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종교 관련 언급이 있습니다.
* 검은방3~4를 하지 않은 분들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대놓고 자신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빈틈을 보이는 건 무슨 경우일까. 그의 눈에도 자신이 우습게 보이는 걸까. 추잡한 노인네들의 신뢰를 받은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하는 걸까 싶을… 드라이버를 쥔 손이 철제 침대의 헤드부분을 잡으려다 캉하는 소리가 나도 잠깐 눈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곧 편안한 표정으로 변한다. 헤드를 잡은 상태에서 다른 손을 뻗었다. 손에 들어올 정도의 얼굴을 가진 그의 목은 한 손으로 움켜잡을 만큼의 굵기였다. 목 가까이서 움찔거리던 손가락은 한곳으로 모여 허공을 쥐었다.
신뢰를 얻은 그가 자신과 있다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간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강민은 숙어진 상체를 바로 일으켜 세우고 몇 분간 그를 내려다보다 밖으로 나가 문을 닫는다. 주연 중 한 명이 무대를 확인하러 오기로 했기에. 이곳 구조를 알고 있으니 눈치껏 알아서 일어나 나갈 거라고 어째서인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미 그가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도대체 찾아와서 술 취한 척까지 하면서 저러는 이유가 뭔지 머릿속만 복잡해진다. 물어봐도 헛소리만 할 게 뻔하니 대답은 듣지 않을 거다. 주머니에 있던 제 휴대전화가 울려 꺼내 보았다. 예상한 사람이 아닌 다른 이름이 쓰여있어 혀를 찬 뒤 전화를 받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진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보면 대강은 알 수 있었다. 작업하다 잠든 탓에 고개를 드니 바로 옆엔 처음 보는 담요가 보인다. 이런걸 사 와서 덮어줄 사람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기분이 좋지 않아 담요를 바닥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큰 담요가 갑자기 들어오자 쓰레기통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쓰러져 안에 있던 내용물까지 밖으로 나온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여기에 없는 걸까. 하던 작업을 마저 하려다 틈새로 들어온 빛을 보았다. 손가락 끝에 닿으려던 빛을 피하려 손을 뒤로 움직이자 위에서 다른 손이 덮어온다. 전자였던 거였나. 강민은 숨을 내쉬며 빛이 손끝에 닿기 직전 손을 쳐낸다.
“아주 안 보일 줄 알았더니.”
“그 말은 절 봐서 반갑다는 거죠?”
“그럴 리가.”
“사이버 수사대라 바쁘기도 했고 위에서 널 불러서 만나고 다닌다고 정신없었거든요.”
묻지 않았는데 저 혼자 이유를 말하고선 그는 쓰레기통 옆에 있는 담요를 주워 털어낸 뒤 흩어진 내용물을 쓰레기통 안으로 넣기 시작한다. 허리를 숙이자 머리 타래가 이리저리 움직임을 보이고 강민은 고개를 돌린다.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힘들겠어.”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 사랑에 강민 씨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나요?”
대답할 필요도 없고 몸에 힘이 쫙 빠져 그가 들고 있던 담요를 빼앗아 덮었다. 담요 뒤로 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상관없었다. 무언가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서 멈추더니 둔탁한 소리가 이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슨 소린진 알고 있었으니까. 헝클어졌을 앞 머리카락을 움직임이 느껴진다. 머리카락을 넘긴 그가 보고 싶었던 게 뭘까. 강민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언제 비가 온 것 때문에 물이 고였는지 어디선가 위에서 아래로 고인 물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에 엇갈린 툭툭 소리. 바로 옆에서 들려오다 점점 작아진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그리움이 묻어났다. 눈을 뜨지 않았음에도 눈앞에 보이는 맑은 미소가 보인다. 그 미소를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실제로는 나지 않았지만 다가오는 빛이 점점 줄어들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저를 따른 아이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가족 모두와 사이가 좋은 아이. 그 아이가 시작이 되었다는 게 화가 난다. 어째서…….
제 뺨을 만지는 감촉에 강민은 눈을 떴다. 깜깜한 어둠. 시간이 또 얼마나 흐른 걸까.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찌뿌둥한 상체를 일으켜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불부터 켜자며 근처에 있을 등을 켜러 손을 더듬거렸다. 무언가 있을 거다. 손끝에 닿은 따스함에 순간 행동을 멈췄다 다시 건드린다. 아니, 잡아 들었다. 손가락의 마디를 엄지로 쓸었다. 상대 손이 움직이자 또다시 행동을 멈춘다. 중얼거리더니 제 손을 꽉 잡기에 강민은 손을 내려놓았다. 다른 한 손으로 등을 켜자 제 옆에서 자는 그를 발견한다. 여전히 손을 잡은 체로.
강민은 자리에 앉았다. 몸을 일으키며 등받이에 걸린 담요를 조심스레 그에게 덮어준다. 이런 제 행동은 평소와는 다르다는걸 모를 리가 없었다. 단순한 변덕이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몇 번의 움직임 끝에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을 떴다. 고장이 났는지 은은해진 등이 눈동자 사이로 들어와 잠깐 반짝였다. 잠이 덜 깼는지 반쯤 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강민은 그 눈을 응시한다.
“이거 꿈이죠? 강민씨와 이렇게 마주 볼 줄이야.”
“꿈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째서.”
대답하지 않고 힘을 주어 손을 잡고 다시 눈을 감는다. 정말 하고 싶은 말만 하더니 다시 잠이 들었는지 바로 손에 힘이 빠진다. 분명 여전히 손을 잡고 있는데 무언가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중요한 걸 빼먹은듯한 찝찝한 느낌. 그날 강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를 잡는 힘 빠진 손을 빼지 못해서.
그러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도 그는 이미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저 그가 자신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이 찜찜할 뿐. 사이비 종교의 노인네에게 사랑을 받아 좋아질게 뭐가 있나. 목적이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자신을 돕는 걸까.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놀라 하던 일을 멈췄다. 계속 사용을 해서 날카로워졌는지 원래 그랬는진 알 수 없지만 손바닥에선 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드라이버를 놓고 손바닥을 빤히 쳐다보자 붉은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걸어오는 발소리에 강민은 숨부터 내쉬었다.
“이 시간엔 무슨 일로…”
“먼저 불러놓고 이러기야?”
전혀 다른 목소리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임을 확인하자 별일이 아니라며 넘겼다. 강민의 반응에 상대는 웃으며 누가 오길 바랐냐며 캐물었지만 강민은 그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고 부른 이유부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