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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라는 문구가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감에 대해 사유라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풍경들을 바라볼 뿐이다. 미미한 피로감이 눈가를 뒤덮음을 인지하나 그것에 대해서도 어떠한 반응도, 혼잣말조차도 하지 않는다. 옆에 불평이나 대화를 나눌 상대가 있음에도 말이다.

 

 

"사유라."

"......"

"사유라."

"......"

"사유라."

 

 

흠칫. 옆에서 들려온 부름이 3번까지 늘어나서야 미동도 없던 그녀의 몸이 반응한다. 연갈색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움직여 옆의 존재를 바라본다. 그러자 거기엔 걱정이 담긴 커다란 푸른 눈동자가 보여 와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된다. 아직도 남은 자신의 버릇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그 후,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연인에게 미소를 보인다. 지겹도록 반복되고도, 그나마 나아진 흐름에 미소를 보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팔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연다.

 

 

"불렀나요?"

"역시 하루 정도는 집에서 쉬고 와야 했었다."

"괜찮아요. 그냥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인걸요."

 

 

그녀가 태연하게 묻자 들려온 목소리엔 불만과 후회가 담겨 있었다. 그저 2주간 쉬는 날 없이 일을 했을 뿐인데 그는 걱정이 많다. 몇 년이 지나도록 지나치게 과보호적인 연인에 사유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사실을 고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 아닌 '걱정한 만큼 힘들지 않다.' 는 의사를 담은 문장. 예전과 달라진 문장 속마음을 그가 알아 차렸을 지에 대한 호기심과 바뀐 자신에 대한 신기함이 섞이는 감각. 그 느낌에 오늘을 연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고대하던 그녀는 미소를 겹치며 든든한 팔에 머리를 부빈다. 그러자 흘러내린 앞머리가 간지럽다고 느낀 찰나 푸른 손가락이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는 걸 연갈색의 눈동자는 본다.

 

 

"지금 행동은 귀엽지만 나중에 잔소리는 할 거다."

"... 딱히 그러한 의도는 아니에요."

"...... 키스해도 되나?"

"......"

 

 

여전히 낮고도 멋진 목소리지만, 희미하게 억누름이 담겨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모를 그의 목소리 변화를 혼자 감상하는 사유라.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그에 3번째 미소를 만들어 낸다. 그가 생각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말을 건네며 아직 제 앞에 있는 큰 손의 일부를 꼭하고 쥔다. 그런 자신에게 들려온 질문에 그녀는 사고가 일순 멈춘다. 데자뷰가 아닌 몇 번이나 겪은 일이임에도 미미한 놀람에 대비하지 못한다. 덕분에 대화의 흐름이 끊긴다. 랄까, 평소라면 말없이 했을 그가 왜 이럴까에 대한 의문이 그녀의 안에 피어오른다. 

곧 해답을 찾아낸 사유라는 말없이 연인인 보로스를 올려다본다. 거기엔 진지한데도 애가 타는 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가 있었다. 마치 기다리란 말에 참는 대형견을 연상케 하는 모습에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심술을 부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거기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을 생각하면 자제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결국 대답은 정해진다. 분명 그가 아쉬워할 대답을 말이다.

 

 

"지금은 기차 안이니까 안 됩니다."

"고작 3명이 있을 뿐이다. 거기다 저들에겐 여기가 보이지도 않을 거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돼요. 공공장소인걸요."

 

 

의도하지도, 할 마음도 없었지만 그녀는 말투를 살짝 바꿔 답한다. 어찌 보면 더 얄미울 말투임에도 보로스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것보다는 자신이 말한 이유에 반박하는 모습에 사유라는 필사적이라고 감상한다. 허나 장소는 장소이며, 최근 너무 그의 어리광을 받아 준 자각이 있었다. 이참에 한 번은 둘 모두 자제를 심어야 한다. 그렇기에 사유라는 그녀치고는 딱 잘라 안 된다는 의사를 보인다. 덕분에 내심 기대하던 외계인씨는 노골적으로 -그녀만이 알 수 있지만- 아쉬워하는 시선을 보인다. 분명... 아마....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기던 사유라는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입을 연다.

 

 

"그럼 여관에서 하시면 되잖아요."

"......"

"......"

 

 

당연하다면 당연하고도, 조금만 생각하면 떠올릴 법한 말을 건넨 사유라.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에 담겼던 감정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불만에서 놀람으로 변하는 그 찰나를 보았다.

어라, 약간 스스로 지뢰 밟은 기분인데. 어딘지 플래그가 서게 되는 문장이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낀 사유라. 허나 이미 늦은 상황이며, 연인은 이러한 찬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스물스물 미소로 바뀌어가는 그의 얼굴이 그 증거였다. 덕분에 문장이 하나 더 스쳐지나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아, 결국 또 어리광을 받아주는 결과가 되는구나. 란 문장이 말이다.

 

 

"얼른 여관에 도착하고 싶군."

"키스 때문에요?"

 

 

뭔가 자포자기 심정이 된 사유라는 기대감에 들뜬 그의 목소리를 듣고 묻는다. 거기엔 딱히 어떠한 감정이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질문이었으며,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을 뿐이었다. 뱉고 보니 어딘지 유치했던 것 같은 내용에 스스로에게 훈육하던 사유라는 머리를 감싸는 감각에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린다. 그러자 거기엔 어느새 진지하면서도 자상한 표정의 보로스가 있었다. 

 

 

"그것도 있지만, 얼른 너를 편히 쉬게 해주고 싶으니까다."

"정말이지. 과보호세요."

 

 

너무도 그답다는 감상을 느끼며, 사유라는 언제나의 말을 읊는다. 결국은 자신을 생각한 연인에 그녀는 익숙한 무표정을 잊어버릴 정도로 미소를 자아낸다. 머리를 감싸는 온기와 희미한 무게감을 느끼며, 편히 그의 몸에 체중을 실어 기댄다. 창밖을 힐끗 보니 여전히 자신들을 태운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남은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면 당연하게도 기차의 작은 창과 반복되는 풍경이 있을 거라 여겼다. 

 

허나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모르는 풍경이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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