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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나? 다친 곳은?”

“아. 네…. 괜찮아요. 이래 봬도 튼튼하거든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라페는 젖은 머리를 조심히 털며 말했다. 혹여라도 물이 떨어질까 거칠게 말려댄 탓에 아무리 좋게 봐줘도 단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과연 첫인상부터 이런 식이라도 괜찮은 것인가. 가만 생각해봐도, 좋지 않다 이상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신은 빠르게 포기를 선언했다. 어차피 오래 볼 사이 아니던가. 빨리 익숙해지면 좋은 거다. 자기합리화는 빠르게 끝났다.

 

“도착하자마자 미안하군. 손님들이랑 과격하게 노는 게 익숙한 녀석이라.”

 

손님이라고 하면 동료들 얘기겠지. 특수 경호원이라는 특성상 몸을 쓰는 사람이 많을 터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서 라페는 종잇장과 같을 터…. 굳이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강아지를 받아들 만한 근력이 없는 인간이 나빴다. 털 뭉치는 죄가 없다.

 

“아녜요, 뭐, 강아지가 그럴 수도 있죠. 입질도 없었고, 귀엽던데요.”

 

정말로 저 정도는 귀엽다. 공격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할 뿐…. 라페의 머릿속에 순간 자국에서 유명한 훈련사인 강아지 강 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저런 친구들도 교정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찾아볼까.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라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그….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강아지.”

 

그렇다. 강아지, 에디는, 라페가 무서워할 것을 대비해 다른 방에 격리되어있었다. 답답한 건지, 라페가 궁금한 건지, 에디는 연신 방문을 긁어댔다. ‘기다려’ 훈련이 안 됐나? 라페는 정신을 다시 저편으로 보냈다. ‘기다려’ 훈련도 찾아봐야지. 베른하르트는 갑작스레 생각에 잠긴 라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정말로 괜찮나?”

 

라페는 반사적으로 뭐가요? 라는 헛소리를 뱉을뻔 했다. 이래서 집중력이 고양잇과만치도 안 되는 인간은 안 된다. 자꾸 생각이 튀어가지 않나.

 

“네에. 대형견 좋아해요. 이 정도로 무서워할 만큼 사나운 친구도 아니니까 정말로 괜찮아요.”

 

필사적인 설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큰 강아지랑 같이 살아보는 게 꿈이었어요. 에디보다 저희 집 강아지가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겁이 많아서 엄청나게 짖거든요…. 어느 즘부터는 지리멸렬한 아무 말이 되었다. 아무튼 무섭지 않다는 점은 잘 전해졌는지, 베른하르트는 기기묘묘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달려 나오는 에디를 붙잡았다. 에디는 달려 나오지 못하는 대신 신나게… 뜀을 뛰었다. 상당한 점프력이었다.

 

“건강하네요….”

“건강하지.”

 

라페가 에디에게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개는 폴짝거리기를 멈추고 격렬하게 손을 핥았다. 그렇게 수 초. 어느샌가 진정한 에디가 앉고, 베른하르트 역시 목줄에서 손을 놓았다. 에디는 엎어진 채 연신 꼬리를 흔들어댔다.

 

“사람을 정말 좋아하네요.”

“사람이면 덮어놓고 좋아한다. 병원 빼고.”

 

병원은 어쩔 수 없죠. 라페는 베른하르트의 첨언에 실소했다. 병원 관계자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대형견. 역시 사회화 형성 시기는 중요하다. 이후에 교정하려면 털 뭉치도 인간도 고생이다. 라페가 커다란 멍멍이가 로망이지만 키우지 못했던 이유다. 라페는 대형견을 책임질 정도의 지식이나 능력이 부족하다. 기껏 해봐야 간단한 반복 훈련만 가능할 뿐.

 

“그러고 보니 잘 짖지도 않네요. 아, 사람이라고 하니까.”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분은 어디 계신가요? 프리드리히 씨, 그러니까, 형제분께선.”

“일로 출장 중이다. 곧 돌아오겠지.”

 

아마도 사나흘쯤 후에. 베른하르트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말했다. 가늠하는 걸까. 라페는 한동안 말이 사라진 베른하르트를 보며 생각했다. 성장배경이 같을테니 형제도 저런 분위기겠지. 둘 다 저런 분위기였다면 제법 공기가 무거웠겠는데. 에디가 분위기 메이커였으려나?

 

 

*

 

 

…같은 생각은 사실과 전혀 다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넓은 주택에는 대형견뿐만 아니라 대형묘도 두 마리 있었다. 라페는 무심코 본인들이 크니 반려동물도 큰 쪽을 선호하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각각 비비, 피피라는 이름인 고양이는 생각보다 더, 라페를 잘 따랐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라페의 무릎에서 잠들거나, 장난감을 물어오거나 했다. 베른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원래도 고양이임에도 사람을 잘 따르는듯 하였으나…. 그런 것 치고도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털 뭉치들 사이에서 힐링 받기를 나흘간, 예기된 프리드리히의 복귀가 있었다.

 

아마도 시간은 오후 한 시. 라페는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히 고양이들과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졸았던 모양인지,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누군가 거실에 들어오는 발소리를 겨우 들었을 뿐이었다.

 

“…베른, 우리 집에 고양이가 세 마리였던가?”

 

신나게 졸던 라페는 누군가 걷어차이는 소리와 비명에 겨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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