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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이끌리듯 분홍벚꽃 잎들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날.

 

“그…미안해.”

 

2년의 짝사랑이 막을 내렸다.

 

 

 

 

 

 

 

 

[2년의 짝사랑, 4년의 외사랑]

Yagami Taichi x Hoshino Eien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선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든 생각은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이었다. 그런 표정 짓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동경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들어간 축구부에서 만난 선배, 그의 축구 실력에 감탄하고 또 그와 같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랬던 감정이 다른 것으로 바뀐 건 10살 여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디지털세계, 파트너 디지몬, 모든 것이 새롭고 무서운 그곳에서 항상 앞서 나가는 선배의 등을 따라가던 나날들이 모여 선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모험 이후 선배와 더 가까워졌고 선배에 대한 내 마음은 동경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인이 아니어도, 단순히 선후배 사이라도 좋다고 옆이 아닌 한 발 뒤에서 등만 바라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없었는데 졸업식이 끝나고 축하 말을 전하기 위해 선배를 찾아갔더니 그의 친구들에게, 벚꽃 잎에 싸인 그 모습이 마치 손닿지 않는 곳으로 가는 거 같아 충동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그 결과가 이거다.

 

“에이엔, 나는….”

“괜찮아요!…그러고 보니 선배 졸업식 끝나고 가족들끼리 외식 있다고 하셨죠,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고 있었네요! 미안해요, 먼저 실례할게요.”

“에이엔!”

 

한 발, 두 발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발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포근한 봄바람이 불고 있을 텐데 볼을 스치는 바람은 한겨울의 칼바람 같이 느껴졌다.

 

 

 

* * *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올라 에이엔은 걸음을 멈추었다. 차오른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목적지를 정하고 달린 게 아니기 때문에 에이엔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살피니 집 근처에 있는 코시로, 마리와 자주 노는 놀이터였다.

 

“이엔아-.”

“마리언니?! 코시로까지?! 여기서 뭐 해?”

“너 기다리고 있었지.”

 

뒤죽박죽된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차에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소꿉친구인 코시로와 마리가 서 있었기에 에이엔은 동그랗게 뜬 눈을 한 채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 무슨 소리냐고 묻는 것보다 괜찮아? 한마디가 먼저 에이엔의 귓가에 닿았다. 질문에 아무런 답을 못하고 있는 에이엔의 머리를 마리는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마리의 상냥함에 반응하듯 눈물 한 방울이 에이엔의 볼을 타고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을 시작으로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저도 모르게 터져버린 눈물에 에이엔은 당황하며 옷소매로 닦아냈지만 눈물은 멈추기는커녕 계속해서 에이엔의 볼을 적셨다.

 

“아니, 이게…왜 안 멈…추지.”

“괜찮아, 멈추려고 하지 않아도 돼. 울고 싶을 때 울어야지.”

“코시로…!!”

“이엔이 나에게 알려준 거잖아, 예전에 나에게 해준 거처럼 어깨 정돈 빌려줄 수 있어.”

 

각자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소꿉친구 둘에게 에이엔은 매달리듯 안겼다. 키 차이 때문에 코시로가 에이엔에게 안긴 모양새가 되었지만 코시로는 상관없는지 등을 토닥여줬고, 마리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참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에이엔은 두 사람의 품에 안긴 채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가망 없단 거…알고 있었는데….”

“용기 냈잖아.”

“곤란…한 표정…짓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노력했네, 장하다 이엔이.”

 

보답받을 수 없는 혼자만의 짝사랑인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마음을 자각하기 전부터 쭉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또 누구를 담고 있는지 말이다.

그 사람은 나 역시 정말 좋아하고 또 닮고 싶어 한 사람이니까-

 

그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는 용기의 문장을 닮은 주황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사람.

사랑의 문장의 소유자답게 어머니처럼 모두를 챙기는 사람.

자애로운 미소를 가진 사람.

 

‘타케노우치 소라’

 

 

 

“부러워, 너무 부러워.”

 

나는 담길 수 없었던 그의 눈동자에 담긴 그녀가 너무나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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