 안 들려, 긴상은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그럼 저거 좀 봐줘.”
아무리 시즈카라도 붉은 리본에, 흰색 털을 가진 종이에 그려진 고양이와 똑 닮은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에는 말을 안 꺼낼 수가 없었다. 고양이의 울음과 함께 목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에 긴토키는 고개를 들고 잠시 어색하게 고양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긴토키를 놀리듯이 꼬리를 살랑 흔들어본 고양이는 우아하게 담장 위를 걸어갔다.
’-에옹~‘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긴토키는 움찔, 손을 움직였다. 애타는 속을 숨기고 조심스레 다가가자 고양이는 긴토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을 생각인지 얌전히 자신의 털을 고르는 게 아닌가. ’착하지, 얌전히 있어라, 착하지….‘ 기회라고 생각한 긴토키는 숨을 들이켜고는 거리를 가까이 좁혔다.
“역시나냐!”
긴토키의 품에 들어오기 전에 후다닥 빠져나가는 고양이에 긴토키는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이렇게 순순히 잡혀줄 거였으면 애초에 가출도 안 했겠지! 톡, 톡. 가볍게 석상들 위를 뛰어다니며 긴토키의 손길을 피하는 고양이에 짧은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풀숲을 헤치고 신사 바닥으로 몇 번 넘어질 뻔한 과정을 거치고 포위 비슷한 형태가 됐을 때는 이미 긴토키의 꼴이 엉망이었다. 좁은 곳에서 용케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고양이도 신기했지만 가는 길목마다 막는 시즈카가 없었으면 진작 신사를 벗어났으리라.
잠시 뛰었다고 흐트러진 숨을 고르자 고양이의 시선이 갈팡질팡하다 이내 경계하듯 털을 부풀렸다. 역시 긴토키와 모양새가 닮았다는 상대방이 들었으면 실례가 되었을 법한 생각을 하자, 고양이는 발걸음을 돌렸다. 긴토키를 빤히 노려보면서 궁둥이를 흔드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보여 급하게 발걸음을 떼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야, 이, 요 녀석이!”
“긴토키, 움직이지마!”
언제 순했다는 듯이 긴토키에게 뛰어들어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에 당황한 쪽은 시즈카였다. 저렇게 붙잡는다고 고양이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억지로 잡으려고 하면 긴토키의 팔에 상처만 늘어날 게 분명했다. 할퀴어지지 않도록 기모노의 소매로 손을 감싸 어떻게든 감싸 안으려고 하는 시즈카에, 한 마리와 한 명이 협조해주긴 어려워 보였다.
몸이 기울면서 석상에 발이 걸리자 시야가 빙글 도는 착각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었는지 느려지는 시야와 자신을 밀치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꼬옥 눈을 감아버렸다. 석상과 나무에 몸이 부딪히는 충격 다음으로 울리는 파열음에 긴토키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아….”
부딪힌 등은 얼얼하게 아려왔고 충격에 흔들린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자신들의 위에 한가득이었다. 넘어지는 순간 긴토키를 밀치고 고양이를 안아 든 시즈카와 달리 자신과 같이 넘어진 시즈카를 감싸느라 앞뒤로 부딪힌 충격은 고스란히 긴토키의 몫이었다.
“…엉망이네.”
“다친 데는?”
“없어. 이 아이도 괜찮은 거 같긴 한데….”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소리인가 싶었더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발치에 있는 이나리 석상이 떨어졌는지 바닥에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고양이가 진정할 수 있도록 똑바로 안아 든 시즈카가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긴토키도 겨우 몸을 일으켰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일어나서 살펴본 관경은 더욱 처참했다.
“긴토키야말로 등은 괜찮아?”
“어, 기껏해야 멍이나 들고 말겠지. 아따따따, 엄청 쓰리네.”
괜찮다면서 슬쩍 등을 만져본 긴토키는 찌릿하게 올라오는 아픔에 인상을 찌푸렸다. 넘어지면서 화려하게 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등의 아픔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더욱더 쓰렸다. 사람이 없는 신사라고 해도 관리자는 있을 테였고, 다른 말로는 이 부서진 석상값을 물어줘야 한다는 소리였다. 따지자면 이 고양이 탓이었지만,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찾아온 어린아이에게 물어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실 공사 아냐? 확 이쪽에서 치료비 청구할까 보다.”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쭈그려 앉아 석상 조각을 살피다 고개를 올려다본 시즈카의 표정이 어딘가 미묘했다. 멀뚱히 눈을 깜빡거리길 잠시 금세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괜찮다고 답하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이내 석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배상하려면 얼마나 들려나. 그대로 모르는 척하고 도망가지 않은 건 옆에 있는 시즈카가 자신과 달리 양심과 돈이 넉넉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관리자분은 내가 만나볼게. 긴토키는 의뢰인부터 만나줄래?”
“오, 나야 고맙지.”
애초에 겨우 부딪힌 충격으로 떨어질 정도였으면 이 신사의 석상이 엄청 오래되어 낡았다는 소리였지만 그런 타협은 시즈카가 알아서 할 테였다. 귓가의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답하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결 가벼워진 걱정에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꼈다.
