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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는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한참을 요청했던 가이드의 입사가 결정되었고, 프리드리히는 곧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회사 대신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이드의 이력서와 추천서를 본 소감은 그저 그랬다. 우연히 가이드임이 판명 난 일반인. 센티넬이 아닌 가이드로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베른하르트는 가이드의 훈련에 걸릴 시간을 가늠하며 차에 올랐다. 어린 편이니 빠르게 배우지 않을까. 운동과 거리가 먼 타입이니 강도는 낮게. 익숙해질 즘 서서히 올리면 될 것이다. 스케쥴이나 커리큘럼은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 차에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핸들을 틀었다.

 

 

이윽고 베른하르트는 커리큘럼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공항까지 오는 길은 이상할 만큼 한산했고, 평소엔 연착을 거듭하던 비행기는 오늘따라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잠깐의 대기시간 없이 마주한 가이드는,

 

“자이페르트 씨?”

 

생각보다 작았다.

 

신장은 작지 않다. 동아시아 여성 평균치를 생각하면 큰 축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신장이 아니다. 체격이 작았다. 요컨대, 가늘고 길었다. 현장에 투입될 수는 있나? 베른하르트는 깊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쯤 되니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더 어려 보였다. 생김새를 보고 타인을 재단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범죄 현장을 아무렇지 않게 들쑤실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나. 베른하르트 자이페르트는 껄끄러운 마음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른하르트 자이페르트다. 말은 편히 해줬으면 하는군.”

“라페 에일레르입니다. 저는 이쪽이 더 편해요.”

 

작은 가이드는 베른하르트가 내민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손도…. 작군. 가늘고 긴 편이기에 거친 일보단 섬세한 일에 알맞은 손이었다. 아무리 가이드가 위험한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적합하지 않았다. 적합성과 별개로 능력은 확실하다는 점이 베른하르트를 혼란하게 했다. 단순 악수만으로도 소소한 기분 변화나 컨디션 증진이 있다. 손을 놓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베른하르트는 다소 차가운 손을 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낯가림이 있는 모양이지. 대략적인 파악을 끝냈으니 바로 출발할까.

 

“…대략 3개월간은 우리 자택에서 지내게 될 거고, 원한다면 따로 집을 마련해준다고 한다. 방은 요구사항에 맞춰서 준비해 뒀지만,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즉시 말해주도록. 우리는 네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린 가이드는 베른하르트의 말을 듣는 내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주 오래도록 너를 찾아다녔다. 그만큼 너는 아주 유능하고, 다른 곳에 넘기기 아까운 인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도면 위로가 됐을까. 베른하르트는 곁눈질로 가이드의 낯을 살폈다. 긴장은 어느 정도 풀어진 모양이었다. 작게 네, 하는 대답이 들렸다.

 

“좋아. 가지. 차로 네 시간 정도 가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잊지 않고 먼저 하고 갈까.”

 

 

단언컨대 라페는 살면서 지금 만큼 긴장해 본 적이 없었다. 모르는 장소, 모르는 사람, 모르는 나라…. 덤으로 모국어도 아닌 언어. 낯섦 속에 던져진 라페는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마중 나온 남자는 최대한 라페를 배려해줬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종종걸음으로 커다란 남자를 따라 차에 오르고 네 시간. 가벼운 차멀미로 잠이 쏟아졌으나 긴장 탓에 정말 잠들지는 못했다. 정말 잠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잔뜩 빳빳해진 몸뚱이는 자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도착했다.”

 

남자의 말과 함께 고개를 드니, 가장 먼저 제법 큰 2층집이 눈에 띄었다. 청회색 빛 지붕에 아이보리색 외벽. 하얀 창틀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서양풍 이층집이었다. 관리하기 힘들겠네, 하는 생각도 잠시. 차에서 내리니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강아지라 불리기 미묘한 대형견은 곧장 라페 에일레르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매달렸다.

 

“에디!”

 

멍! 새하얀 개는 베른하르트의 부름에 해맑게 짖었다. 무게를 못 이겨 넘어지고 쓰러진 라페의 명치를 밟아 선 채였다. 거대한 털뭉치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라페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친숙한 게 아예 없진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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