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종교 관련 언급이 있습니다.
* 검은방3~4를 하지 않은 분들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재미없다고 투덜이면서 강민의 이야기를 듣는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한다.
“그래서 누군 기다리고 있던 거야?”
“기다리긴.”
“흐응.”
갑자기 물어보면 방심하고 대답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짧게 숨을 내쉬며 강민이 원하는 대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곳으로 오면서 만나게 된 여자에 관한 일에 대해. 강민은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자기 할 일만 하면서 그러다 점점 어느 포인트였는지는 모르지만, 집중을 하던 강민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누구라고?”
“그러니까 머리카락을 하나로 올려 묶은 여잔데. 눈치가 없는 건지 따라오지 말래도 따라오더라고. 그래서 무시하고 여기로 가니까 안보이더라고.”
“따라온 건가…”
“따라온 것 같지는 않았어. 그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아니, 너 말고.”
강민의 대답에 순간 상대의 표정은 미묘하게 바뀌며 내뱉으려던 반응을 도로 삼킨다. 심각해진 표정에 혼자서 일을 다시 하려다 집중을 못 하고 결국 휴대전화를 챙겨 나가는 강민을 보다가 뒤늦게 큰소리를 내며 웃는다. 강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며 남자는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며 따라오던 때를 떠올렸다. 억지로 캐물으려는 것도 아닌 저를 챙기기 위한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뒤따라오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신이 본 그가 강민이 떠올린 누군가와 같은 사람인 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굉장하네요. 역시 강민씨야.”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소문이라니… 강민씨 저 말고 친하게 지내는 분이 있는 건가요?”
“무대의 참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며.”
“…맞아요.”
소문은 무슨. 그 여자에게 전해 들은 말이었다. 사실 농담이라도 넘어가길 바랐지만,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손목을 잡았다. 손안으로 들어오는 손목이 거북하게 느껴졌지만 그럴수록 더 강하게 잡았다. 아파하라고 세게 잡았음에도 아프지 않은지 표정 변화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되나요?”
“당연하지.”
“왜요?”
“그걸 말을 해야 아나? 아니면 하면 포기할 건가?”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요? 아니면 제가 찬스를 써서라도 참가자가… 배우가 된다고 한다면?”
잡은 손목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그와의 사이가 더 가까워짐에. 따라 검지와 중지 끝으로 느껴지는 맥박이 빠르게 느껴진다. 얼굴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눈이 점점 가까워지자 강민은 한 발짝 뒤로 뺀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제멋대로 행동하는 그가 무대의 등장인물로 나온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그가 무슨 이유로 노인네들의 사랑을 받는지, 어른들의 힘을 얻었는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두 번째 상황에서도 가만히 보기만 하던 사람이 어째서 이번에는 나서려고 하는 걸까. 분명 위에서야 하게 마음대로 하게 하라고 자신을 압박 할 거다. 대답 없이 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그가 숨게 내쉰다. 처음으로 보이는 곤란한 얼굴에 이번엔 자신 쪽으로 손을 빼자 손에서 빠져나온다.
“사실 그냥 끼어들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참가하겠다는 거에요.”
“무슨 말이지?”
“이번 무대의 주인공과 관련이 되어 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죄를 지은 사람이거든요.”
“네가? 그 녀석이랑?”
“놀랐어요?”
“농담인 건가?”
“진짜라니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예민해질 시기에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말할 거면 진작… 말했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을 했을 거다. 강민은 다가오는 그를 피해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덜 피곤할 것 같았기에 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소리에 따라오지 말라며 버럭 화를 냈다. 따라오던 소리가 멎고 그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었다.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을 법도 한데 강민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웃는 얼굴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저런 얼굴로 웃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웃지 말라고 하려다 그냥 다시 걸어갔다.
미안해요, 강민씨. 분명 작은 목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무대의 준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무대를 위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만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끼어들지 않는 한 본인의 계획대로 진행이 될 것이다. 두 번의 실패와 세 번째 시도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큰 소리와 날카로운 소리가 강하게 들리고 익숙한 목소리와 듣기 싫은 목소리가 섞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별일이 아니기를. 잠깐의 해프닝이라고 넘겼다.
[살려주세요!]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잘못들은 거라 생각을 했었다. 등장인물엔 그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분명 그랬다. 그렇게까지 말을 했기에 저곳이 아닌 자신의 옆에서 귀찮게 굴 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물론 그것도 기분이 좋진 않겠지만. 강민은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도착한 곳엔 순경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는 그가 있었다.
[태현씨? 제가 왜 이런 곳에… 여긴 어디죠?]
“가증스럽긴.”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을 꽉 쥔다. 손끝이 손바닥 안을 빠르게 파고들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한곳을 향해있었다. 그가 부르는 이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오니 어색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이름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 이름을… 생각을 멈추고 강민은 고개를 들었다.
진행될수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척 하면서도 자신이 아닌 그를 돕는 것 같은 그런 그의 행동에 화가나 부순 물건만 몇 개일까. 그나마 덜했다 싶은 건 정작 중요할 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빠져서 그나마 다행…이긴 무슨.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강민은 제 휴대전화가 빠르게 움직여도 안 본척 넘겼다. 분명 그를 찾는 것임이 분명했다.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걸까. 상대가 그 잘나신 노인네들이지만. ‘이곳’에 고용된 본인과는 다른 사람이라 이렇게도 애타는 거겠지. 어쩌면 그가 더 위쪽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이런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민씨, 자요?]
작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앞에서 생각한 모든 것들이 소용이 없어졌다. 하지 말라 하고 싶어도 이미 무대를 난입했으니 대화를 할 수단도 없어 그만두기로 한다. 제 마음대로 끊어낼 수 없어 이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면서 그냥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