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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법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건 유키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느긋하게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날 시노노메와 이야기를 나눈 지도 꽤 지났지만 이렇다 할 진척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하게 그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라이브 말인데…….”

사무소에선 매년 크리스마스 라이브를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라이브가 열렸고, 고맙게도 유키노가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맡은 큰 라이브였다. 그는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일단은 프로듀서니까.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게요! 음... 궁금한 건 메일로 부탁드릴게요. 지금 물어보셔도 괜찮구요...”

“프로듀서가 설명을 잘해줘서 충분히 이해했슴다.”

“맞아.. 선생을 했어도 잘했을 거 같네.”

쿄지와 케이의 말에 유키노는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해산할게요. 다들 라이브 연습 힘내세요. 그 말을 남기고 유키노는 빠르게 회의실을 나갔다.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그 자리엔 카미야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런 얼굴(?)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쨘! 유키노~!!”

“우왓! 사키쨩?”

“헤헤, 다음 크리스마스 라이브 회의는 다 끝난 거야?”

“응. 왜?”

“있지 그럼 나랑 선물 고르러 같이 가지 않을래?!”

“선물!?”

“응응, 우리 사무소 크리스마스마다 파핏하게 선물교환 식 하거든! 원래는 롤이랑 갈려고 했는데 롤은 급한 볼일이 생겼다고 해서~ 어때, 어때?”

“음, 그래 좋아.”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식.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다닐 적 매 크리스마스마다 비슷한 것을 했던 것 같았다. 유키노 본인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기도해서 겸사겸사 파티를 했던 것같다. 그리고 그 자리엔 당연하듯 카미야와 시노노메가 함께였다.

“두 사람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언제 나왔는지 카미야가 뒤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같이 선물 고르러가자는 이야기 중이었어!”

“아, 크리스마스 선물?”

“응. 카미야는 라이브준비 때문에 안 되지?”

“뭐 그렇지. 하지만 시간이 됐어도 아마 혼자 고르러 갔을 거야.”

“응? 왜?”

“그건…….”

순간 카미야는 유키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비밀이야.”

“에~ 너무해!”

그럼 난 이만 연습하러 가볼게. 카미야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남은 유키노와 사키는 내일 만날 약속을 해놓은 채 헤어졌다.

“크리스마스엔 늘 받기만 했던 거 같은데...”

 

 

“야호~! 유키노,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냥 눈이 일찍 떠져서 일찍 온거야. 그럼 일단 상가 쪽으로 가볼까?”

“좋아!”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경했다. 이렇다하게 생각해놓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가게를 다 들여다보았다. 이거 너무 귀엽다! 이것도 좋은 거 같은데……. 아, 이건 어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조금은 지치는 감이 있었다.

“우리 저기만 둘러보고 카페 같은 곳이라도 가서 쉬는 건 어때?”

사키는 소박하게 생긴 가게를 가리켰다. 작긴 해도 있을 건 다 있을 것처럼 생긴 가게였다. 그리고 가게의 분위기가 묘하게 사키와 어울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가 풍겨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거기엔 찻잔과 [크리스마스 한정 특별 에디션!!] 이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와 함께 찻잎을 팔고 있었다. 유키노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찻잎의 향기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런 거 주면 좋아할까?”

“어라, 그거 살려구?”

“으응? 아, 그, 그냥 냄새가 좋아서...”

“음~ 이거 카미야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유키노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본 사키는 그를 부추겼다. 유키노가 주는 거라면 분명 좋아할거라구!

“으음, 뭐 선물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결국 그녀는 찻잎을 구매했다. 포장을 해주는 점원이 정말 좋은 향이 난다며 크리스마스 당일에 꼭 우려먹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분명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될 거에요.”

 

 

“어라? 너뿐이야?”

“아, 네. 전 오늘 스케줄은 전부 끝났습니다.”

유키노가 사무실로 돌아오니 사무실엔 시노노메 뿐이었다. 유키노 본인도 오늘 일은 전부 끝나서 보고서 작성을 위해 잠시 들른 참이었다.

“괜찮다면 같이 티타임 어때요?”

시노노메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 같은, 마카롱을 들어 보이며 유키노에게 말했다. 마카롱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양과자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이 기회를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법이였다. 더군다나 시노노메의 마카롱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좋아!”

“식긴 했지만 카미야가 우려 놓고 간 홍차가 있어요.”

찻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비어있던 잔에 시노노메는 홍차를 부었다. 식어 미지근해졌지만 홍차의 향기는 근사했다. 유키노는 그대로 입으로 잔을 가져갔다.

그가 한 모금 마신 것을 확인한 시노노메는 입을 열었다.

“그 뒤로 카미야와 이야기는 해봤나요?”

“응?! 아, 조만간 이야기 해보려고. 아직은 라이브 준비도 있고 하니까.”

“그런가요. 뭐 그래도 처음 사무소에 왔을 때보단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하하... 뭐 시노노메 네 덕분이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덕분에 용기가 생겼으니까!”

“뭘요, 저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인걸요.”

