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귓가를 간질인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도 작지도 않은 소리. 놀랄 수 있으나 그 음색은 날카롭지 않고도 부드러워 어딘지 배려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소리에 다가오던 보로스가 멈춘다. 자상하고도 뜨거웠던 눈동자가 일순 그 색을 바꾸어 소리가 들린 근원지를 바라본다. 경계와 짜증이 섞인 그의 눈동자를 살핀 후, 사유라도 시선을 움직인다. 자신이 고르지 않은 침착하고도 은은한 색으로 만들어진 미닫이가 보여 왔다. 그게 진짜 복도와 연결된 문임을 알게 된다.
딸랑-
한 번 더 울린다. 들려온 소리의 크기에 그리 크지 않은 방울이라 여기며, 사유라는 그것이 자신들의 허락을 기다린다는 요청임을 알아차린다. 힐끗, 연인의 포정을 살핀다. 아까보다는 경계는 없어졌으나 노골적으로 불만이 담긴 표정... 이라기보다는 눈빛에 그녀는 자신도 가졌어야 했을지도 모를 불만보다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분명 자신의 연인이 문 너머에 있을 누군가에게 감정을 감추지 않을게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눈치를 살펴야 할지도 모를 직원의 모습을 그리며 몸을 움직인다.
자신의 어깨와 허리를 감싼 듬직한 팔을 톡톡하고 건드린다. 그 신호에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를 향해 시선을 맞춘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연인은 곧 제 뜻을 알아차린 듯 팔을 풀어준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쉬이 빠져나온 사유라는 노골적으로 아쉽다는 눈빛을 보내는 보로스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다만 그 미소 안에 자신의 미안함을 잘 담아내었는지에 대해 본인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네. 열어도 괜찮아요."
보로스에게 건네던 때와 조금은 틀린 톤으로 사유라는 문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러자 천천히 문이 열린다. 문의 상태가 좋았던 것인지, 여는 사람의 기술이 좋은 건지 미닫이 문 특유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두 가지의 이유가 합하여진 것에 더해 문이 조금만 열린 것에 따른 결과였을 거다 란 생각을 하며 그녀는 방울의 주인을 바라본다.
정좌한 채로 있던 여성이 자신을 한 번 보고는 공손히 손을 바닥에 놓으며 상체를 숙인다. 군더더기도, 어색함도 없는 오히려 기품마저 드는 인사.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서 보던 전통 일본여관의 직원의 인사였다. 실물로 처음 보는 그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유라였을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의 여주인을 맡고 있는 자입니다."
모습에 어울리도록 점잖고도 부드럽지만 기품이 있는 목소리이자 말투였다. 그리고 곧 그러한 여성의 신분에 사유라는 납득한다. 고급여관의 여주인이라면 그럴 만도 하였기에. '헌데 어째서' 란 의문이 그녀를 건드린다. 자신들은 그러한 위치이자 그만큼 바쁠 터인 사람이 올만한 손님이 아니기에. 자신들은 그저 경품의 당첨으로 운 좋게 고급여관에 1박 2일 숙박권을 얻었을 뿐이었다. 아니면 이곳의 여주인은 모든 손님들을 이렇게 맞이하는가에 대해 있는 것만도 못한 얄팍한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사유라다.
"보로스님, 휴식을 온 것임에도 치안을 위해 힘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여주인의 말에 사유라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보로스를 올려다본다. 거기엔 외출 시 얼굴에 하나 뿐인 눈을 가리기 위해 쓰는 검은 안대를 쓴 그가 있었다. 우선 그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 모습에 작게 안도한 잠들어 있던 그녀는 연인의 설명을 기다린다. 사실은 대충 상황을 파악했으나 그의 설명을 듣고픈 심정이었기에 굳이 묻지 않는다.
"나중에 다 설명해주도록 하마."
"......"
"그럼 시와가리님도 깨어나셨으니 저녁식사를 대령하겠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네. 부탁드릴게요."
자신의 시선과 심정을 알아챈 걸까. 아니, 이제는 모르기엔 그가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사유라는 보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한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한 여주인의 식사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부탁한다. 다시 신기할 정도로 조용히 문을 닫은 여주인에 다시 방안에는 둘만이 있게 된다.
스륵, 천이 무언가에 쓸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음에 그가 안대를 벗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알고 있음에도 굳이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지 않은 채 사유라는 기다린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연인이라면 무엇도 하지 않을 인물, 아니 외계인이 아니기에.
그 예상이 맞았을까. 무언가가 턱에 닿는가 싶더니 자연스레 감싸며 비스듬히 위로 올리는 힘이 느껴진다. 강압적이라 하기엔 조심스러움이 담긴 힘에 이끌려 기차에서 연인을 애태웠던 그녀는 고개와 시선을 올린다. 거기엔 누군가의 의도적이지 않은 방해로 인해 중단되었던 광경이 있었다. 다만 조금 전과는 약간, 아니 조금 전과 엄연히 다르도록 비장함까지 담긴 눈빛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만이라고 해도 좋다. 사유라는 그 눈빛이 자신을 향한 그의 간절함이자 애탐이자, 애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몇 년이나 걸려 그는 증명하고 있다. 내일을 무서워하는 한 존재를 사랑하고 있다고 언제나 전력으로 마음을 쏟아 붓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먼저 닿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거겠지 하고 사랑에 취해가는 여성은 생각하게 된다.
딸랑-
"......"
"......"
데자뷰. 아니 이 경우엔 그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노린 것 마냥의 타이밍에 익숙한 방울의 울음이 둘 사이를 가로지른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한참 허리를 숙여 가까워졌던 연인이 다시 멀어진다. 정말로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외계인에 여성은 아까의 미소를 지어낸다. 이해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담아 미소를 건넨다. 곧 제 연인도 이해해준 눈빛을 보내며 안대를 쓰는 모습이 시야에 박힌다. 움직여지지 않을 듯한 고개를 목에 힘을 주어 억지로 돌린다.
몇 분도 되지 않았을 터인데, 사유라는 문을 향해 다시 들어오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자 분명 방금이라는 단어가 정확할 정도로 물러났던 여주인이 똑같은 자세로 다시 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 책임자의 뒤엔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불어 그들의 옆에 자리 잡은 음식들 또한 연갈색의 눈동자에 비친다. 속으로 그들의 빠른 일처리에 감탄하면서도 미약하게 불평하게 된다.
'조금만 더 늦게 와주셨어도 괜찮았는데.' 란 솔직한 마음을 숨긴 채 사유라는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