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세이메이는 대문을 부수고 쳐들어오는 긴토키 일행에 예상했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케츠노의 일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운 방문에 제 역할에 충실한 식신들은 긴토키네를 막아섰다.
“네놈들은 누구냐!”
“니들한텐 볼일 없어-!!!”
그리고 정확히 3초 후 긴토키와 카구라의 발길질에 맥없이 쓰러졌다. 당장 세이메이를 불러오라며 외치는 긴토키의 품에는 시즈카가 안겨있었다. 문을 부순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건지 이마에서 흐르는 피에 일행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으아아-!!”
”긴쨩?! 어떡하냐 해?!!?“
”이 인간들아!!!! 제가 진정하랬잖아요!!!!!!!“
‘그러게 안아 들고 발차기는 왜 해요, 발차기를!!!’ 남의 집안에 소란스럽게 침입해놓고는 의사부터 불러오라며 우왕좌왕하는 긴토키를 지켜보던 세이메이는 탁. 하고는 부채를 접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은 식신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진정하거라.“
긴토키는 허공에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에도 놀라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찾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 시선이 집중되자 세이메이는 방으로 따라오라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식신을 시켜 의사를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내되어 도착한 곳은 이전에도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눈앞의 여자가 긴토키의 품에서 미동조차 없다는 것이겠지. 소중한 걸 다루듯이 조심스러운 태도에 세이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짧은 진료에 일행들은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의 이상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는 이곳을 방문한 진짜 용건을 들을 차례였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리냐?”
“그래. 의사 말로는 그냥 잠든 거라는데 안 일어나.”
언질도 없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의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그다음으로 찾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는 단지 잠이 많아진 거로만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상을 파악한 긴토키가 서둘러 병원을 찾아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방금 전 진료한 의사조차 상처를 제외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대답했으니 말이다. 차분하게 나누는 대화와 달리 주먹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물들었다.
지켜보던 카구라와 신파치도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며칠간 보지 못했던 시즈카를 이런 모습으로 마주했으니 자연스레 걱정과 불안이 앞섰다.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온 장소가 이곳, 유명한 음양사 가문이었다.
세이메이라 불린 남자는 막부를 섬기는 가문의 당주. 다른 이들이라면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위치의 사람이었으나, 자신의 소중한 여동생을 도와준 일행에게 이 정도의 보답은 흔쾌히 해줄 수 있었다.
“흠, 안 일어난 지 얼마 정도 지난 거지?”
“8시간.”
“...아니, 저기, 긴상?”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건 신파치였다. 땀을 삐질 흘리는 신파치와 달리 긴토키는 매우 진지한 얼굴이었다.
“8시간이면 평범하게 숙면하는 건데요?”
하루도 이틀도 아닌 8시간은 사람의 평균 수면시간이었다. 당연하고 평범한 사실을 지적하자 주위의 일행들이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아까 전의 싸움으로 충격받아서 못 일어나는 거 아녜요?!’ 제법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이미 그 가설을 반쯤 확신한 듯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보는 신파치에도 불구하고 긴토키는 진지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깨워도 안 일어난다고.”
시즈카는 원래 잠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낮잠은커녕 최소한의 수면만 취하던 사람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이 소란에도 안 일어났어. 앞으로 언제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
긴토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세이메이를 향했다. 몰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세이메이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렇게 쳐다봐도 방법이 나오는 건 아니다.”
‘짚이는 거라도 없나?’ 이어지는 말에 긴토키를 비롯한 세 사람은 과거의 일을 되짚어 올라가기 시작한 건지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한 달 전의 일은 상세하게 떠오르기 어려운 터라 방에는 잠시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건 많았지만 전부 자신들이 관련됐을 뿐, 시즈카가 관련되었다기엔 애매한 일들 뿐이었다. 당사자에게 묻는 편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혹시 신산가?”
사건사고는 많았지만, 귀신이나 영능력 관련이라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긴가민가한 말투에 잠시 고민하는 듯이 말이 없던 세이메이는 기억이 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여우 석상이라면 알고 있다.”
