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유기 외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읽기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호무라는 바로 눈에 들어온 존재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건물의 소재 자체는 궁전의 것들과 별 차이가 없다. 허나 관리가 없었기 때문인지 곳곳이 노쇠한 흔적이 보였다. 가구는 혼자만을 위한 것치고는 제법 있었다. 비록 그 대부분이 녹슬고도 부서진 흔적이 있는 짐짝과 쓰레기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구석에 쌓여있어 어느정도 불필요한 공간차지가 덜한 편이었다라는 거다. 허나 그것들로 인해 더더욱 누군가의 방보다는 창고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감출 수 없었다.
그외에 멀쩡한 가구는 침대와 그 옆의 작은 수납장과 의자 하나 뿐이었다. 창고와도 다름없는 공간에 멀쩡한 가구가 3개뿐이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생활감이란 것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취향이나 좋아하는 거 하나 베어있지 않았다. 차라리 아주 희미한 꽃 내음이 유일한 공간의 주인을 표현했다고 하는게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허나 정작 방 안의 주인은 그러한 방도, 누군가의 질투나 멸시도, 꽃의 내음 하나 모른 채다.
"이 여자가 신의 총아인가"
평범하다. 이내 침대랄까, 등받이를 기울인 기다란 의자를 침대로 쓴 듯한 가구 가까이 다가간 그. 현 투신태자는 잠든 총아를 보며 심플한 감상을 내린다. 곱슬 하나 없는 듯한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 하얀 피부, 뚜렷하기보단 적당히 오목한 이목구비.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을 수 있으나 눈앞의 여성은 적어도 절세미녀라고 할 수 있는 외형은 아니었다. 미녀라고 못하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추하다는 경우도 아니다. 그저 평범했다.
그렇기에 위화감이 들었다. 그런 여성의 두 손목에 채워진 차갑고도 무거울 검은 쇠로 만들어진 수갑이. 평범하기에 독기도, 강한 힘도, 특별함도 없는 듯한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피부가 하얗기에 수갑의 검은 광택이 더욱 눈에 띈다. 근육도 붙지 않은 듯한 여성의 팔에는 버거운 물건은 분명 500년간 자리잡고 있었을 터다.
"얼굴은 처음 보는군."
과거, 호무라는 그녀를 본 적은 있다. 거기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 번이고 금선의 일행과 함께 있던 그녀를 보았던 그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매번 얼굴만큼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의 계략인 것마냥 절묘한 타이밍이나 각도로 신의 총아는 신비로움으로 감춰져 버렸었다. 핑계라기엔 우습지만 그러한 이유로 50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뵙게 된, 얼굴을 보게 된 거다. 허나 막상 겨우 제대로 보게 된 신의 총아는 평범했다. 신들이란 자들이 시기하여 죄인에게나 주던 수갑을 채울만한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햇살 좋은 하늘 아래서 평온한 낮잠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라면 모를까, 신에게 사랑을 받아 되살아났다는 존재라기엔 믿기 힘들었다.
툭, 무언가가 바닥에 낙하하여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린다. 호무라는 그게 곧 총아의 몸 위에 흩뿌려진 작은 흰색의 꽃들 중 하나임을 알아챈다. 조심히 꽃을 주워본다. 하지만 딱히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꽃은 바스라지더니 형태가 무너진다. 가루로 부셔져, 마치 없었다는 듯이 먼지들과 동조된다. 영문을 모를 상황에 투신태자는 자신이 잘못한가에 대해 고민하지만, 곧 그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여성의 몸 위에, 수갑의 쇠사슬에 엮인 꽃들 중 하나를 톡 건들인다. 그러자 그 꽃 또한 형태가 부셔져 사라진다. 부드러운 햇살 아래 일순 반짝인 꽃이었던 가루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호무라는 그제야 알게 된다. 그 꽃들 또한 500년 동안 이곳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봉인이자 잠든 신의 총아와 동화된 것인지 500년 동안 바짝 마른 채 버틴 작은 꽃들이었기에 미약한 충격에도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문득 호무라는 꽃의 내음이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정말인지, 아니면 부서지는 꽃들을 보았기에 드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꽃의 향이 줄어들었다면 잠든 여성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꽃의 향은 그나마의 즐거움이자 길고도 긴 잠에서 함께 해준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기에. 그 답지 않은 미약한 죄책감 때문일까, 투신태자는 팔을 뻗는다. 언제, 어느 순간, 어쩌면 500년 동안 그대로였을지도 모를 흘러내린, 흐트러진 총아의 앞머리카락을 정리해준다. 몇 백년만의 이성을 향한 다정한 손길이었다. 다정함에 이끌린 것이었을까, 투신태자는 보게 된다.
500년이란 긴 시간동안 뜨지 않았을 터인 신의 총아의 눈이 뜨여 햇살에 반찍이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