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무슨 짓이야! 현관에서 비명이 들렸다. 어느샌가 라페의 곁에 낑겨 누운 고양이 두 마리는 등 털이 쭈뼛 선 상태였다.
“사람을 고양이 취급하지 마라.”
“얼핏 봐서 착각한 거거든?”
“사람과 고양이를 착각할 수도 있나?”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을 고양이로 착각해? 대체 무슨 소란인지. 라페는 도망치는 고양이들을 뒤로하고 머뭇대며 일어났다. 시야가 높아지고, 가구에 가려진 장소가 보이면서 프리드리히와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도를 넘는 어색함에 후드 끈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녕. 네가 예의 가이드지?”
“…아, 네. 안녕하세요.”
다시 침묵. 베른하르트는 간섭할 생각이 없는지, 곧바로 자리를 떴다.
“…내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 것 같은데. 프리드리히 자이페르트. 잘 부탁해.”
“어, 라페 에일레르예요. 그런데, 그,”
고양이라는 건, 대체. 프리드리히는 라페의 물음에 옷깃을 흔들어댔다. 라페는 잠시 제 옷깃을 바라보다, 이내 작게 소리를 냈다. 후드에 고양이 귀가 붙어있었다. 일어나면서 흘러내린 탓에 뒤집어쓴 채는 아니었지만, 졸 때는 뒤집어쓴 채였다.
후드 때문에 헷갈렸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러나 제아무리 후드에 귀가 붙어있다 한들, 고양이와 인간을 헷갈리긴 힘들다. 라페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헷갈렸을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아무 말한 거겠지. 오히려 이쪽이 인간과 고양이를 헷갈렸다는 말보다 신빙성 있었다.
“좀 피곤해서 잘못 봤다. 미안.”
“아뇨, 뭐.”
진지하게 사과하는 상대에게 차마 “크기부터가 착각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대신 신화생물이라도 봐서 인간이랑 고양이쯤 되는 크기는 헷갈리나 보지, 따위의 우스갯소리나 떠올릴 따름이었다.
…아니, 이거 제법 그럴싸한데. 라페는 개소리랍시고 떠올려놓고도 있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물을 잠시 동안 소환하거나, 생물의 몸집을 부풀리는 센티넬도 있다고들 하니, 엄청 커다란 오징어라던가, 고릴라를 봤다고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닐 터. 대충 그런 논리였다.
라페가 그렇게 자신이 떠올린 개소리에 수긍하는 한편, 프리드리히는 잠시 라페를 뜯어보고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나?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괜찮지 않아서라기에는 불쾌한 기색이 없다. 껄끄러워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쪽? 어느 쪽이든 괜찮겠지. 간혹 훈련생 중에서도 이런 타입이 있었다. 그런 녀석들도 시답잖은 장난질 몇 번이면 친해지곤 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는 더 말을 거는 대신 라페의 후드를 뒤집어씌웠다. 후드를 뒤집어쓴 라페가 휘청이며 맥빠진 소리를 냈다. 어이쿠. 프리드리히는 라페가 넘어질세라 어깨를 잡아챘다. 라페는 프리드리히가 건드는 데로 풍선 인형처럼 착실히 휘둘렸다.
"…미안. 이렇게까지 힘이 없을 줄은 몰랐다."
베른이 고민 많이 하겠군. 너도 고생 많이 하겠고. 프리드리히가 라페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라페는 해괴한 표정으로 후드를 걷고 프리드리히를 올려다보았다. 프리드리히는 웃지도, 그렇다고 허탈해하지도 못하는 미묘한 낯이었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허약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 자체였다. 민망함에 적당하게 웃어넘겼다.
“제가… 인도어파라서.”
“그럴 것 같다. 스포츠보단 책 읽거나 게임하는 거 좋아하고. 콘솔 있는 거 봤어?”
라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 적 없었다.
“베른이 치워뒀나. 찾아볼게. 좋아하는 게임은?”
“어…. 뭐든 다 괜찮아요. 게임이면 대체로 좋아해서.”
오타쿠라 취미가 죄다 그쪽이라는 말을 초면인 사람에게 대뜸 하는 것도 좀 그렇겠다. 라페는 이번에도 미묘하게 웃어넘겼다. 프리드리히는 묘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뿐이었다.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래? 정말 뭐든 상관없는 거지?”
“…레이싱 게임만 빼면요. 멀미해서. 다른 것도 멀미는 좀 하지만….”
“시야가 격하게 바뀌는 건 더 하는 편인가? 알겠어.”
그럼, 적당한 걸 골라올 테니 기다리라고. 라페는 적당히 손을 흔들며 제 방을 향하는 프리드리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베른하르트와는 다르게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