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종교 관련 언급이 있습니다.
* 검은방3~4를 하지 않은 분들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만 가봐.”
“왜요? 구경하고 싶은데.”
이어 말하려던 그가 다시 입을 닫았다. 이유를 몰라서 묻는 걸까. 이마도 무릎도 다쳐서 저 몸으로 이런 곳을 돌아다니겠다고? 그러다 뭐라도 건드려 고장이라도 난다면 그건 전부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 더 늘어날 뿐이다. 대답도 안 하는 강민에게 그는 다가가 마주한다. 걱정하는 얼굴이 마주하자 강민은 시선을 피한다. 괜한 걱정이다.
“걱정 마세요. 강민씨 탓이 아니니까요. 윗사람들에겐 제가 잘 말 할게요.”
걱정하는 말투로 달래주려는 건지 아예 몸까지 돌렸다.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신뢰를 얻은 주제에. 저보다 어린 그가 뭐라고. 가라고 했으니 대답을 안 하면 알아서 가겠지 싶어 살짝 발 근처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그러다 갑자기 낯선 음악 소리에 강민은 빠르게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처음 보는 휴대전화가 바닥에서 힘차게 소리를 낸다. 그가 가려 했지만 무릎 때문인지 살짝 절뚝이기에 강민은 제 발 옆에 있던 휴대전화를 주웠다.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확인도 할겸, 조금의 다른 감정을 안고서. 다가갈수록 화면에 보이는 건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무열 후배. 휴대전화와 그 옆에 있던 얇고 날카로운 긴 쇠막대기를 함께 주웠다.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덜덜 떨려온다.
“전화 대신 받아줄 거 아니면 주세요.”
“지금 당장 받아. 스피커로 해서.”
“알았어요.”
강민에게 휴대전화를 받아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조금 전과는 다른 미소가 얼굴에 그려진다. 통화 버튼을 눌러 바로 스피커 모드를 이어 누른다. 하무열의 목소리. 강민은 휴대 전화 화면에 보이는 시간을 쳐다본다.
“오늘 저 쉬는 날인데?”
[그러니까 한잔하자고 연락했지. 류순경이랑 셋이서 어때?]
강민의 눈썹이 살짝 흔들린다.
“아직 퇴근 시간 아니잖아요.”
[저녁에 보자고 미리 말 하려고 전화한 거잖아.]
“그래요. 봐요. 맛있는 거로 사주세요.”
[나보다 돈은 더 많이 받으면서 그러기야? 그나저나 지금 어디에 있길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울려?]
“뭐야. 들켰네.”
강민은 휴대전화를 주우면서 같이 주웠던 얇고 날카로운 쇠막대기를 꽉 쥐었다. 힘이 들어가 쇠막대기의 딱딱함이 손안에 느껴진다. 차가웠던 온도가 손에 닿자 손과 같은 온도로 다가선다.
“친구가 이번에 건물을 산다고 그래서 왔어요. 전 모르겠는데 본인이 경찰이 있으면 사기도 안 받을 것 같다나 뭐라나. 하여튼 이따가 마칠 때쯤에 서로 갈 테니까 제가 연락하면 나오세요.”
[물론 저녁은 선배인 네가 사는 거지?]
“먼저 밥 먹자고 하는 사람이 쏘는 거잖아요. 후배님.”
듣기엔 평범한 경찰들의 대화인 것 같은데 혹시 암호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무열 뿐만 아니라 류태현까지 함께한다는 건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가 백선교와 관련이 된 걸 알고 있을까. 직접 연락을 하지 않고 몇 번 건너서 연락을 주었다. 들킬 리는 없다. 들키기 전에 하무열과는 이미…
“갈 곳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강민씨? 허강민씨. 제 말 듣고 있어요?”
“아까 가보라고 했잖아.”
“그래요. 그럼 저녁 먹고…”
“오지 마.”
그는 손수건을 떼어 상처를 몇 번 검지로 살짝 눌러보더니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하곤 손수건을 반대로 뒤집어 주머니 안으로 넣으며 웃는다. 대답이 그렇게 웃긴가? 강민은 절대로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계속 말을 걸어올 거고 귀찮고… 무척이나 귀찮았다.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며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 콧노래를 흥얼이며 내려가다 순간 들리는 큰소리에 급하게 계단 쪽으로 걸어가다 멈칫한다. 무릎을 다친 것이 떠올랐지만 이마 만큼은 아니었다. 걸어갈때도 잘 걸었고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고 한지 몇 시간이 지난후라는게 거짓말 같았다. 제 머리카락이 한 손에 이리저리 움직이며 쥐어뜯기는 이 상황이.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술을 처먹었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바쁜 사람의 머리카락은 왜 쥐어 뜯는 건지… 드라이버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 것도 모르는 그는 빨개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강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중얼거린다. 작아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다른 한 손으로 등을 소리 나게 때린다. 심한 술주정을 받아줄 여유는 없지만, 영원히 잠자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제정신이 아니니 모르겠지. 대답하거나 반응하면 더 격하게 반응을 해올 거란 건 알고 있으니 머리카락이 뜯기든 때리든 눈도 안 마주치고 무시하는 수밖에.
숙여서 하던 작업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자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궁금하지 않지만 이어진 큰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바닥에 쓰러진 체 허공에 허우적거리다 바닥 위로 손을 툭 떨어뜨린다.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은데. 멀리서 쳐다만 보다 뒤척이는 움직임에 옆에 있던 천을 대충 던져준다. 추운지 천을 끌어안고 자는 걸 보고 바로 다른 일을 한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뻑뻑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문을 여닫고 하는 걸 움직이다 굳이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문을 닫는다. 날카로운 소리가 멎자 복도에서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잠꼬대하진 않겠지. 한가운데 두려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술에 취해서 이곳으로……. 머릿속에 하얘졌다. 혼자서 왔다지만 술에 취해 운전해서 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왔을 리도 없다.
“취한척하지 말고 일어나.”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고쳐 잡아 한쪽 무릎을 꿇은 체 앉았다. 그 손을 높이 들어내리 꽂으려는 행동하려다 손을 붙잡힌다.
“위험한 사람이야. 강민씨. 취한 사람한테 무슨 짓이에요?”
“술에 취해서 여길 운전해서 왔을 리가. 너 같은 경찰이.”
“제가 운전한 거 아니에요. 나왔는데 어르신 쪽에서 연락을 취했길래 술 마셨다니 이곳까지 대리운전 해준 거지.”
“내일 출근 아닌가?”
“맞아요. 제가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했거든요.”
바닥에 누운 탓인지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강민이 제게 던진 천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허강민을 찾으려 돌아다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4층까지 왔다는 걸 알게 되어 열려있는 403호로 들어간다. 침대가 보이자 바로 그 위로 눕는 그를 보고 있다 숨을 길게 내쉬며 문에 기대어 선다. 취하긴 했는지 씩 웃던 그가 손짓한다. 무시하고 빤히 서 있자 그는 그냥 눈을 감는다. 자려는 건진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있던 열쇠나 물건을 옮겨놓거나 하면 안 되니까. 누군가가 사용했고 지금은 아무도 없는 오래된 건물. 조명이 겨우 깜빡이는 이런 먼지투성이의 방에서 잘도 누워있는 그를 보며 강민은 살짝 내려간 안경 너머로 어울리지 않는 현실적인 것을 보기만 한다. 무대는 거의 만들어지고 주연 배우들만이 남은 이 시점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점점 가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침대에서 누운 그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