에도에 뿌려놓은 수많은 식신들은 세이메이의 눈과 귀를 대신해주었다. 식신들을 통해 이변을 감지하고 에도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세이메이였으니, 당연히 그 일도 알고 있었다. 그 석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구되었지만 자세한 이막은 모르는 일이었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그 석상이 부서졌을 때 같이 있었던 게 틀림없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긴토키의 눈빛이 불안해졌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한 일이라는 소리였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긴토키의 모습을 지켜본 세이메이는 마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 그게 원인이지 싶다. 그럼...봉인, 아니 그것보단 영물이려나.”
“어이,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설명 좀 해달라고.”
“아, 잊고 있었군.”
짚이는 요소들을 나열하는 세이메이였지만 알아들을 리가 전무한 긴토키 일행에 잠시 시즈카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자가 알아서 설명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세이메이는 불만스러운 눈빛의 긴토키 일행에 설명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신사의 석상을 부순 탓이다.”
예상은 했지만, 확답을 들으니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토키는 이야기를 진행하라는 듯이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신을 탓하고 있는 거라면 잘못 짚은 거다.”
덤덤한 긴토키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세이메이는 이상한 생각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긴토키는 물론 카구라와 신파치도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번만 봐달라고 빌어볼 생각은 있었으나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 이쪽의 잘못이었을 거라고 반쯤 확신 했으니까.
“본래 영관련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경우 신의 소행인 줄 알지만, 보통은 그 반대다.”
‘대부분은 잡귀가 들러붙어 괴롭히는 거지. 신을 모시면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신을 받아들이는 거다.' 주술과 영관련 분야에서 긴토키가 아는 사람이라면 세이메이를 제외하고도 무녀인 아네모네 자매가 있었지만, 그 카뱌레 무녀들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앞의 남자는 이 나라에서 주술 쪽에서는 최강자였으니까. 짧은 설명에 긴토키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분이 대신해 지켜주고 있는 거다.”
세이메이의 시야가 시즈카의 발치를 향했다. 작은 여우의 모습을 하고있는 영이 시즈카의 곁에 머물러있었다. 자신의 식신인 구미호보다 급이 높은, 신사의 주인이. 신사를 떠날 정도로 어지간히 이 자가 마음에 든 모양이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옆에 있다고 의식하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슬쩍 시선으로부터 자리를 옮기던 세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이메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곳으로.
자칫 무례하다고도 느낄 수 있는 세 사람의 행동에도 세이메이는 별로 나무라지 않았다. 악의가 있다면 몰라도 이 신은 우호적이었으니, 이곳에 있는 자들을 헤칠 가능성은 적었다. 석상을 부순 무뢰한 자를 앞에 두고도 기분이 좋아 보였으니까.
"나중에 감사드려라."
"공물이라도 바치라 이건가? 쩨쩨하시구만."
"네놈은 그렇게 살다 정말 천벌을 받을 거다."
"그냥 해본 말일 거에요. 정성을 다해서 기도할 테니까요."
어색하게 웃으며 사이를 막아선 신파치는 카구라와 귓속말을 나누었다. 여우가 뭘 좋아하냐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들이 저 남자보다 훨 났다고 생각되었다.
석상, 신사, 수면, 악귀. 떠오르는 요소들을 나열한 세이메이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거지? 악귀가 씌인것도 아니었고, 몸에 이상이 있는것도 아니 었다.
이자의 체질로는 오히려 지금 몸 상태는 최상에 가까울 텐데.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저 작은 몸에 담겼다고는 믿기 힘든 영력이. 보고 있자면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어 숨이 막히는 거 같았다.
정말이지, 아까운 인재군.
하지만 저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분명 그 기운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테였다. 누워있는 인영을 살피길 잠시, 가늘게 뜬 눈이 원인을 찾았다는 듯 한곳에 머물렀다.
“부적은 어디 둔 거지?”
“무슨 소리야, 늘 있던...어?”
내려다보던 눈이 커지고 자연스레 입에서는 바보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꿎은 귓불을 만지작 거렸음에도 익숙한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제야 긴토키는 사태를 파악했다.
늘 시즈카의 귀에 달려있던 부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