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른 특별한 힘이 담긴 행동도, 그리 어려운 행동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어찌 보면 당연한 몸짓이었다. 허나 그 작은 몸짓이 담는 의미이자 현상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의 잠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며, 평범하지 않기에 쉽게 깨어날 수도 없다. 허나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오직 500년간의 잠이자 봉인에서 깨어난 신의 총아의 모습이다.
"......"
완전히 떠지지 않은 눈꺼풀. 그 작은 틈으로 사이로 몇 백 년이나 빛을 보지 못한 눈동자가 새어 들어간 햇빛으로 옅게 빛이 난다. 곧 그리 길지 않은 속눈썹이 아기새의 날갯짓보다 하찮게 흔들리더니, 아니 떨리더니 눈꺼풀이 완전히 열린다. 그러자 보인 투명한 황금색의 눈동자에 숨을 멈춘다. 마치 완연한 신의 사랑을 받는다 란 증거를 뽐내듯이 반짝였다. 자신의 오른쪽 눈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황금색이었다.
하지만 호무라는 그것이 햇살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의 총아의 시선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자 아름다운 황금색이 사라진다. 대신 조금은 옅은 갈색의 눈동자가 제 색을 보여준다. 그 또한 평범한 색이었다. 한 순간의, 찰나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눈동자는 흔하다. 그럼에도 투명하다는 감상이 그의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직후라서 일까. 여성이 무어라 말할 기색도,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초점이 맞는지 모를 눈동자를 지닌 채 멍하니 있는 모습은 어느 의미 아까의 잠든 모습과 별 다르게 없다. 존재함에도, 살아있음에도 그 안에 생기와 의지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어디선가, 언젠가 보았던... 아니, 느낀 적이 있는 모습이다.
라고 자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차가운 쇠사슬의 무겁고도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가깝고도 먼 이명이 퍼진다. 제 안의 사고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피어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가 먼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놓는다. 어둠과 희미한 횃불의 빛, 냉기만이 가득하던 곳. 나쁜 기억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억이 있지 못한 곳. 그리고 그 기억을 덮으려는 듯이 따스한 온기가 내려온다. 낯선 태양의 아래에서 만난 하나뿐인 빛. 따스함과 욕심과 사랑을 가르쳐 주었던 존재와의 시간은 행복하고도 아련하다. 허나 결국 더럽고도 이기적인 자들로 인해 헤어진 옛 연인과 그에 따른 괴로움이 덮쳐온다. 곧 이어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순간 꽃의 향기가 그를 깨운다. 그 향기에 이끌려 눈앞을 보자 거기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
여전히 말할 기색도, 움직이려는 기색도 없다. 하지만 연갈색의 눈동자는 분명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초점을 찾은 두 눈동자는 확실하게 자신을 비추면서 생기를 담고 있다. 희미하나 의지 또한 깃들어 있다. 일순 무엇 하나 모르는 순진한 눈빛일거라 여겼다. 결국 무엇도 모르는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랑받는 존재라 여겼다. 호무라는 제안의 감정에 휘둘려 눈앞의 신의 사랑을 받는 총아가 슬픔 하나 없다고 여겼다.
허나 곧 그 생각도, 그의 안에서 조용하고도 거칠게 휘몰아치던 감정들이 날려버려진다. 자신에게 향한 미소 하나로 말이다.
무어라 해야 할지 호무라는 알 수 없었다. 그 미소는 해와 같이 찬란한 미소가 아니다. 비와 같이 촉촉한 미소도 아니다. 달과도 같이 신비한 미소 또한 아니다. 그저 지독할 정도로 잔잔하고도 한 없이 부드러운 미소와 눈동자다. 어떠한 책망이나 두려움, 시기, 멸시도 없는 눈동자가 햇살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미소와 눈동자와 어울리는 꽃향기가 자신을 감싼다. 이어 쇠사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때의 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눈앞의 여성의 것인지에 대해 호무라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정말 무어라 해야 할지, 반응해야 할지 그는 알 수가 없었을 뿐이다.
"......"
압도적인 힘을 가진 투신태자가 무엇 하나 못하도록 만든 존재는 그의 속을 모른 채 다시 눈꺼풀을 천천히 감는다. 눈을 뜨기 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희미한 꽃향기에 감싸인 채 잠에 든다. 다만 다르다면 언제부터인지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가 정리해 준 앞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고 희미한 숨소리가 귓가에 닿아온다. 제대로 살아 잠든 한 명의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
그 광경에 호무라는 겨우 정신을 되찾는다. 몸과 마음이 압도당한 듯하면서도 모든 걸 감싸준 듯한 감각이 뒤섞인다. 분명 눈앞의 그녀는 평범해 보이는데도 미소 하나로 제압당해버렸다. 하지만 불쾌함이란 느낌은 하나도 없어 신기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름 모를 기분이 제 입꼬리를 움직이려는 것을 투신태자는 참아낸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에 일어날 그녀를 위해 무언가라도 가져오기 위해서.
허나 다시 돌아온 방안에는 진정한 잠에 들었던 신의 총아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