“그건 그렇고... 이거 정말 맛있다. 다시 네 양과자를 먹을 수 있다니 이건 좀 좋을지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조용하고, 소박한 티타임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을 때 쯤, 밖이 소란스러웠다. 아마도 스케줄에 나갔던 아이돌 들이 돌아온 것이겠지.

“앗! 두 사람끼리만 맛있는 거 먹고 있었던 거야? 치사해~”

“어이 쇼타, 멋대로 집어먹지 마!”

“아니요. 애초에 모두와 나눠먹으려고 한 거니까요. 부담 없이 드세요.”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유키노는 일어나서 제 책상으로 갔다. 그리곤 달력을 확인했다. 이제 라이브도 곧이 구나.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는 곧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메일을 보내었다.

“제대로 전해지면 좋겠는데…….”

 

 

 

“역시 겨울밤은 꽤 춥구나!”

장갑을 끼고 나오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는 제 손에 입김을 불며 최대한 손을 비비고 있었다. 겨울은 역시 겨울인 법이었다. 낮엔 별로 춥지 않다고 느꼈건만... 밤이 되니 태세전환이 꽤나 빨랐다.

“그건 그렇고 역시 그냥 집 앞으로 갈걸 그랬나? 오늘 안엔 오는 거겠지?”

휴대폰 액정의 시간을 확인하며 유키노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집 근처의 공원이니 제대로 찾아오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그, 카미야가 얼마나 심한 길치인지 잠시 깜빡한 것 같았다.

“전화 해봐야하나...”

“미안, 오래 기다렸어?”

“아! 나이스 타이밍! 마침 전화할려고 했는데.”

“밤에 나오는 건 오랜만이라서... 좀 많이 헤맸어.”

“알아. 안 그래도 약속 장소를 제대로 잡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

“하하... 아, 그래서 볼일이라는 건...?”

“이, 일단 저기 앉아서 이야기할까!?”

유키노는 가로등 바로 아래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잠시 동안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유키노는 무슨 말을 먼저해야할지 고민 중이었고 카미야는 그런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 일단. 미안. 그동안 미안했어.”

한번 내뱉고 나니 이 말을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의문이었다. 그 뒤 다시 숨을 가다듬고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너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 겨우 내 마음을 정리했거든 그런데 다시 너를 만나고 나니까 다시 복잡해져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했던 거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또 안정이 되니까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더라. 그, 그래서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은... 고마웠어. 정말로. 그때 네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을 정도로 넌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어.”

날씨는 추웠지만 붉어진 유키노의 얼굴엔 열이 엄청났다. 당장이라도 터져 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다행이야. 나 너에게 쓸데없이 부담을 준거 같아서 걱정이 많았거든. 아무튼 우린 미숙하잖아. 그때도 지금도.”

“.....”

“그래서 나는 괜찮다면서 내 생각만 밀어 부친 건 아닐까하고 말이야.”

“그, 그건 아니야.”

“그래? 다행이네. ...아무튼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정말 소중했으니까. 그 시간을 없던 걸로 하고 싶진 않았거든. 그리고 지금 다시 만난 것도 정말 기뻐.”

“...아, 맞아 줄게 있어.”

유키노는 가방에서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꺼내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카미야는 지금 안을 봐도 되냐고 물었고, 유키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찻잎이구나?”

“응, 사키랑 같이 선물 사러갔을 때 그걸 발견했거든. 향이 정말 좋더라! 그래서 사버렸어. 너한테 주면 딱 일거 같아서... 그, 너한텐 늘 받기만 했었잖아 그래서…….”

“그거야 유키노 네 생일이 크리스마스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받으니 기분 좋은데. 고마워. 이걸로 홍차를 우리면 정말 최고의 한때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다. 넌 차에 대해 잘 아니까 내가 잘못산건 아닐까 엄청 걱정했거든.”

“그렇지 않아. 네가 준거라면 뭐든 좋은걸.”

“또, 그런 말이나 하고... 뭐 됐어. 난 이만 가볼게 너도 슬슬 라이브를 대비해서 컨디션 조절해야지.”

“그거라면 걱정 마.”

유키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끝내도 괜츦을까? 싶다가도 이야기는 앞으로 새롭게 계속 써 가면 되는 문제였다.

“잠깐만 유키노.”

“응?”

카미야는 급하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카미야는 그녀를 향해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저번에 한 말 기억하니? 나 여전히 널 좋아하고 있어. 아마 시간이 얼마가 지나도 이 마음은 그대로 일거 같아.”

“너, 넌 무슨 지금 그런 말을 해?!”

“아하하, 음 지금이 아니면 못할 거 같았거든. 이제 예전처럼 너와 같이 봄을 맞이하겠네. 이별의 봄이 아닌 봄을. 정말 기대돼. 아 물론 지금은 팬들과 함께할 크리스마스 라이브에 전념할거니까 걱정 마. 그냥 지금의 이 기분을 전해주고 싶었어.”

“응, 충분히 전해진 거 같아. 그리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은 내가 몇 번을 해도 부족할 말이라고. 정말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나 계속 노력할게.”

 

긴 겨울이 끝나고, 나에게 다시 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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