“요 녀석 하나 잡자고 무슨 고생인지….”
고양이 간식이라도 사 올 걸 그랬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시즈카를 알 리가 없는 긴토키는 그저 한숨만 뱉을 뿐이었다. 시즈카의 품 안에서 언제 그랬다는 듯이 그릉거리는 고양이가 원망스러웠다.
. . .
고양이와 이나리 석상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등에 생겼던 멍은 이미 이틀 전에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끔하게 나은 상태였다.
“이야기는 좋게 끝냈어.”
“엉? …아, 그 석상?”
상처와 함께 말끔히 잊어먹고 있었는지 긴토키는 잠시 이야기의 주제를 따라가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뭐, 시즈카에게 맡긴 일은 대부분 조용하게 처리되는 편이었다. 그 점이 믿음직한 거지만. 시즈카가 사 온 찹쌀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긴토키는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향했다.
점심 대신으로 하기에는 집에 있는 성장기 야토가 인정하지 못한다고 할 게 분명했기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리 집 가계는 식비로 이미 한계란 말이지. 시즈카가 문이 닳도록 사날라도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수준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눈을 반짝이면서 먹는 카구라가 마냥 귀여운지 흐뭇한 눈빛으로 보는 시즈카를 보던 긴토키는 꿀꺽, 하고 입에 든 걸 삼켰다.
“늘 고마워.”
“별말씀을. 정 고마우면 오늘은 점심이라도 내는 게 어때?”
’어제 빠칭코에서 크게 땄나 봐?‘ 싱긋이 웃으며 말하는 시즈카에 긴토키는 저절로 목덜미가 서늘해지며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젠장! 오늘 밤은 거하게 마실 생각이었는데. 글렀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지갑이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환각이 보였다. 귀신같이 알아채서는 눈치를 주는 시즈카와 도끼눈을 하고 째려보는 두 사람에 긴토키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아, 알겠다고!”
하세가와 씨와의 약속은 저 성장기 두 사람의 배 속으로 사라지겠구나.
“귀신을 속이지 널 속이겠냐.”
“…….”
“아니, 그냥 한 말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시즈카는 그저 미소지었다. 굳이 말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자신이 먼저 경고하는 긴토키를 보면 어릴 적의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도 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정확히는 경험으로 축적된 행동 패턴에 가까웠지만.
“암튼, 잘 다녀와.”
“뭐야, 너는 안 가게?”
“졸려서, 밥 먹고 오는 동안 조금 자게.”
“그러던가.”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고 문을 나서려던 긴토키는 자신을 바라보는 카구라와 신파치의 눈을 무시하고 현관까지 발걸음을 향했다,
“…….”
“아, 올 때 사다하루 간식 좀 사다 줄래요?”
“…….”
“…….”
저벅저벅저벅, 쿵쿵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다시 거실로 돌아온 긴토키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긴토키가 나가는 걸 보며 심부름까지 부탁한 시즈카는 무슨 일인가 싶어 멀뚱히 긴토키를 쳐다봤다. 꺼내든 점프에 시선을 고정한 긴토키는 그대로 시즈카의 머리를 눌러 소파에 눕혔다.
“…긴토키…?”
“지금 가 봤자 브레이크 타임일 거 아니냐.”
“긴쨩은 점심 먹고 나면 분명 거지가 될 거다, 해. ”
“들었지? 사다하루 간식은 네가 계산해.”
’긴상은 요것들 때문에 땡전 한 푼 없을 예정이걸랑.’ 이어진 긴토키의 말에 시즈카는 조용히 웃음을 머금었다. 오늘따라 상냥하네. 이렇게 말해놓고 점심 계산을 시즈카에게 떠넘길 생각이 아예 없진 않은 긴토키였지만, 뭐 어떠한가. 시즈카는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며 편하게 자리를 잡고는 몰려오는 나른함에 눈을 감았다.
“…그럼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
졸음보다는 나른함이 늘어 종일 몸이 무거웠고 몸의 힘을 빼자 저절로 의식은 멀어졌다.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가슴과 내뱉는 숨에 긴토키는 고개를 들어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허벅지에 느껴지는 무게에 시즈카가 정말로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는 걸 실감했다. 낮잠을 자주 자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너 요새 많이 자는 거 아냐? 피곤해?”
질문을 던져도 시즈카는 이미 잠들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아프다고 해도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길 두 사람이었기에 유심히 지켜보는 거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요새는 기억에 남을 큰일도 없었고, 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였다. 더위를 먹었다기에는 초여름이라 덥다고는 할 수 없었고, 애초에 시즈카는 더위를 타는 체질도 아니었다. 결국 그냥 잠이 늘은 거라고 생각한 긴토키는 잠든 시즈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잘 자.”
귓가의 부적이 손가락에 걸리는 감촉과 함께 긴토키는 읽고 있던 점프에 집중했다. 나른한 정오에 사무소로 들어오는 햇볕은 따뜻했고 모두가 소파에 앉아 잠든 시즈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때의 긴토키는 아직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